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4) 4: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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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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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정말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바로 예수님 당신이 통치하시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께서2000년 전에
이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 다시 오셔서 모든 심판주의 역할을 마무리하심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그 나라의 백성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우리 예수님은 비유로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였습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과 같은 우리의 마음에
복음의 씨가 떨어졌을 때, 어떤 열매가 맺는지 보고,
우리로 하여금 좋은 땅이 되기 위하여
믿음의 기도와 훈련을 통해
그 밭을 기경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는, 첫번째로 말씀하신 것에 구체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등불되신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가 헤아림을 받기 위하여
현재 등불로 주어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헤아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기도를 통해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 밭이 기경되어 좋은 땅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라나는 씨의 비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씨가 심겨져서
성장하듯이 “더디지만 반드시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매일을 자신의 욕심과 쾌락을 쫓아 살게 되고,
매일을 천하 태평처럼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날은 반드시 오고, 그때가서 후회해봐야 소용은 없는 겁니다.
마지막 넷째는 지난 주에 살펴봤던
겨자씨 비유였습니다.
겨자씨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작은 것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하지만 그런 겨자씨도 심겨져서 자라면, 1,5에서 2미터 정도가 자라게 되고
지난 주 말씀처럼 지가던 새가 그 그늘에 잠시 쉴 만큼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런 곳입니다.
시작은 초라하고 미약하지만,
그 완성은 창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헌신이
때로는 초라하고 속상한 것들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마침내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초라함과 수고를 모두 보상하고 남을 만큼의
위대한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계십니까?
오늘 하루 벌써 해야할 일들로 머리가 아프지는 않습니까?
돈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 그리고 기타 문제들로 인해서
이미 머리가 많이 아픈 관계로...
혹,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잊고는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동아줄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생명의 동아줄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놓치면 바로 밑에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생명의 동아줄이라는 것을 기억해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어떤 고난과 문제의 바람이 불어도
이 나라의 소망을 꽉 붙잡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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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정해놓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한계를 정해놓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한 마을에 두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농부는 모두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였습니다.
두 농부와 마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던 중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 짓는 일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두 농부는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첫번째 농부는 하나님께 간절히 비를 내려달라고
새벽마다 부짖으며 기도했고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만
기다렸습니다.
두번째 농부는 첫번째 농부처럼 열심히 기도한 다음에
밭으로 나가 비가 많이 올 것을 생각하며
밭에 배수로를 정비했습니다.
사람들은 두번째 농부를 비웃었습니다.
“하늘이 이렇게 맑은데 비는 무슨 비야”
첫번째 농부도 사실 마을 사람들과
마음이 같았습니다.
자신은 비록 기도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지금 당장 마른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고,
상당한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농부는 기도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될줄도 몰라서
배수로를 정비해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농사를 망쳐버렸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농부는
이미 정비해놓은 배수로 때문에
가뭄을 이겨내고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한계를 정해놓고 믿느냐?”
“아니면, 한계를 정해 놓지 않고 믿느냐”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우리에게 “한계를 정해놓지 않고 믿는 신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Contents
Contents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를 마치시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를 마치시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여러가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함께 33-3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님은 비유로만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 비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비유로서 가르치신 이유는
“열린 마음으로 듣는 사람에게는 비유가
더 말씀에 집중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믿는 자에게 깨달아지는
은혜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믿음을 가진자로서 그 말씀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은 말씀에 계신된 진리를 더 깊게
알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제가 마가복음을 강해하면서
“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예수님의 가르침이 등장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어지는 본문의 이야기에서도
배가 등장을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함께 35-3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모두 말씀하신 그날
날이 저물자 제자들에게 건편으로 건너 가자 하시며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서 가는 곳은 “거라사 지역”입니다.
이곳은 이방인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예수님은 이방인이 있는 곳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제 출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37절의 말씀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때에
갑작스런 큰 광풍이 발생했고,
그 결과 배 안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거너는
이 호수, 즉 갈릴리 호수는
광풍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는 어부출신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정도 문제를 미리 대비했을 수도 있고,
또 문제가 발생해도 베테랑 답게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경험과 방법이
모두 통하지 않을 만큼의 광풍과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38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님은 배의 선미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러며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그들은 다급히 예수님을 깨웠고,
예수님은 배의 키를 잡거나, 물을 퍼내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하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누구도 하지 않을 행동을
하셨습니다.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에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예수님의 말씀에
바람과 바다는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랍게 반응을 합니다.
40-41절입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님은 배 위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이 그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여러 역사를 경험했다면,
그래서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했던 겁니다.
41절의 말씀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그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 속에 훌륭한 선생이나 영웅과 같은 존재로만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선생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당연히 한계가 있는 믿음이고, 믿음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믿음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이번 말씀을 통해
배 위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못하며
믿음이 없어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다시 한 번 가르쳐주셨습니다.
Delivery
Delivery
“예수님은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한계가 없으신 전능하신 분”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갈 때,
때로는 하나님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놓고 믿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실컷 기도하는데, 걱정과 염려는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배 위에서
제자들과 같이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는가를
날마다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가운데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의심과 염려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기도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의심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게 되어있습니다.
End
End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한계가 없는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시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가뭄이 들었다고 한 해의 농사를 멈추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파도가 친다고 조업을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자연환경, 정치관계, 사회적문제,
불가능 하다고 여기는 의료의 현장 가운데서도
능히 일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나 누구이기에”라고 말했던
제자들과 같이 우리 하나님을 바로 알기를 소망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기도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