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노래하라(사 12:1-3)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
Notes
Transcript
감사하고 노래하라(사 12:1-3)
이사야 12장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고 노래하라」는 말을, 「여섯 절의 말씀에서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
지난 주간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 때문에 감사했고, 무엇을 노래했나?」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명색이 목사인데, 감사해야지! 노래해야지 않겠어?」하며 셀프 강요를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저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는 결정적인 Point」를 말씀하셨습니다.
Point“그 날”(1a)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그 날”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해방되는 날이며, 확장하면「하나님이 친히 메시아(구원자)가 되셔서 오시는 날」입니다.
그렇고 보면,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700년 전에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리며, 성탄송(캐롤)을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 부르지만,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며기쁘다 구주 오신다네’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오시는 「그날」이 「무슨 날」이기에 이사야는, 넘치는 감사를 노래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본론>
1. 하나님의 진노가 돌아섰고,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오신 그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은, 「하나님의 진노가 돌아서고, 주님이 나를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1)
물론,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기는 아직 하나님이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1절을, 「예언적 완료형」으로 말했습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모두,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반드시 성취된 일로 선포했습니다.
이사야가 사역하던 시기의 유다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어두운 죄의 길로 갔고, 도대체 돌아올 줄 모르는 강퍅한 세대였습니다.
그래서 죄악을 견디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공의의 발동으로, 하나님이 노하셔서(1b),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을 각각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한 뒤, 끌려가 온갖 잡 족속과 뒤섞여 살게 되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파괴되고 이방 땅에서 포로로 살게 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아무리 성도라 할지라도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1절 중반부는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1c)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을 향한 하나님 분노가 돌아섰다」는 뜻입니다.
누가돌아 섰다구요?하나님이 돌아 서셨습니다. 이사야는 「죄 용서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내가 언제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당연히 용서해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나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외면을 받는 것이 마땅하였지만, 하나님이! 외면했던 당신의 얼굴을 나를 향해 다시 돌리셨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어떤 죄든지 용서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당신의 얼굴 다시, 저와 여러분을 향해 돌리셨을까요? 그 답은 이어지는 “나를 안위하시오니”(1d)입니다.
안위”의 히브리어 「나함 」의 뜻은 「위로」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나함」의 뿌리는 「깊은 숨」을 쉬며, 「후회하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행하신 일에 대해 후회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수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후회는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 인간에 대한안타까움」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깊은 숨을 쉬시며」, 「심판을 돌이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이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깊은 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비록 죄를 미워하시기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죄에 대해 분노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불의를 떼어내어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3-5)
그렇다면, 메시아;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날」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유일한 방법이요, 그 위로를 인하여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그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하나님의 위로가 오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과 위로의 그날을 약속하셨습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포로생활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이 약속을 붙들고 감사하고 노래했습니다.
나에게도 그날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주님이 마를 날 없는 나의 눈물을 그치게 하시고, 모든 고통이 멈추는 그날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현재 고난을 이겨낼 힘이 되어 주시고, 미래를 열게 하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진노를 돌이키시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모심으로, 진정한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우리가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를,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2)
2절은 두 번이나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2b) 노래합니다.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습니다」따라서, 「나는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겠습니다」는 고백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힘을 주어 고백한 대에는 과거 유다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일」에서 「실패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유다를 침략하여, 주요성들이 약탈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7: 2-9)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고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두려워한 나머지, 여호와의 성전과 궁궐의 금은 보화를 싹 모아다가 앗수르 왕에게 바치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위기 앞에서 여지없이 하나님이 아닌 눈에 보이는 다른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눈만 가진 이방인들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결국 훗날, 주님은 포로기라는 혹독한 시간을 지나게 하시며, 세상의 그 어느 것도 결코 구원자가 될 수 없음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삶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때문에 이사야는 보라!(2a)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2c)라고 말하며, 아하스와 같은 「믿음 없는 행실」을 그만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렇게「하나님만 나의 구원이시다!」는 고백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유일성」을 「나의 전인격과 삶에 천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구원의 길도 하나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우리는 수시로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납니다. 만약, 그 위기들 앞에서눈에 보이는 세상」에 눈을 돌린다면, 결단코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신뢰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고, 유일한 내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주님께 온전한 신뢰를 드리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사야 처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 40:31)라고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는 세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노래를 드릴 수 있는 키를, 우리에게 쥐어 줍니다.
그 키는,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여호와가 주시는 구원을 「나의 구원」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나와 상관 없는 하나님」이라면, 여호와가 주시는 구원도 「나와 상관 없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2절 한 절에서만나의」라는 표현을 무려 다섯 번이나 사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되어야, “나의 힘”(2d)이 되시고, “나의 노래”(2e)가 되시며, “나의 구원”(2f)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도마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고백할 때, 우리의 신앙은 진정으로 힘과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고백으로, 세상이 주는 「」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으로,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본문은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셔서 이제 주님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그날,
그리고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라고 고백하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3)
팔레스틴은 건조한 땅이었기 때문에 물이 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거친 광야 40년을 여행하는 동안, 물은 생명을 구원하는 더 없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구원의 기쁨」을,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우물을 발견하고 느낀 기쁨」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그 기쁨 때문에진짜 감사」하고 「진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다 죄에 사로잡혀, 죄의 종 노릇하다가, 허무하게 죽어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얼마 가지 못해; 잘하면 100년쯤 살다가, 덧없이 인생을 끝마쳐야 할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샘물을 마시면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그 샘물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10:10).
예수께서 주시는 물(구원)을 마시는 자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칩니다(요 4:14; 7:38).
흘러 넘치는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게 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노래하게 합니다.
진노를 돌이키셔서 나를 위로하심으로 고통과 수고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만 나의 구원이라는 고백으로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십시오!
주님이 주신 힘으로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노래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