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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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views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내가 죽는 삶이다.
Notes
Transcript
예수님의 참 제자로 가는 세 번째 걸음
“와서 죽으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9장 23절 말씀
서론
사랑하는 예랑 중고등부 여러분, 지금까지 수련회 재밌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녁은 어떠셨어요? 각자 하나씩 오늘 좋았던 것 간단히 얘기해볼게요. 오! 좋습니다! 정말 재밌는 시간,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지금 심히 걱정되는 것은 밥도 잘 먹었겠다. 슬슬 뭐가 몰려 오죠? 네! 잠이 올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밥 먹고 잠이 오는 이 식곤증이 정말 심한데… 한번 다들 기지개 펴볼까요? 스트레칭도 좀 하구! 좋습니다.
앞서 다른 프로그램, 순서들 다 중요한 것이었지만 전도사님은 이번 수련회에 있어 이 예배, 이 기도회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 확신합니다. 혹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너무 힘들고 지루하며 버텨야 하는 시간일 수 있지만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여러분 평생에 있어 가장 뜻 깊은 시간,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예배의 시간 가운데 성령님이 충만히 함께 하사 여러분들 각자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거듭나는 놀라운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아멘!! 다 같이 크게 외쳐볼게요! 아멘!!
본론1
우리는 요 몇 주간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가는 몇 단계를 보았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첫 번째 단계, “와서 보라!”, 두 번째 단계 “자기를 부인하라!”였습니다. 자! 오늘은 세 번째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 누가복음 9장 23절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멘. 세 번째 단계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 정말 깊이 알아보도록 할 건데, 여러분들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 있나요? 네 좋습니다.
최근에 유행하는 드라마로 JTBC에서 방영하는 ‘대행사’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 대행사라는 뜻은 남을 대신하여 특정한 일을 해 주는 회사를 말하는데 여주인공, 이보영이 있는 대행사는 광고대행사로 기업의 광고를 대신 계획하여 만드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이 드라마를 유심히 보면, 광고를 만들기 위해 거치는 작업들이 정말 많은데 그 중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작업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유명 연예인 섭외? 광고 컨셉? 테마 잡기? 다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작업으로 임팩트 있는 슬로건과 심벌을 정하는 일입니다.
왜 이게 중요한지 한번 예를 들면서 생각해볼게요. 자! 애플 하면 떠오르는 심벌, 상징으로 뭐가 있죠? 네! 사과가 있죠. 이 애플 로고만 봐도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면서 뭔가 가지고 싶은 마음이 똭! 듭니다! SAMSUNG 좋아하시는 분들은 별로 안 그런가요? 그럼 나이키 하면요? Just do it이란 슬로건과 함께 선 하나 똭 기억에 남으면서 운동할 때 입으면 딱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슬로건과 심벌의 효과입니다. 이 슬로건과 심벌은 소비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좋은 기억과 함께 큰 관심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광고 대행사 같은 곳에서는 슬로건을 정하는 것과 그 회사를 상징하는 심벌을 정하는 것에 많은 돈과 힘, 시간을 쏟는 것이죠.
이 슬로건과 심벌을 정하는 것은 비단 회사에서만 하는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자기 소개서를 쓸 때도 나는 어떤 사람입니다! 소개할 때 기억에 남을 만한 슬로건 혹은 심벌을 톽! 적으면 평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높은 점수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는거죠.
본론2
자! 아무튼! 전도사님이 왜 이렇게 길게, 슬로건과 심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서의 슬로건과 심벌도 있음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토록 길게 빌드업을 한 건데요.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의 슬로건은 무엇일까요? 네! 우리가 앞서 밟았던 단계, 첫 번째 단계, 와서 보라, 두 번째 단계 자기를 부인하라, 그리고 오늘 볼 말씀 세 번째 단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서 죽으라!” 엥? 전도사님! 와서 죽으라뇨? 이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립니까? 이게 무슨 기괴한 소리입니까? 십자가 지는 게 어떻게 죽음으로까지 가나요? 이렇게 놀라는 친구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도사님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가 과거 무슨 도구였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늘날 ‘십자가’는 악세사리와 어떤 장식물에 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 당시 ‘십자가’는 가장 불쾌하고 피하고 싶으며 끔찍한 처형 도구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통치에 불만을 표현하는 반란의 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해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보기를 보이는 처형 방법을 생각하다가 아주 끔찍하고도 끔찍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형’을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형이 왜 끔찍하고도 끔찍한 처형 방법인지 잠깐 영상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보셨나요? 십자가형이 불쾌하고도 피하고 싶은 형벌이었던 이유는 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을 통해 사람을 죽였다는 것과 그 고통을 지속적으로 주면서 천천히 사람을 말려 죽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를 거부했고 기피했습니다. 결국 이처럼 잔인하고도 끔찍한 사형이 십자가형이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자들은 절대로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고 십자가형을 당하는 경우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나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만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팍 상하면서 따지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런 질문들이 생기는 거죠. 아니! 예수님 좋은 분 아니신가? 사랑이 넘치시는 분 아니신가? 그런데 그런 분이 자기를 따라오는 참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 그 단계로 저런 끔찍하고 해괴망측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거야? 아니 왜? 도대체 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란게 그런 고통스럽고 끔찍한 일인가? 이런 질문이 막 생겨나는 것이죠.
본론3
사랑하는 예랑 중고등부 여러분, 방금 말한 대로 “와서 죽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생각과 관심을 끌만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떠나가게 만드는 슬로건, 에이! 이런! 나 예수님의 제자 안 할래! 라고 할 만한 슬로건입니다. 전도사님도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타협 없는 메시지인 “와서 죽으라!”는 것을 슬로건으로 제시하셨고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제자의 ‘심벌’로 제시하셨습니다.
본론4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자기를 따르는 참된 제자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 다시 말해 “와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을 말씀하신 이유로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절대 쉽지 않은 고난의 길임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다른 말로 “너, 내가 지고 간 십자가의 길, 날마다 걸을 수 있겠니?” 묻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참 스승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고난을 묵묵히 받으셨습니다. 어떤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온갖 모욕, 조롱, 채찍질, 어디 그뿐입니까?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쏟으시며 죽으셨고 우릴 대신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고난의 길을 걷기 위해, 희생의 길을 걷기 위해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나의 길을 걷는 사람도 똑같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22절 말씀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아멘. 마태복음 10장 22절 말씀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길을 따르는 참 제자는 반드시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우리가 생각해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것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나름 교회 생활도 모태 신앙으로 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를 내가 제대로 지고 있는가?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내 삶에 과연 그분을 위한, 그분 때문에 생기는 고난과 희생이 있는가? 이 질문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좋은 점만 부각시키며 포장하곤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이게 좋아, 복 받아, 구원 받아, 위로 받아, 삶에 기쁨이 있어!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를 때 생기는 희생, 고난, 헌신을 말하는 사람은 너무도 적습니다. 왜요? 피하고 싶으니까. 힘드니까.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너 나를 따를 때 져야 하는 십자가 날마다 지며 걸어갈 수 있겠니? 고난의 길, 희생의 길 걸어갈 수 있겠니? 그 희생의 길을 걷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시간과 돈을 쏟으며 가지려 했던 것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 나를 위해 너의 시간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어. 그래도 그것을 참아내며 감사함으로 나의 길을 따라올 수 있겠니? 여러분들은 오늘 예배 가운데, 기도회 가운데 아니! 평생에 이 물음에 답하면서 살아가셔야 합니다.
실제 예수님의 12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음까지 갔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자들 중 가장 먼저 죽은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고 마가복음을 쓴 마가는 이집트에서 말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죽었고 사도 바울도 목이 잘려 죽었으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최근 일을 얘기해볼까요? 중동 지역에 사는 한 여자 아이는 예수님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도 귀가 잘렸습니다. 케냐에 계시는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인데 케냐에는 기독교 마을이 있고 이슬람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슬람 마을 주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슬람교에요. 철저히 이슬람교를 따릅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한 가정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그러자 동네 사람들로부터 그 가족이 엄청난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어느 날 집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밖으로부터 돌이 날라오기도 하구요. 집을 불지르려고 하는 시도도 많았구요. 어느 날은 선교사님과 예배를 드리고 밖에 나오자마자 동네 사람들로부터 돌을 맞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먹을 것도 잘 팔지 않고 철저히 무시하는 그 마을의 왕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 가정은 여전히 예수님을 따르고 여전히 예수님을 절실히 사랑하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의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대한 참된 제자의 응답이지 않겠습니까?
본론5
자! 조금만 더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수련회인지라 평소보다 설교가 좀 길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설교를 전할 때 듣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말씀은 반드시 전해야 하는 말씀이고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조금만 더, 끝까지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날마다 자기 자신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죽인다는 의미가 뭘까요? 나의 주인된 모습, 내 욕심, 내 뜻대로 살았던 모습, 죄를 사랑하며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던 그 모습을 버리고 예수님의 뜻대로, 예수님이 살아가신 삶의 발자취 대로 살겠다는 것이 자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죽으라는 말씀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요구하십니다! 변화된 삶, 거룩한 삶, 진짜 제자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제대로 반응했던 사람으로 사도 바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스데반이 죽는 것을 마땅히 여겼고 그리스도인들을 마구 잡아도 괴롭히고 죽였던 것이었죠.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그분을 따라가기 시작한 이후 어떤 고백을 합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예수님처럼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죽었노라고 말합니다. 이제 자신이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 말씀 “나는 날마다 죽노라.” 아멘. 그는 이 고백 대로 자기가 날마다 죽음으로 오직 예수가 드러나는, 예수의 삶이 온전히 삶 가운데 드러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론6
사랑하는 예랑 중고등부 여러분,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와서 죽으라!”는 의미와 그 이유를 듣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떠나간 것처럼 나도 지금 떠나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요? 지금 당장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처럼 나도 고난 받고 희생해야 한다…? 나의 옛 모습을 철저히 죽이고 예수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게 어떻게 쉽겠습니까? 너무 어렵습니다! 보스 급 난이도에요!
참 이 말씀을 준비하며 떠오르는 찬양 가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마커스의 “주는 완전합니다”라는 찬양인데요. 이런 가사가 있죠.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 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참, 우리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가사입니다.
전도사님이 만약 여기서 설교를 끝내버리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 좌절감과 부담감만 잔뜩 안은 채 수련회 별로였어.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전도사님이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슬로건, 와서 죽으라, 그리고 심벌인 십자가를 지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간단 명료하지만 분명하고 가장 핵심적인 방법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날마다 조금씩 더욱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 아깝던가요? 내가 돈이 생겨서 가족들을 위해 뭘 할까 하다가 치킨 한 마리를 시켰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치킨 먹는다고 아이고 아까워라! 저거 내가 다 먹어야 하는 건데 하면서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깝지 않습니다. 나의 돈을 희생했고 일부 포기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아깝지 않은 거죠. 오히려 기쁜 것이죠.
또 연애를 하게 되면 많이들 듣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너 많이 달라졌다?! 또는 너희 둘 많이 닮아졌다?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너 옛날 모습은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많이 변했다?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죽고 예수님께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더 깊이 사랑할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전도사님이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틈 나는 대로 말할 것입니다. 당부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고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먼저 받아 누리며 그분을 열렬히 사랑해 보십시오. 그렇게 될 때 전도사님이 확신하건대 여러분들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와서 죽으라는 예수님의 슬로건을 누구보다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는 찬양하며 기도회로 나아갈 겁니다. 그때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예수님! 더욱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와서 죽으라는 것을 거부하며 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는 진짜 예수님의 부르심 따라 참된 제자로 살아가길 원하오니 오늘 이 기도의 시간, 찬양의 시간 가운데 역사하사 주님을 향한 사랑이 샘이 터지듯, 강물이 넘치듯 넘쳐 흐를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이 시간 찬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