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율로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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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율법의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에 선하고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명령형으로 표현합니다. “~하라, ~하지 마라.”
율법에는 총 613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지 마라고 부정형으로 명령하는 것이 365가지입니다.
나머지 ~하라는 긍정형으로 248가지입니다.
~하지 마라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긍정형으로 바꾸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한 이교도가 당대 최고로 유명한 랍비 둘을 찾아갔습니다.
율법을 짧은 시간 동안에 한 마디로 가르쳐 주면 유대교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한 랍비는 방대한 율법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요약하란 말인가!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자신을 놀리면서 율법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랍비는 이교도를 쫓아냈습니다.
쫓겨난 이교도는 다른 랍비를 찾아가서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 랍비는 놀랍게도 한 마디로 말했습니다.
“네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핵심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강도당하고, 도둑질당하고, 사기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것은 싫어할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관계 속에서 필요합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아 보는 것입니다.
랍비는 ~하지 마라는 부정형으로 율법의 핵심을 요약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라는 긍정형으로 율법의 핵심을 요약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율법 613가지를 10개로 압축한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황금율이라고 합니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 황금의 법칙입니다.
율법에는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합니다.
이웃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내가 이웃에게 해 주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황금율대로 산다면 이 세상은 지상 낙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황금율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본론
본론
그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본성이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죄의 본질은 이기심이요 자기 중심성입니다.
죄는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나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살지 않고 나를 주인으로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나를 ‘왕’으로 선언하고 모두 그렇게 삽니다.
결국 ‘왕’인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니 결국 갈등으로 인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황금율을 지키지 않는 모습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여기서 비판이라는 단어는 악평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평, 평가를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6절 말씀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누가 개인지 돼지인지를 적극적으로 분별하며 평가하는 것이 있습니다.
15절 말씀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시며 그의 가르침에 대한 평가를 하라고 하십니다.
비평이나 평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고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진리와 오류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참과 거짓이 혼재하고 선과 악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분별하고 평가해야 개선하고 발전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시면서 스스로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평은 상대방을 헐뜯고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파괴적인 비판 정신은 무엇보다 상대방의 인격을 모욕하고 인신공격의 형태를 취하기 쉽습니다.
의견이 다른 것, 곧 견해에 대하여 반박하는 것을 인격 자체를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국 상대방 자체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기 쉽습니다.
북한에는 “생활 총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자기가 소속된 당이나 기관, 근로 단체에서 매주 , 매월, 매분기, 연별로 각자의 업무와 공과 사생활을 반성하고 상호 비판하는 모임입니다.
이것을 잘 하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상호 감시하면서 비판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악평해야 하니 의심하고 강하게 몰아 붙어야 하는 말투가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악평을 해서는 안 될까요?
첫째, 우리가 악평을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악평의 기준으로 최후 심판 때 하나님께 악평을 받기 때문입니다.
셋째, 내 자신이 나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점을 고쳐 주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악평을 하지 않고 건강하게 평가를 해 줄 수 있을까요?
자신의 죄악 됨과 잘못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께 회개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고쳐 줄 자격이 있습니다.
내 눈의 들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들보란, 건축물의 기둥 위에 얹는 기다란 목재를 의미합니다.
들보가 없으면 지붕을 얹을 수 없습니다. 들보는 매우 중요한 건축자재입니다.
너는 우리 집안의 대들보이다. 라는 말은 집안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 눈의 들보라고 하는 표현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결점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든 티는 어떻습니까? 매우 작지만 눈에 있으면 아프고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든 티는 나 자신의 들보를 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거룩한 것, 진주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의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진리를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 줄 때에도 삼가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해 주어야 합니다.
전혀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워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영적 분별력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농부는 때를 기다리는 법을 알고 추수하기 위해 익은 열매만을 따야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좋은 대인 관계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황금율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사실 방법은 유일합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황금율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줍니다.
사람들이 황금율을 지키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사랑과 공의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성을 깨닫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악 됨을 깨닫습니다.
인간이 피조물이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때 우주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인간이 해결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할 비난과 조롱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할 고통과 죽음을 대신하여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완벽하게 황금율을 지키신 유일한 분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황금율을 지키신 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황금율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공급받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지하며 하나 하나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아닌 황금률을 내 힘으로 지키려면 우리는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인 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황금률은 좋은 것이나 지킬 수 없는 우리에게는 짐이 되고 맙니다.
복음은 우리를 대신하여 황금률을 지키신 예수님의 사랑에 순종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와 같이 조금씩 황금률을 지키기 시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결론
결론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될 때 가능한 것이라고 주기도에서 배웠습니다.
이 관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님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황금율로 살 수 있고 영적인 분별력과 같은 좋은 것들은 모두 기도를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기도를 통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기도 없이 주어지는 것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버릇이 나빠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를 향하여 동일하게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는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 우리에게 적절한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산상 설교를 들으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아마도 비참한 마음이 드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상설교 대로 사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만 가져도 살인죄에 해당된다.
음욕을 품기만 해도 이미 간음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라면 산상설교의 삶은 우리의 골,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 중심의 삶과 공동체를 사는 사람들은 골 때리는 사람들입니다.
막 태어난 아이가 걷고 뛸 수 없는 것처럼 완벽하게 산상설교대로 살 수 없지만 가능성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대접 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황금율입니다.
오늘 나의 필요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기도의 그릇에 담아 아버지 앞에 올립시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