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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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새이심
나의 요새이심
본 시편 표제는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라고 기록한다. 아마도 사울이 사람을 다윗이 거하는 집으로 보내 밤새 지키게 했다가 아침에 죽이라고 명령한 사건으로 보인다. 그때 아내 미갈은 이 밤이 아니면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다윗을 탈출 시킨다.
이런 상황이 남일 같지 않은 것이 불과 12.3일에 모든 국민이 지켜본 국회의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듯 위급한 상황은 누구나 만나게 된다. 사고나 질병 등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기도 하고 다양하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생각해보면 한치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럴 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을 의지했다. 1절부터 5절까지 ‘나’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어 보라.(12번) ‘나의 하나님여 나의… 나를..나를..’ 급한 기도는 ‘내가’ 중심이 된다. 우리는 ‘나를 …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피할 때가 있다. 시편은 ‘나’는 그렇게 간구하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래서 기도가 신학이 필요 없다거나 하나님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가장 긴급한 기도에 대한 ‘반드시 그렇게 기도하라’, ‘그렇게 기도해도 된다’는 의미에서 살펴야 한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때 ‘그때 그렇게 했지’, ‘이제와서 도와달라고 해’ 등 이유가 붙지만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가르침은 ‘괜찮다’이다. 생명을 다투는 어떤 일에도 신자는 ‘나를’ 끊임없이 외쳐 부르짖어야 한다. 기도에는 ‘나 그리고 하나님 그리고 그들’이 있다. 다윗에게 그들은 ‘나를 해하려는 자들’이다.
우리나라를 ‘해하려는 자들’은 분명하다. 눈에 보인다. 우리 삶에 방해꾼으로 등장해 일상을 해하는 자들이다. 여기에는 국가적인 원수도 있지만 일상으로 만나는 윗집의 소음일수도 아랫집의 민감한 반응일수도 있다. 다윗은 가까운 벗에서 심지어 가족이 원수다. 그럴 때 ‘기도하라’,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3절부터 ‘그들이’ 한 행태를 고발한다.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기도자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무시는 듯 나를 살펴보지 않는 마음까지 있다. 그러다 갑자기 ‘만군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곤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5)라고 기도를 확장 시킨다.
왜 그럴까? 세상이 그렇게 미워하고 시기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죄 없는 자들을 죽이는 일을 계획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악인’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들은 ‘개처럼 울며 성을 두루 나니고’(6)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 입술에는 칼이 있다’(7)고 고발한다. 그렇기에 ‘나를 위해’ 부르짖음은 곧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요구임을 분명하게 기도하고 있다.
이번 계엄 사태로 통치자는 나와 모든 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하게 독서하는 것, 낚시하는 것, 홈 쇼핑을 클릭하는 것에도 그러하다. 그러니 기도자의 고통은 이런 세상에서 오로지 하나님께만 간구하는 이유가 된다. 진정한 통치에 대한 소망이다. 그렇기에 ‘진노’, ‘소멸’, ‘다스리심’과 같은 왕의 통치적 용어를 쓰면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위해’ 지난 밤을 기도로 보낸다. 그렇게 간구하고 원수를 확인하고 원수가 주는 두려움을 직시한다. 마치 새벽에 밝아오는 동쪽을 바라보며 소망한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른다. 주는 나의 요새이시다. 환난 날에 피난처이시다’(16) 생명을 빼앗길 위기를 경험할 때 죽음의 공포를 마주할 때 ‘나를 위해’ 부르짖는 것이 기도자가 통과할 어묵한 밤이겠지만 분명이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세, 나를 긍휼히 …’(17) 각자 모두를 품에 안아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기 바란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