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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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행복한 금요일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은혜로 살아가기에 행복한 것인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까지도 여러분들을 지키셨고,
앞으로도 여러분들을 지켜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단 한번도 우리의 삶과 함께 하시지 않은 적이 없으시고,
이 땅에 부르심과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로 지금까지 살아온 줄 믿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살아가는 이 순간,
오직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은혜의 고백은 오직 예배로만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순간을 감사로 여기며 예배할 수 있는 것, 이것도 은혜입니다.
좌우 인사할까요?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은혜입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은혜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있더라도 우리의 예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혼란이 있더라도 우리의 예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고민이 있더라도 우리의 예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 순간도 우리를 놓치시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으며,
예배하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1장과 2장 통해서 복음으로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의 근본, 본질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은 고린도서, 이 서신서는 사도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그곳을 방문하고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며 무려 1년 6개월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그곳을 향한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만큼 오랜기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하면 그곳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름에 단기선교만 다녀오더라도 한동안 마음이 그곳에서 떠나지 못해서, 그곳에 선교사님, 주민들, 아이들 할꺼 없어 한동안은 그곳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1년이 넘는 시간동안에 그곳에서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사역도 많았겠지만, 사도바울의 마음에는 고린도는 그래도 고린도교회, 탄탄한 교회가 세워진 곳으로 기대하며 한쪽 마음에 계속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에 있다보니 어떨까요? 우리도 마음에 계속 있다보면 듣지 않으려고해도 계속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떻게 되었더라, 어떻게 되었더라,
요즘 상황에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게 뭐죠? 뉴스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뉴스에 우리의 마음이 가장 많이 가게 됩니다. 마음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 마음에는 1년을 넘는 시간을 보냈던 고린도는 마음 깊숙히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무소식이 오히려 희소식일텐데, 어떻게 들려옵니까?
배경을 위해서 1장의 내용을 잠깐 보겠습니다.
1 Corinthians 1:11 NKRV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글로에집 편에 들려오는 이야기가 너희들이 분쟁이 있다는 거야.
그것이 어떤 분쟁이냐면,
1 Corinthians 1:12 NKRV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내가 누구 소속이냐를 두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분쟁은 가르치지 않은 것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여기는 누구 제자고, 여기는 누구 제자고,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는 바울사람이요, 나는 아볼로 사람이요, 나는 게바사람이요. 나는 그리스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싸우는 원인을 잘 보면 가르치지 않은 것에서 나옵니다.
자녀들을 키우시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부모가 그렇게 다투라고, 그렇게 논쟁을 펼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싸웁니다. 자녀들이 다툽니다.
놀랍게도 전혀 가르치지 않은 것에서 다툼을 만들어 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논쟁? 바울이 그런 논쟁하면서 지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친 것을 행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은 것에 사람들의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칩니다.
그 복음에는 싸움이 없습니다. 다툼이 없습니다.
그 복음에는 우리를 좋게하는 일, 구원하는 일만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 신앙 생활의 본질, 복음의 본질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고린도전서1 장에 감사와 인사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가장 먼저 본질을 이야기 합니다.
1장 1절에서 3절에 이르기까지를 보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소스데네가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보면 사도바울도 자신의 행동과 모든 것, 자신이 사도된 것으로 고린도교회에 가르침을 준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의 따라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된 사람들, 바울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나, 복음을 듣는 성도들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복음을 듣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설교를 하는 저나, 설교를 들으시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이나 모두가 복음을 들으며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 Corinthians 1:5 NKRV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모든 일, 모든 언변, 모든 지식을 허락해주십니다.
이게 왜 필요합니까?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섭니다.
우리의 창조 역사를 기억하면 더 간단해집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먼저 허락하신 한가지!!
Genesis 1:26 NKRV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땅을 다스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일과 모든 언변 모든 지식을 풍족하게 해주셔서 고린도 지역을,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이 고린도 성도들을 부르시는 목적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을 따라 고린도 성도들이 살아가길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는 다툼의 소리였죠. 그런데, 사도바울이 그 다툼의 소리에 크게 나무란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하나님의 큰 틀을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 것은
그래도 이들이 지난 1년 반동안 말씀을 바탕으로 세워진 성도들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그 이후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1 Corinthians 1:8 NKRV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의 날에, 심판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해주시리라,
더불어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1 Corinthians 1:9 NKRV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우리를 항상 부르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로 충만하여 세상을 살아가면,
하나님은 모든 상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곤고하여 고민이 깊어지고 다툼이 생기려 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고, 그 은사로 충만하여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모든 상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내가 책임지겠다.
너의 삶과 너의 모든 행동과 너의 모든 일상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선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의미에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책임자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주신 것에 만족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잘 다스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책임져 주십니다.
내 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범위 안에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범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다스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는 범위입니다.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까지 우리의 소유로,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없길 소망합니다.
이런 근본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도바울에게
그럼에도 이런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서도 상당히 조심하고 있는 것을 2장 초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Corinthians 2:1–2 NKRV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어떤 다른 말도 첨가하기 않고, 오직 하나님의 근본, 복음 만이 전해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복음을 전했으나,
지금의 상황은 성도가 다투고 논쟁하고 있는 모습에 놀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듣습니다. 복음이 전해듣는 상황 가운데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걱정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나아가야하나,
그러나 그 답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사용하시기로 하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신 그 능력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답을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이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행위에 있습니다.
1 Corinthians 2:3–4 NKRV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혹여나 말 잘하는 바울이 자신의 능력으로 전하는 말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해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서 전해지는 모든 말씀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전해지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유려한 말이나 설득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나타나심의 능력으로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1 Corinthians 2:5 NKRV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 Corinthians 2:6–7 NKRV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선언되는 메시지,
우리를 이 땅에 부르시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시는 말씀,
그 복음이,
세상의 말,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은밀한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지혜가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다시 근본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이미 만세 전부터 정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신 다스림의 능력을
하나님 주신 은사를 통해 펼쳐나아가면 됩니다.
그 안에는 어떤 논쟁이나 다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하나되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분열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면 분쟁, 분열은 없습니다.
1 Corinthians 2:8 NKRV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우리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는 일이 없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1 Corinthians 2:9 NKRV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방법은요.
1 Corinthians 2:10–11 NKRV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성령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길 원합니다.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가 유일하게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셨지만,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알 순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지혜삼아 세상을 헤쳐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1 Corinthians 2:13 NKRV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우리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육이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영이 우리의 육을 지배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살아가면,
우리의 육적인 삶도 평온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세상 만사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느껴지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이루셨으며,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우리를 통해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시니,
우리는 그 은혜를 입고 세상을 살아가면 됩니다.
어떻게 살아갑니까?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다툴일이 살아집니다.
성령께서 가치신 것으로 살아가면,
다툼이 살아집니다.
그 은혜가, 오늘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선포하는 말씀처럼,
우리의 삶에도 선포되어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화평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인도하소서,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 결정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결정이 되게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결정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것 외에 우리의 욕심이 그 이상을 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그 길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복음에는 다툼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툼을 만들어내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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