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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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아니라 예수님이 소망이고 구원입니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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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저는 소위 어려운 책을 좋아합니다. 두꺼운 책을 좋아합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 뭔가 얻는 것 같고, 성장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수필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적인 제 성향이 마음에 들지만, 감성을 한 스푼 얹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습니다. 수필집을 찾다 유명한 작가의 수필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을 읽다가 오늘 설교의 도입부에 적당하다 싶은 부분이 있어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나는 지난봄에 몸이 아파서 10일 정도 입원해 있었다. 코로나의 재난으로 의료진은 지쳐 있었고 병실은 여유가 모자랐다. 나는 4인 병실에 입원했다. 병실, 네 귀퉁이에 한 사람씩 누워 있었다. 네 명이 모두 60대 이상의 남자들이었다.
같은 병실에 들어 있는 남자1과 남자2는 큰 수술을 받고 나서 후속 치료를 하는 환자들이었다. 남자1은 며칠 전에 수술을 받고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남자2는 장시간에 걸친 힘든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와서 엉엉 울었다.
남자1과 남자2는 오줌통을 차고 있었다. 복도에 나갈 때도 오줌통을 들고 나갔다. 남자1과 남자2가 어떻게 말을 섞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남자1은 야당 지지자이며 여당 저주자였고, 남자2는 여당 지지자이며 야당 저주자였다. 지지와 저주가 한 세트로 묶여 있었다. 남자1과 남자2는 모두 남쪽 출신인지 제 고향의 억양으로 말했다.
남자1과 남자2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을 들이대며 야당을 찬양하면서 여당을 욕했고, 야당을 욕하면서 여당을 편들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혈관주사를 놓으면 남자1과 남자2는 조용해졌고, 처치가 끝나면 또 시작했다.
남자1과 남자2의 오줌통에 오줌이 고였다. 나도 그때 오줌통을 차고 있었는데, 내 오줌통에도 오줌이 고였다. 남자 세 명의 오줌색은 모두 누랬다. 오줌이 가득 차면 간호사가 통을 비워 주었다.
나와 대각선 모서리에 있던 남자3은 핸드폰으로 쉴 새 없이 통화했다. 남자3의 목소리는 남자4(작가)에게도 들렸다. 통화 내용으로 짐작건대 남자3은 전국 여러 곳에 수입 아이스크림 매장을 벌여 놓은 자영업자였다. 남자3은 야당 편도 아니고 여당 편도 아니고 오직 아이스크림 편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남자3은 더욱 바빠지는데, 아마도 전국 매장의 하루치 매출을 보고받는 모양이었다. 남자3은 매출이 부진한 매장을 야단쳤다. 코로나 재난에도 그의 자영업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면 병원 직원이 밥을 가져다주었다. 병원 밥은 찰기가 없었고 국은 멀겠고 반찬은 밍밍했다. 남자1, 2, 3, 4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밥을 먹었다. 밥 먹을 때는 다들 조용했다.」
우리나라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나뉘어서 다투는 사람들, 관망하는 사람들, 정치에는 관심 없이 자기 삶에 바쁜 사람들……. 모두 다 오줌색은 누렇고, 모두 다 밥을 먹을 때는 조용했습니다. 모두 같은 사람인데, 서로 나누어지고 다투고, 방금 큰 수술을 마치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 목숨을 건진 감사는 없고 여전히 다투는 모습이 현재 한국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2. 예수님이 그때에야 오신 이유
본문은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일 겁니다. 이 본문으로 설교도 수없이 들으셨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이 말씀을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로 질문해 보려고 합니다. 아담이 타락하고 거의 4000년이 지나서 예수님이 오셨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을까요? 왜 바로 오실 수 없었고, 왜 1000년 후는 아니었으며, 왜 4000년이나 오랜 시간이 걸려서 예수님이 오셔야 했습니까.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라디아서에서는 때가 찼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4000년 이후가 되어서야 예수님이 오실 적절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는지 정확하게 하나님의 의중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 특별한 시점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역사상 이 특별한 시점은 사람이 자신을 구원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하게 입증되었을 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율법이 온전히 작용해 볼 기회를 충분히 누려봤던 역사상 바로 그 시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율법을 그때까지 근 1,400여 년 동안 소유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기약한 때’에는 헬라 철학도 율법과 똑같은 기회를 충분히 누려봤던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자신을 구원할 모든 기회를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로마 문명과 법률, 문화도 그들 나름대로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집트의 거대한 문명도 역시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앗수르나 바벨론과 중국 문명도 그러했습니다. 세상은 자신을 구할 모든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데는 모든 방면에서 적기였습니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구원할 모든 시도가 실패한 때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을 대망할 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중학교 즈음에 또래 친구들이 입는 브랜드 옷을 입어야만 할 것 같아 반년을 모아서 GUESS 맨투맨티를 샀었습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도하고 신중하게 결혼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좋은 옷이, 좋은 성적이, 좋은 대학이, 좋은 배우자가 나의 삶을 더 낫게,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경험하셨겠지만 실망하게 됩니다. 이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거야, 이걸 가지면 행복할거야, 이 지위에 오르면 행복할거야, 좋은 차를 사면 행복할거야, 좋은 집을 가지면 행복할거야, 내 아이 성적이 올라가면, 내 아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할거야. 곧 내가 원하는 그것이 나를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한 상태로 만들어 줄 거라는, 즉 구원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언제나 실망합니다. 내가 만난 배우자는 나를 실망시킵니다. 너무 좋았던 부분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내 자녀는 내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좋은 집이나 차를 얻어도 기쁨은 1달을 넘지 못합니다.
기대한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고, 거절당하고, 기대한 결과는 예상을 벗어납니다. 삶의 여러 문제 앞에, 여러 상황에, 여러 사람들에게 우리의 가슴은 무참히 찢어지고 고통당합니다. 그래서 삶을 살아 온 연수가 늘어날수록 체념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삶에 헛된 기대를 내려놓는 만큼 예수님을 붙들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구나. 우리의 삶은 이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예수님뿐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도 포함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
저는 어느 순간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치인에게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0대에는 관심이 없던 정치가 30대 중반쯤 되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열중하지는 않았지만, 정치 관련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 정치 관련 이슈가 나오면 배경 내용을 찾아보고 나름의 관점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알고 있던 사실을 너무나 확실히 깨닫게 된 시점이 있었습니다. 국회위원과 같이 정당 활동을 하는 정치인들 중에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배웠던 정당의 목적은 정권 획득이었고, 정치인들은 그 목적에 아주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라와 국민의 이익과 정당의 이익/정권 획득이 부딪힐 때 분명 정권 획득을 선택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그들도 죄인 된 인간으로 자기를 위해 살아갈 뿐 소망을 둘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선거권을 가지게 된 이후에 대통령을 여러 명 거쳤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현재 윤석렬 대통령까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잘되고, 부강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 기대 가운데 세워진 대통령들 모두에게 실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덩달아 걱정했습니다. 나라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잘된다고 했습니다. 덩달아 기대했습니다. 잘되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무용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선거가 의미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필요하고, 선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구원자는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붙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4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저런데 어떻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서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붙드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은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습니다. 반대로 사람의 순종과 의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레 26:3-4
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불순종하는 모습, 즉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관계로 인해 땅에 복이 임하거나 저주가 임합니다. 이 나라가 잘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정치인이나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장, 민주화 등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복 주셨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신 이유는 이 나라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며 순종하며 의를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정당이 우리를 구원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잘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구원자이시고,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진리를 믿는다면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모습이 있습니다. 상황을 놓고 서로 다른 정치적 해석 가운데 갈등하고 다투고 분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 되게 하십니다. 분리와 다툼은 결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특히 성도 간의 분리와 다툼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 됨이 기초입니다.
4.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 우리나라는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 놓였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며,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인 혼란뿐 아니라 경제적 피해, 우리 개인에게도 피부로 다가올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실을 주시해야 합니다. 신앙은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땅에 발 딛고 살고 있기에 현실이 어떤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을 들여다보십시오. 어떤 사람의 주장은 피하십시오. 유튜브 등에서 사실을 사용해서 교묘하게 자기주장을 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의 주장을 멀리하고, 최대한 사실을 보고 들으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십시오.
그러나 구원은 현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늘에서 주어지고,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누구 탓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혼란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를 탓하느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사건에 누구라도 보이지 않는 책임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성도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회개해야 한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누구의 책임을 찾지 않았고, 자기의 죄로 여기며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습니다. 어느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고,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느 1:6-7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가 제일 먼저 한 기도는 나라의 회복을 위한 간구가 아니었습니다. 회개기도였습니다. 그 회개는 나라를 위한 회개 이전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죄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고,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회개합니다. 내가 범죄했습니다. 나의 가족이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과한 것 아닌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 한 명을 찾으셨던 하나님을 안다면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다니엘 9장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먼저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철저한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단 9: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성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회개입니다. 나의 죄를,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나의 죄 때문입니다.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으며, 세속에 물들었고, 돈과 쾌락을 쫓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한다.
회개한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현 대통령의 탄핵을 처음 발의한 날, 그리고 탄핵이 부결될 것이 예상되었을 즈음에 한 권사님이 저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목사님은 탄핵이 되길 바라세요, 안 되길 바라세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탄핵이 되는 것이 좋은지, 안 되는 것이 좋은지 모르지 않습니까?’ 사실로 저는 두 가지 상황 모두 두려운 결과가 예상됩니다. 무엇이 더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고, 어떤 것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 결과가 나뉘는 많은 상황을 마주합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많은 경우 무엇이 나에게 가장 좋은지 모르고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가장 선하며,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분께 여러분 삶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하물며 나의 원함이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이런 사안을, 두 가지 결과 모두 두려운 결과가 예상되는 이런 사안에서 어떻게 분명하게 한 쪽을 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한 쪽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만 하면 되느냐? 행동해야 하지 않느냐? 한쪽을 선택하고 그에 맞게 움직여야 하지 않느냐? 한쪽으로 여론이 모이도록 행동하고 힘을 실어야 하지 않느냐?
기도를 행동과 반대되는 것을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한다고 하면 행동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치부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가 얼마나 순종이며, 기도가 얼마나 행동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영향력이 미미한 한 사람이 기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보다 더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다른 모든 활동보다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매일 1시간씩 기도한다면 그보다 더 큰 능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여러분이 행동해야 할 때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그때 행동하게 됩니다. 저는 한 번의 행동을 위해서 9번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행동은 기도를 이미 통해 이루어진 일을 확증하고 완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상황을 타개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다면 부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통치하고, 이 나라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3)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해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묻고 선택하고, 매 순간 예수님을 인식하며 주께 하듯 하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힘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성전으로 삼으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시고, 여러분이 있는 곳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성전이 되면, 이 나라는 거룩하게 변하게 됩니다. 너무 소극적이지 않는가? 너무 늦지 않는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집단행동 같은 힘의 논리에 기댄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한다면, 즉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실패한다면 이 나라가 거룩한 나라는 될 수 없습니다. 법을 바꾼다고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인데도 이 대목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제가 선교지에 가서 하는 어떤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할 뿐입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의 고백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그 땅이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이 되고, 하나님의 임재로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통치하시고, 구원하실 분이 예수님이라는 진리를 분명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이 진리 아래서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받습니다. 우리의 의로움으로 이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와 함께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이 나라를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로 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할 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셔서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선한 결과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우리가 처한 곳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통로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로 삼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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