영접하는 자 / 요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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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영접하는 자 / 요1:9-13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아내나 남편이 전혀 모르던 사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한두 번 만난 적도 있고 아는 사람이었는데도 전혀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날 새롭게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알고보니 완전히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배필이더라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을 가지고 계신분은 안 계시나요? 늘 가까이 있었는데도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어느 날 우연찮게 다시 접하게 되어서 알고보니 그것이 진짜 중의 진짜더라는 것이지요. 손을 벌리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삶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비단 결혼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세례 요한은 뛰어난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 수만 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게 하였습니다. 그의 설교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설교를 듣는 그들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모두 물에 들어가서 자기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유대인들이 전혀 모르고 있던 진리를 가르쳤던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기막힌 진리, 저 멀리 화성이나 목성 같은 별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가르치고 설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한 사람을 그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들과 늘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사람을 지목하여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요한이 이 놀라운 복음서를 쓰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지금 참 빛이 모든 사람에게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우리 성경에는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었었나니 라고 과거 시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는 참 빛, 세상에 오고 있나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빛을 주어서 생명을 얻게 하는 참 빛이 세상에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이 빛이 비취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지금 흥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영원히 풍성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참 빛이 계속 비취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빛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뿐이었습니다. 양심이라든지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들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의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주인이 직접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분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병든 우리를 치료하고 채우시기 위하여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모든 만물에는 그 만든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병들고 비참한 이유는 바로 이 주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걳이 주인 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울 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들어오시기 위하여 계속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계속 그 빛이 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고개를 돌려 못 본 체하고 외면해도 이 빛은 계속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입니다. 인간의 삶을 보면, 변덕을 부리고 마음을 쉽게 닫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십니다. 결국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온전히 이 빛을 다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심하는 데 선수입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 마음 문을 열고 빛을 받아 들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빛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사람이 뒤집어집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하는지,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감히 사랑받을 수 없는 죄인들인데 우리에게 이 사랑의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를 영광스럽게 하겠다.’ ‘너희의 삶 전체를 아름답게 하겠고’, ‘너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의 이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이렇게 보잘것없는 죄인을 하나님께서 마치 짝사랑하시듯이 계속 사랑하고 찾아오신다는 사실이 오래전에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놀랍도록 신실하게 응답하셨고,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을 내 삶 속에서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분을 계속 이런 식으로 거부하고 밖에 세워두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일까?’ 짐승이라도 이 큰 사랑을 알고는 배신하지 않을 텐데, 인간들은 계속 이 놀라운 사랑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잘난 것이 많아서, 계속 모르는 체하고 있습니다. 급하면 기도하고, 그 일이 끝나면 깨끗하게 잊어 버립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이 사랑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요한이 본 것은 세상이 이 생명의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세상 뿐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소유로 인침을 받은 백성도 이 말씀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10-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처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 전체의 태도를 말씀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그가 세상에 계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인 역사 현장에 나타나셨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3:1 은 당시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의 세상이 이랬습니다. 요한의 말대로, 모든 세상 권력도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 권력도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를 찾아와서 자기 보좌를 내어 놓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황제의 총독 빌라도는 그를 조롱하면서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다고 했을 때 그는 그 진리를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권세가 위에서 주신 것이요, 위에서 주시지 않으면 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나 빌라도는 듣지 않았습니다.
세상만 영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11절에 ‘자기 땅’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땅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통치 영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이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권력도, 하나님의 직접 다스리심을 받는 백성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큰 무지입니까? 태양이 떴지만 아무도 태양이 떴는지 알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성전에 있는 두 노인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안나는 무척이나 늙은 여 선지자였습니다. 시므온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얼마나 큰 빛이 비취고 있는지 이들은 알았습니다. 시므온이 무엇이라고 찬송을 드렸습니까? 누가복음 2:30-32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2:30–32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죄인은 아무리 큰 빛이 떠올라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소경은 아무리 태양이 중천에 떠 있어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놀라운 빛을 보고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에게 비취는 이 놀라운 생명의 빛을 보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소경이요, 죄로 온몸이 어두운 상황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학자라고 해서 이 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이 빛을 보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합니다. 그 당시의 관원들은 모두 다 배운 자들이었습니다. 학식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분이 자신들의 상관인 황제보다 엄청나게 더 높은 분이셨다는 것을 알기만 했어도 그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죄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빛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주께 나아와서 완전한 경배를 드림으로 풍성한 삶을 얻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로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지금도 자기는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만 바라고 나아오는 자가 어린아이입니다. 이런 자들이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귀거나 자기 자랑이나 하기 위하여 오는 자에게 진리는 여전히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결코 이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아직 두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여전히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은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세상 욕심을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마음은 점점 더 완악해집니다. 나중에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소용이 없고,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는 자에 대한 축복입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한다’는 것은 완전히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중심 되는 위치에 주인을 모시고 전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 황제 같으면 그 황제의 자리에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같으면 그 대제사장의 자리에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부에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그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구제도 나의 이름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합니다. 봉사도 사역도 나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으로 합니다. 설교나 권면도 나의 이름이 아닌 그분의 이름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모든 것이 그분 중심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왕이시며, 모든 것 되십니다. 그분이 주인이며 그분이 결정권자이십니다. 이것이 그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하지 않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며 이 세상에서 모든 악의 권세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정욕으로 살면 안됩니다. 내 기분에 따라서 모든 것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기 전에 기도하고, 믿음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에게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나에 대하여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결정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결정권을 행사하시지 못하도록 늘 양다리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늘 자기 방법으로 믿습니다. 비책을 둡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축복을 다 빼앗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자세가 아니요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 봐 늘 브레이크를 걸고 신앙이 더 깊어지지 못하도록 다른 일을 벌입니다.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늘 이 세상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그를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도 이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주님께 헌신된 자가 아닌 자는 나중에 버림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보고 교회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주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분이 우리를, 나를 사랑해 오셨습니까? 자기 자식을 십자가에 죽도록 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겸손하다면, 그 사랑을 배신하지 못할 것입니다. 맡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무조건 맡겨야 합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기준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전쟁이 다 끝나야 그때 예배드리는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항상 안식과 관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후 안식하셨습니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날이었습니다. 다윗은 주위의 모든 나라들을 다 정복한 후 안식을 얻었고,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전쟁이 끝나야 드릴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자리잡은 정욕을 완전히 평정하지도 않고 어떻게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혈통으로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소용 없습니다. 몇 대째 믿었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육정으로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있는 자라고 해서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정을 가진 자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다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지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은 말씀으로 변화되어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얼마나 이들을 바꾸어 놓았는지, 이들은 이미 옛날의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옛 사람은 죽고 다시 태어난 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자는 모두 다 변합니다.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얼마나 놀랍도록 새로워지는지요. 사람 자체가 바뀌어 버립니다. 옛날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열등 의식과 죄 의식으로 병들었던 옛날의 그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어도 주께 부르짖으면 그분이 오셔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얼마나 새로운 힘을 주십니까? 우리는 그 힘으로 살지, 내가 가진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요, 성령으로 새롭게 된 자들입니다.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그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계속 죄 의식으로 시달린다면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는 것이 두려우신가요? 자신이 없으신가요? 주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분이 나의 주님이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내가 직접 모셔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이렇게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실지 몰랐다는 간증이 나올 것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놀라운 분인지 몰랐다는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특징은 넘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풍성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엉터리가 아닌 수준에서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흘러 넘치고 싸매어 주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수준이 아닙니다. 억지로 신앙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가요? 주님께 의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너무 좋아져 버릴까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생활로만 만족하고 내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너무나도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들만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이렇게 산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크신 사랑이 우리에게 비춰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난하게 되어 이 큰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빛 안에 걸어가는 것이 영원한 삶임을 깨닫고, 날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맡기는 삶이 되어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찬양 :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공동기도제목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비춰지고, 우리 주변으로 흘러 보낼 수 있도록
당회(12/22)와 구역회(12/29)를 은혜 가운데 준비케 하시고, 이번주 주일 오후 제직 세미나에 성령의 기름부음 있도록
기도합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 올려드립니다. 구주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그 크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비춰지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에 모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빛 안에 걸아거는 것이 영원한 삶임을 깨닫고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동행하심과 역사하심이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사명감당하기를 힘쓰는 모든 성도들 머리위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