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13 금요기도회: 히브리서 2:5-18
0 ratings
· 78 viewsNotes
Transcript
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2:5-9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잘 나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기도회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먼저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 2장의 말씀으로 구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깨닫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찬송하고 높이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앞인 2장 1-4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들의 위대함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구약에서 말씀하시고 심판하셨다는 겁니다. 이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았다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인간은 당연히 천사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간보다 천사가 더 존귀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인간이 천사보다 더 존귀한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앞세워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구원을 베푸신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5절부터 보시면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 목적은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닙니다. 이 5절에서는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빠져있는데요. 바로 2장 1-4절에서 말한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목적은 세상이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만드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천사가 아무리 뛰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칫 잘못하다가 이 천사를 우러러 볼 수 있고, 심지어 천사를 숭배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회 때도 말했지만, 유대인 중에는 천사를 숭배하는 사상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만드시려고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사들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권이 주어진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세상은 천사들에게 복종해 왔습니다. 그러나 장차 올 세상은 천사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천사들에게 세상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이제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이제 인간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장차 올 세상에서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근원은 어디서 찾아옵니까? 바로 오늘 본문 앞의 본문들에서처럼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나신 그리스로부터 나옵니다.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기 때문에 인간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시편을 들고 옵니다. 특별히 시편 8편을 들고 오는데요. 6절입니다.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인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8편 4-6절을 인용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가 천사들이 아닌 인간들에게 주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5절을 인용하면서 인간 존재 이유와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8편 5절을 인용합니다. 보통 구약성경을 인요할 때 시편에서 이르기를, 또는 선지자의 글에서 말하기를 이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라며 정확하게 어디에서 인용했는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히 성경에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맞는데, 어디에 기록되었는지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히브리서 기자가 본문의 출처를 알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정확하게 출처를 밝히고 있지 않은 이뉴는 어떤 한 사람의 말이나 출처가 어디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자신의 편지를 읽는 독자들이 구약성경에 주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의 기자 역시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8편을 인용합니다. 8편은 하나님의 위엄과 인간의 존엄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와 달, 그리고 별들을 생각하고, 인간의 존엄함을 되새깁니다. 왜 인간이 존엄합니까? 인간 자체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한 것처럼 사람은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보잘 것이 없는 사람을 돌보시는지 질문합니다.
그러자 시편기자의 답변은 오늘 히브리서 본문의 7절과 8절인데요. 먼저 7절부터 보시면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합니다. 인간은 잠시 천사들보다 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천사에게 복종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내포하고 있는 성경적 사상이 있는데요. 인간은 왜 천사들보다 낮은 존재가 된 것일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원래부터 인간이 천사들보다 낮은 존재라고 말하지 않고, 낮은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잠시”라는 시간적 용어를 쓰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세상의 통치권을 빼앗으셨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경작을 할 때마다 가시와 엉겅퀴만을 내도록 저주하셨습니다. 세상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천사들보다 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편은 그것은 잠시일뿐 궁극적으로는 영광과 존귀가 사람을 위해 예정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창조 때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8절은 그 창조 때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장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바로 만물이 사람에게 복종하게 되는 모습으로 회복됩니다. 모든 것이 사람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현실적인 상황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바로 지금은 아직 만물이 사람에게 복종하고, 사람의 통치 아래 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도 경험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통치는 아직 역사 속에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질문은 도대체 이것은 언제 실현이 되는 것이며, 실현은 되기나 하는 것은 맞냐는 겁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부터 이 말씀은 단 한번도 실현이 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이 믿음을 지탱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왜 약속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또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요? 9절에 그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짐사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서 계시됩니다. 새벽기도회 때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옛적에는 많은 부분과 많은 모양으로 자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서 계시됩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예수님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은 존재인 사람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천사보다 낮게 되셨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시편 8편에서 말한 것처럼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과정이 참으로 특이한데요. 예수님은 죽음의 고난으로 영광과 존귀를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영광과 존귀한 모습,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화려하고 세상의 왕과 같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위엄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죽음의 고난으로 영광과 존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누리시는 왕적 통치는 친히 담당하신 죽음을 통해서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이것을 얻으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기에 세상의 통치권을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음은 모든 사람을 대신한 죽음입니다. 9절 끝을 보십시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있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만이 그 일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작정된 부르심을 성취하신 가장 완벽한 대리인이시며 청지기이십니다. 아담이 실패한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완벽하게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잠시동안은 천사들보다 낮게 되심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사람으로서 천사보다 탁월하지 않았고 그들보다 낮게 되셨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를 이기시고,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구약의 모든 제사장들의 제사는 제사장 자신을 위한 죽음이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위한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죽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드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건지심으로 자신의 무한한 은혜를 부으셨습니다. 여기서 “맛보다”라는 것은 “경험하다”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이 갖는 모든 끔찍함과 더불어 죽음 자체를 온전히 마주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맛보다”는 것이 자칫 일부만 경험한 것과 같은 뉘앙스를 주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경험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는 모든 인간이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의 죄를 이기심으로 가지신 그 통치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권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통치권을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이 세상이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이 세상의 통치권을 가지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 받을 그 통치권을 기대하고 확신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입니다. 종말론은 단순히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에서처럼 장차 우리가 받을 세상의 통치권이라는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미래를 소망하며 이 세상에 굴복하고 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우리를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안에서 세상을 승리하는 자들이 되는 겁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항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셨다는 점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통치를 받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으로 완벽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이 진정한 인간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진정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그분의 통치를 대망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이미 죽음을 이기심으로 세상을 복종시키신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올 세상에서 그 통치권을 우리에게도 주심으로 세상이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만드실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세상이 지금은 우리보다 강력해보이고, 우리가 세상에서 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에게 복종하게 될 그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굴복하고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이기고 세상이 복종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며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결코 지지 않으며 세상을 오히려 굴복시키는 존재가 될 겁니다. 우리는 천사도 받지 못한 세상의 통치권을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아주 귀중한 존재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서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너무나 강해보이고, 우리를 패배시키고도 남을 정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에 지지 않고 오히려 복종시키며 세상을 승리할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셨기 때문입니다. 장차 올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받게 되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게 될 겁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세상에 절대 지지말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세상을 승리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이 시간 함께 이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