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던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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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서론
이제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성탄절이 오면 괜히 기분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요? 아마 믿음이 좋으신 여러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해서일 것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저는 솔직히 성탄절에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어렸을 때 성탄절 선물을 받았던 기억 때문인거 같습니다. 성탄절이 오기 몇 주전부터 너무 선물 받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한테 내가 가지고 싶은 로봇 장난감을 편지로 적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성탄절 전야를 재밌게 놀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선물이 있었죠. 그리고 기대를 하면서 선물을 보면 무엇이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공책과 연필이 있죠. 제가 열심히 적었던 로봇은 목록에도 없습니다. 오직 학용품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죠. 이처럼 여러분도 너무 기대를 하던 것이 이뤄지지 않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자신들의 기대가 깨졌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저번 주에 나눴던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라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씀에 이어서 진행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7장 34절과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7장 34절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하지만 이 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다보면 이렇게 비슷한 구절이 조금씩 변형되어서 다시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구성이 진리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더 설명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 기록된 진리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로 태어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가르치는 우리의 운명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도 빠짐없이 죄인이다. 우리는 죄에서 태어나서 죄를 짓고 살고 죄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빠짐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런 진리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너희가 나를 찾다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나”는 무엇일까요?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찾다가 죄 가운데서 죽는다는 것일까요? 이것은 조금 의미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를 무엇으로 봐야 할까요? 그것은 앞의 요한복음 1장부터 7장의 내용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이 시작부터 계속해서 일관되게 예수님에 대해 주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예수님이 메시야, 즉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21절에 “나”를 “메시야, 구원자”로 바꿔 읽어보면 의미가 자연스러워집니다. “너희가 구원자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문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원자로 찾는 너희는 죄 가운데에서 죽을 것이다.”가 됩니다. 의미가 매우 자연스러워집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나를 거부하다가”와 같이 표현하지 않고 “나를 찾다가”와 같이 표현하셨을까요?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야, 구원자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디테일하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예수님에 대해 논쟁을 하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우리가 기다리던 구원자가 맞는가에 대해 싸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부터 유대인들은 오랜시간 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기다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격렬하게 거부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바라던 구원이 예수님이 주시려던 구원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메시야 구원자의 모습은 어떠한지 아십니까? 아마 지금으로 비교하면 이순신 장군,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다윗왕과 같이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강하고 부자로 만들어줄 구원자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사건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기적으로 로마를 쳐부수고 자기들의 원수들을 다 죽여서 우리를 구원해도 모자랄 판에 너희는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불행하게도 지금 이 시간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내가 원하는 다른 구원자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에 그리는 배우자를 찾아 다닙니다. 내 인생을 구원해주고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으면 이혼을 하고 바람을 펴서라도 그런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주변 인맥에서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나를 도와주고 내 인생을 멋있게 만들어줄 대상을 찾습니다. 그리고 요새 많은 사람들은 구원자를 찾아 정치인을 찾아갑니다. 이재명이, 홍준표가, 이준석이, 조국이 이 나라를 강하고 멋있게 만들어서 나를 구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최악의 경우 저기 이단 사이비의 교주를 찾아가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결코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예수님 외에는 진짜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들은 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지옥으로 향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저 본향에 오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하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자는 죄 가운데에서 죽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꼭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자이실까요? 그것은 예수님만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존재들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이사야 등 많은 인물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배운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죄가 있었고 육체의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이 땅에서 전하고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육체를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이 땅에서 전하고 실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계속해서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같이 놀이동산에 놀러갔던 것을 기억해보십시오. 우리가 놀이동산에 가면 저, 이삭이, 단이처럼 남자들이 같이 다니고 드보라전도사, 수빈이, 금비, 지혜가 주로 같이 다녔습니다. 왜냐면 남자들은 주로 무서운 놀이기구만 쉬지 않고 타고 싶어하고 여자들은 사진도 찍고 너무 무서운 건 안타고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서로 하고 싶은 것이 다르면 같이 다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계속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이 하나도 다르지 않고 백프로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들은 모두 진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은 8장 17-18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이 되어 주신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거짓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친구, 직장 동료, 연예인, 정치인, 교수님 등 누가 말하던 예수님의 말씀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예수님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계속 말씀드리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명확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구약의 창세기부터 신약의 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예배를 빠지는 것보다 내 친구를 미워하는 것을 더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십일조를 안 드리는 것보다 교회 사람을 꺼려하는 것을 더 미워하십니다. 사소하게 죄를 짓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냉정한 것을 더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에 의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오늘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지 고민해봅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지 입니다. 왜냐하면 내 사랑의 방법은 죄와 상처로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집착하는게 사랑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사랑의 방법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사랑하신 방법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 가장 애쓰는 분을 따라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담임목사님입니다. 담임목사님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방법이 헷갈린다면 담임목사님에게 여쭤보십시오. 이 때는 어떻게 사랑할까요?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러다보면 점차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구원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적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들고 부자로 만들어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구원자가 아니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을 통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혼을 살리시는 구원자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단 하나의 틀림도 없이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가르침과 행실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도 함께 하시어 우리의 저 천국 가는 길을 끝까지 인도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