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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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윤준수 집사님
사사기 1,2장은 사사기 전체 본문에 대한 서론과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사사기 전체 내용의 요약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2장 6절부터 23절까지는 바로 앞의 1장부터 2장 5절까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물론,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때 기업을 차지하게 한 내용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인 사사기 시대 전체 모습들을 포괄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사사기 전체 내용의 흐름과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앞에서 보인 모습에 대한 원인 및 그에 따른 결과를 미리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6절에 나온바 같이,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기업을 분배하고, 각 지파별로 기업을 차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1장에서 확인하였듯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유다 지파를 시작으로, 남은 기업에 대하여 지파별로 전쟁에서 승리했던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점은, 이스라엘 민족이 각 지파별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신들이 기업받은 땅을 차지하였으나, 사사기 기자는 하나의 평가를 각 지파별로 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각 지파별로 “어느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더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명령은 받은 기업을 완전히 진멸하고 온전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바치는 하렘 전쟁이었기에, 이는 여호와의 명령과 매우 상충되는 부분입니다.
이들이 이방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앞의 2장 2절을 보아 알 수 있듯이 그 땅의 주민인 이방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제단들을 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보인 모습은 3절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될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기자는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이 보인 한계가 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폭로하고자, 오늘 본문 안에서 한 가지 대비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7절과 10절의 대비입니다.
먼저 7절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세겜에서 여호수아와 여호와 앞에서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맹세한 자들, 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보았던 자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여호와를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10절에서는 그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고 난 후,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방족속을 진멸하지 않고, 그들과 타협하면서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신분과 정체성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보인 한계는,
결국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나도록 만들어 버린 궁극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을 이러한 대비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11절 이하에서 나타난 “다른 세대”가 보인 모습입니다. 11-13절을 보시면, 이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에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여호와를 섬기기보단 오히려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백성들이 섬기던 신들을 섬깁니다.
이 “다른 세대”는 앞의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방신을 섬기는 일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여호와를 버렸다라고 사사기 기자는 표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앞의 세대가 비록 이방 족속과 타협하며 쫓아내지 않았다는 분명한 한계점을 보였지만, 그래도 그들이 사는 동안은 여호와를 섬겼다라고 사사기 기자가 기록한 것과 달리 “다른 세대”는 극단적인 배도와 불순종의 모습을 보입니다.
만일 처음부터 앞의 세대들이 자신들의 기업을 차지할 때, 그곳을 진멸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온전히 바쳤다면, 이방민족의 잔해들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후손들에게 그곳에 눈 돌릴 만한 어떠한 여지를 결코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안일함과 안주함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도록, 이방신들을 섬기도록 환경을 조성해준 것이나 다름없음을 사사기 기자는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전체 내용을 해석하는데 있어 핵심은, 사사기 기자가 강조하고 있는 10절의 내용에 근거해야 합니다.
10절의 내용을 통해, 앞으로 살펴볼 사사기의 전체 맥락 안에서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보일 모습은 실패나 다름 없음을 미리 암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패하게 될 명확한 이유를 밝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른 세대’의 배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14-15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는 진노를 하시고 그들을 대적들의 손에 넘기시며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전에는 정복전쟁 때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어 대적들을 능히 이기게 하셨는데, 이제는 능히 이기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이는 여호수아 24 20절에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하신 약속에 대한 보응의 결과인데,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분명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하시어 은혜와 복을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은혜를 망각하고, 약속을 스스로 저버렸기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로 보입니다.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괴로움은 매우 심하였다고 사사기 기자는 15절에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괴로움을 외면하거나 버리시지 않고 또 한번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16절 이하에 나온 것처럼 사사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대적자들로부터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데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원의 은혜가 있음에도 이 ‘다른 세대’들은 자신들의 조상들과는 다르게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신 사사들에게 순종하기는 커녕 오히려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는 타락과 패역함의 극치를 보입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결국 이들 앞에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시며, 이들 스스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시험하고자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그냥 두시기로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사사기 전체 내용의 전형적인 특징이자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적 교훈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먼저 생각해볼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를 섬겼던 세대 이후 어떻게 한 세대만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입니다.
우선 10절에서 알지 못하다 할 때, 알다 동사는 히브리어로 ‘야다’ 동사인데, 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알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하여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매우 신뢰가 깊은 관계에 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동사입니다.
다시 말해, 이 ‘다른 세대’라고 불리우는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조상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분과의 신뢰 깊은 바른 관계에 놓여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분을 온전히 알지 못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들을 자신들을 위해 행하셨는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으로 온전히 알고 있었다면, 이방 신들을 섬기는 교만과 배도를 결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은, 과연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온 이스라엘 민족처럼 ‘다른 세대’인가 아니면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다음 세대’인가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기조와 논리, 사상에 휩싸여, 세상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돈, 명예, 탐심과 같은 많은 우상들을 쫓고 섬기고 있다면, 이는 ‘다른 세대’가 보이는 모습과 다름 없습니다.
‘다른 세대’는 참되고 바른 관계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식으로 피상적으로만 알기에 아버지를 향한 참된 믿음과 신뢰를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섬기려기보단, 아버지를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려기 보단 세상의 논리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 그리고 고난과 시험이 주어지면, 그때서야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를 찾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원망하려는 자세와 태도로 찾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사사기 전체에 걸쳐 ‘다른 세대’가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말씀과 도에 순종하고자 하는지 시험하고자 고난과 어려움을 허락하신 것처럼,
주어진 고난과 어려움이 아버지께서 아버지이심을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하나의 시험이자 은혜의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거나 순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고난과 고통속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아버지께서는 다 아시고, 외면하지 않으시기에, 긍휼히 여기시어 한 번씩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 은혜 앞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더욱 세상 속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진노를 불러 일으킬만큼 패역과 교만을 일삼습니다.
아버지의 자녀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살아가는, ‘다른 세대’와 같이 형편없는 신앙의 모습이 우리들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 한가지 점검해보아야 할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족속과 타협하는 신앙의 안주함과 안일함으로 인하여 결국 ‘다른 세대’가 일어나게 만든 것처럼,
여전히 세상의 가치들과 타협하는 우리들의 불신앙적 모습이 결국엔 믿음의 후진들인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대’를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닌지 경각심을 갖고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쫓아가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아버지를 섬겼으니 괜찮다라는 등의 합리화 또는 안일함을 결코 보여서는 안됩니다.
애초에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세상이라는 기업을 허락하신 것은, 그곳에서 완전하고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아내어 아버지께 영광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와의 바른 관계 속에서 아버지가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지금도 어떻게 일하시는지, 앞으로 어떤 일들을 행하실지를 온전히 알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인 세상에서 완전히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통해 아버지께 헌신하게 된다면, 우리 뒤에 일어나는 세대는 자연스레 ‘다른세대’가 아닌 믿음의 ‘다음세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간구하기는, 우리들의 거룩히 구별된 삶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것은 물론, 우리의 후손들이 믿음의 ‘다음 세대’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통로로 사용되는 은혜가 저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우리들이 먼저 믿음의 ‘다음 세대’로서 아버지의 거룩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아버지께 영광 돌리고, 결국 우리 후손들이 ‘다른 세대’가 아닌 믿음의 ‘다음세대’가 되는 통로로 사용되도록,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하는 부교역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새음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주신 은혜에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아픈 환우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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