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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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과의 사랑의 합창
본문 말씀: 아가서1:8-17
서론
문화체육관광부가 563돌 한글날을 기념하여, 1500명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를 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답이 다양했는데요. 그 답으로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엄마, 어머니, 행복, 기쁨, 아름다움, 하늘, 가족, 사랑”과 같은 단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 중 압도적으로,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할 때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는 무엇이었을까요? 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이어서 다른 질문으로 ‘어린 아기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단어’를 물었는데, 어떤 단어가 1위를 기록했을까요? 아시다시피 부모님이 아기를 향해서 늘, “엄마! 아빠!” 이렇게 자주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당연히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단어가 ‘엄마’,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무슨 단어가 1위였을까요? 네! 그것도 ‘사랑’이 1위였습니다. 여러분도 이 설문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나요?
자! 우리는 자연스러운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선호하는 단어 1위가 ‘사랑’이었을까? 왜 아기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단어 1순위가 ‘사랑’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의미가 많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사랑’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단어입니다. 듣기만 해도 ‘사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푸근함, 편안함, 설렘, 두근거림, 뜨거움 뭐 이런 것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사랑’이 뭐야?라는 질문을 들으면 선뜻 답하기가 어려운 단어가 바로 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묻길 원합니다.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더 나아가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 관련된 것들로 무엇이 있습니까?
고대시대부터 인류는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 사상가들, 과학자들이 ‘사랑’에 대해 고민하였고 각자 나름대로의 답들을 제시하였습니다.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랑을 정의할 때,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정의하였는데, 육체적 사랑을 ‘에로스’, 도덕적 사랑을 ‘필리아’, 정신적 사랑을 ‘스트로게’, 마지막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이 이 육체적인 사랑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발전해 간다고 하였습니다. 20세기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는 사랑이란 ‘분리된 것을 연합시키려는 욕구다.’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뇌과학자들은 ‘사랑’을 ‘강박’과 ‘집착’을 넘어서는 ‘끊임없는 갈망’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속을 들여다보면, 마약을 흡입했을 때의 상태와 유사하다고 말하며, 사랑을 하게 되면, 더, 더, 더 강렬한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황홀한 것을 기대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로, 스콧 펙은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위해 자아를 계속 넓혀가려는 의지다.” 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말을 조금 쉽게 하면,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발전을 위한 행동, 또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자신과 타인이 노력하는 행위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어려우면 어차피 제가 말하려는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니까 넘기셔도 됩니다.
자! 이렇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봤는데,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보다 어디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 주목해봐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지혜의 원천이시며 진리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성경’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다 함께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잠깐 보길 원합니다. 4절부터 7절까지를 읽어볼게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성경은 ‘사랑’을 단순 감정이나, 이성, 뇌과학적인 효과가 아닌 자기 희생적인 행동과 타인의 선을 추구하는 ‘행동’ 즉 ‘동사’임을 말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는 행동입니다! 견디는 행동입니다! 사랑은! 온유, 곧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태도입니다! 사랑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높이는 것입니다. 배려하고 존중하는 행동입니다! 사랑은! 옳은 것을 기뻐하고 정의가 세워지도록 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모든 희생적 행동과 타인의 선을 추구하는 분, 그 기준이며 그 자체이신 분을 말씀하시며 ‘궁극적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다 함께 요한일서 4장 7절에서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7절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이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행동을 저 처절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드러내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사랑이십니다. 믿으십니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초대교부 중 한 사람이자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신학자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성부, 사랑받는 성자, 사랑이신 성령 이렇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이야 말로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분이며, 우리 모든 삶에 ‘사랑’의 행동을 행할 때, 표본으로 봐야 할 분 또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정의와 사랑의 가치, 사랑의 목적, 대상을 하나님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나와 타인 또는 나와 타 대상 안에서만 사랑의 의미와 가치, 목적을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동성애도 똑같은 사랑이다. 이성 간에 사랑에 있어서 동거, 혼전성관계, 바람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행위다.”라는 말도 안되는 말들을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뭡니까? ‘하나님’을 벗어나 진짜 사랑을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자리한 사랑,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안에 어울러지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사랑’의 개념에 대해 분명히 세우고 돌아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사랑의 근원이신, 사랑의 핵심 되신, 사랑의 표본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행할 때 온전한 사랑과 진짜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본론1
자! 사랑에 대해서 말했으니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사랑의 대상’, 곧 ‘누구와 ‘사랑’을 나눌 것인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대상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타나는데요.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 율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율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아멘.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와 묻습니다. “예수여! 모든 계명 중 어느 계명이 큽니까? 어느 계명이 우선됩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서 ‘그와 같으니’라는 뜻은 첫째 계명보다 둘째 계명이 낮거나,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닌, 첫째 계명과 같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등하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 사랑도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누구와 사랑을 나눠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하나님, 그리고 이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그 둘을 다 말씀드리지 않고,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웃 사랑은 다음 기회가 된다면 필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론2
성도 여러분, 앞서 본대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에게, 거기 있던 무리들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일까요?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자 성경과 여러 책들을 찾아보며 고민하였는데, 고민한 결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굉장히 풍성하게, 그리고 가장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성경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였을까요? 네! 바로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아가서’였습니다. 아가서의 뜻이 무엇일까요? 네!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 ‘아가’라는 뜻인데, 이 아가를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노래들 중의 노래’ 다시 말해, 노래들 중의 최고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기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노래길래, 노래들 중의 최고의 노래일까? 최근 가요들처럼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있어서 최고의 노래인가? 멜로디가 좋아서 최고의 노래인가?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이 노래가 최고의 노래인 이유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라는 두 남녀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가장 풍성하게 표현하며 서로 고백적인 합창과 감사, 기쁨의 표현들이 정말 아름답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노래 중의 최고의 노래라 합니다.
한번 볼까요?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말씀 9절에서 11절,읽어보겠습니다. 아 1:9-11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아멘.
여기서 ‘내 사랑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아가서 전체에서 ‘내 사랑아’는 술람미 여인을 가리키는 부분입니다. ‘내 사랑아’라고 하면, 무조건 아! 솔로몬이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을 부르고 표현하는 것이구나! 이해하면 됩니다. 솔로몬의 사랑 표현을 보십시오.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바로의 병거의 준마는 당시 나라들 중 가장 아름다운 말, 훌륭한 말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을 그러한 말과 같이 아름답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그녀를 너무 사랑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는 화려한 보석을 그녀에게 주는 것조차 아까워하지 않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솔로몬 왕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그럼 반대로 솔로몬의 사랑에 술람미 여인은 뭐라고 답합니까? 아 1:13-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아멘.
아가서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이 나오면, 나의 사랑, 내 사랑과는 반대로 누굴 가리키는 걸까요? 네! 남자인 솔로몬 왕을 가리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향해 사랑을 화답합니다. 어떻게요? 솔로몬 왕이 향기를 뿜어내는 존재, 자신에게 있어 향기와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향 주머니, 고벨화 송이 모두가 향기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뒤이어 나오는 15, 16절을 보십시오. 아1:15-16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아멘.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말하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에게 어여쁘고 화창하며 푸르고 화려하다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이 둘의 사랑의 합창, 그 뮤지컬과 같은 모습을 보며 그들의 열렬한 사랑, 뜨겁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이 둘의 놀라운 사랑 뒤에는 더 놀랄 만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배경일까요? 그 답은 그 둘의 신분 차이에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대로 남자는 ‘솔로몬 왕’입니다. 솔로몬 왕이 어떤 왕입니까? 다윗 왕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최전성기를 다스린 왕입니다. 성전을 건축했고 하나님의 지혜와 수많은 부를 복으로 받은 왕이었습니다. 성경은 그에게 모자란 것이 없었고, 세상의 권세 모든 재물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런 왕이 어떤 여인을 사랑했을까요? 포도원을 지키는 한 여인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절대 왕권을 누리던 왕이 그저 평범한 포도원을 지키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추측하게 됩니다. 아! 이 여인이 몹시,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나보다! 그래서 솔로몬 왕이 지나가다가 저 여인한테 첫눈에 반했나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아 1:5-6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아멘.
어떻습니까?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습니까? 아니요! 그녀는 햇빛에 그을려 거멓고 아름답다 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게달의 장막과 같이 거칠고 검은, 볼품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분명 그녀는 특별한 집안 배경, 특별한 직업, 특출난 외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여인의 어떤 배경, 외모, 지위, 부! 그 어떠한 것도 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분명한 이유 없이 그녀를 먼저 사랑하였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한번 그 술람미 여인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나는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미 왕궁에는 1000명이 넘는 예쁘고도 화려하고 스펙도 좋은 왕비와 후궁, 시녀들이 무수히도 많습니다. 나는 그들에 비해 내세울게 없어요! 상대적으로 너무 비교가 돼요! 그런데, 뭡니까? 왕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는 겁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이 술람미 여인이라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선뜻, “왕이시여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아니면 “아싸, 땡잡았다!” 이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그 여인이었다면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들고 도망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솔로몬 왕의 사랑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고백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그녀는 솔로몬 왕을 향하여 진심어린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녀는 솔로몬 왕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사랑이입니다! 피하는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그런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신도 진심어린 사랑을 솔로몬에게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녀가 솔로몬 왕을 사랑할 수 있었던 그 방법, 그 핵심은 그녀 자신의 열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솔로몬 왕을 사랑해보리라!” “내가 부담감을 이겨내고 사랑해보리라!” 이런 그녀의 열심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솔로몬 왕을 사랑할 수 있었던 방법은 그녀가 솔로몬 왕의 무조건적인 사랑, 계속적인 사랑, 압도적인 사랑에 젖어들었던 것에 있습니다. 그의 비상식적인 진짜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신뢰함으로 자신을 온전히 그 사랑에 맡기자 그녀 또한 마음이 놀랍도록 솔로몬 왕을 향하게 되었고 그를 온전히, 진실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론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 안에 놀라운 은혜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이 아가서는 단순히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만을 말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솔로몬 왕, 내 사랑하는 자가 곧 궁극적으로 누굴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을 가리키고, 술람미 여인, 내 사랑이 누굴 가리키는 것입니까? ‘우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감히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저 술람미 여인처럼 하나님과 비교했을 때 별볼일 없는 존재들입니다! 아니 오히려 죄로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검게 그을릴 때로 그을려버린, 죄의 오염이 묻을 때로 묻어버린, 이쁘지도 않은 미약하고 완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다가오사 무조건적으로, 계속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5:8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이토록 놀라운 사랑, 말도 안되는 사랑을 보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의문을 표합니다. “아니!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감히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데요? 당신과 같이 완전한! 화려한 분을 내가 어찌 사랑합니까? 오히려 나를 떠나셔야 마땅합니다 주님!”
그런데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죠. “그게 무슨 상관이니? 그냥 너가 너무 좋은데, 그냥 너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너와 늘 함께 하고 싶은데…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을 믿어보지 않겠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지 않겠니? 내가 너를 사랑하듯,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겠니?”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보겠다!’라고 하며 ‘교회 출석을 얼마나 자주 하겠노라!’ 일주일에 헌금을 얼마씩 꼬박꼬박 하고, 작정 기도 금식 기도 3일, 40일 하며 교회 봉사는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해보겠노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해보겠노라!’ 생각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이 나쁘다! 완전히 잘못됐다! 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 출석 매우 중요합니다. 헌금 중요하구요 열정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 교회 봉사 헌신하는 것 다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수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증명 수단,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쟁취해보겠노라! 증명해보이겠노라! 그런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나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신 그 사랑을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사랑을 향한 신뢰를 가지고! 그 사랑에 우리를 맡긴 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따라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화답의 세레나데, 합창을 부르는 방법인 것입니다.
결론
20세기 위대한 설교자이자 교사요 미국 기독교 역사상 60년 동안 베스트 셀러로 팔린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책을 쓴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을 끝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묻겠습니다. 사랑의 근원,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까? 진짜 사랑을 하나님과 나누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조건적이고 계속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그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그 사랑에 젖어 살아가십시오!
“하나님 부담스러워요! 그 사랑 잘 이해가 안돼요! 너무 허무 맹랑한 얘기 같아요! 나는 그 사랑에 못 미치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을래요!” 가 아닌 그 사랑에 완전히 젖어들도록 그 사랑을 알기 위해 힘쓰십시오!
그 사랑을 삶 속에서 인지하며 감사하며 감격하며 살아가십시오! 내가 그 사랑을 조금씩…! 정말 조금씩이라도 알아갈 때에, 그 사랑을 정말 조금씩이라도 느끼며 살아가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놀랍도록 주님을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와 고백이 넘쳐 흐르게 될 것이고 이전에는 절대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을 향한 갈망, 그리움, 매달림, 놀라운 사랑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동암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사랑이신 우리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게 되길, 온전히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하염없는 사랑과 은혜 베풀어주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 들은 말씀 기억하여 참된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우리 동암의 영가족 되게 하여 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누리고 그 안에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놀랍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일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과 조금씩, 정말 조금씩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더 사랑하게 되는 동암의 영가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의 사랑이요 생명이요 구원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