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나심은? / 마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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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나심은? / 마1:18-25
우리 나라도 기후의 변화가 심해지면서 겨울에 별 준비 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에 올라갔다가 조난당해서 어려움에 처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설경을 보려다 설악산에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등산객 11명이 눈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119 구조대는 2시간 만에 이들을 모두 무사히 구조했습니다. 생명의 위기를 당하게 되었을 때는 돈이나 세상의 명예도 다 소용없고, 구조의 도움을 받아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모두 조난당한 등산객들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교만한 마음에 스스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잘라버리고 방황하는 자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구조대원을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물론 수많은 천사들을 구조대로 보내면 좋겠지만 천사들은 인간들을 구조할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모두 결함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조된다고 해 봐야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 인간과 똑같아지기 위해서 여자의 몸에서 어린아이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질은 우리 인간과 달랐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또 어떤 천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두 사람은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그들은 서로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당시에 유대의 결혼 풍습을 보면 세 가지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약혼의 단계입니다. 약혼 하는 것은 본인들이 어릴 때에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양가의 부모나 직업적인 중매인의 합의에 의해서 성립이 됩니다.
다음에 정혼하는 단계입니다. 당사자들이 어느 정도 성숙하였을 때에 그들의 동 의에 의해서 앞서한 약혼을 재가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사자들이 약혼을 더 이상 진행시키기를 원치 아니하면 파약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정혼이 되면 법적인 효력이 성립됩니다. 정혼하는 기간은 대략 1년으로 잡습니다. 이 기간동안에는 그들이 남편과 아내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며 잠자리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기간동안에 총각 처녀가 결혼식을 위한 최종적인 준비를 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마지막 단계가 결혼입니다. 정혼 기간 1년이 끝나고 결혼 예식을 올리게 되면 첫 날밤을 치르게 되고 완전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 기간에 있는데, 정혼한 처녀가 뜻밖에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신랑 될 요셉은 심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 다.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되었단 말인가? 너무나 충격이 되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정혼한 처녀가 임신을 하였을 경우에 율법은 이런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고 엄하게 규정짓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아기를 임신하기 전에 천사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마리아를 찾아와서 그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들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수태고지 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 수태고지를 소재로 한 화가들의 그림이 많았는데, 그림과 같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수태고지를 그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한 여인의 뱃속에서 태아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머리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만드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모든 영광이나 지위를 다 버리고 인간의 아주 작은 한 몸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더 높아지고 더 크게 되고 더 유명해지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작아지고 또 작아지고 작아져서 완전히 사람보다 더 작아져서 한 물체처럼 되셨고 드디어 태아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부명한 사실은 남편과 함께 동거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것입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우리 기독교의 신앙 고백의 핵심이 요,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처녀 탄생보다도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미 태초에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창1:1,2절에 보니 창세기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 생명을 공급하실 그 자리에 이미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Soul)이 된지라"(창2:7)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사람 되게 하는 일에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성도가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생명의 부활에 동참하는 일도 그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은 양자의 영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성령을 모신 사람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요,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 문제로 엄청나게 충격을 받고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고 마리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그의 남편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요셉은 부정한 여자와 잘 정도로 타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은 마리아의 부정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대고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할 정도로 나쁜 성품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용히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 일을 생각할 때라는 것은 요셉이 자기 약혼자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말은 하지 못하고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요셉이 얼핏 잠이 들게 되었는데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즉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약속을 믿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임신한 아이가 바로 메시야이며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따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 자체를 엄청나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요셉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고 사모했던 하나님의 메시야기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요셉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죄는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어려운 방법으로 아기가 되셔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도우시고 구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오늘 우리에게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국방력의 도움이 필요하고, 경제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가난이나 질병에서 건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이 당시에는 아주 평범함 이름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렇게 예언합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메시야가 나시면 임마누엘이라고 이름 지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라고 이름을 짓지 말고 임마누엘이라고 지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을 것 같은데 왜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지 않고 예수라는 평범한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 세상의 통치자들이나 지도자들은 반드시 그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체를 곧 바로 드러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건져내시기를 원하셨고, 구원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자신을 주시기 위해서이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되신 분이십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괴로워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징표가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징표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우리 인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성으로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셨고,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 죄를 대신 책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 동안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소식을 정하시고, 마음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시며, 갇힌자를 놓아 주시고, 슬픈자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33년 동안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떠날 때에도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28:20)
어떻게 세상 끝날까지 임마누엘 하십니까?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십니다.(요15:26) 그리고 아들 예수의 영이십니다.(요15:7)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그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임하셨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의 마음속에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임마누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임마누엘 하십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입을 벌리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입에 말씀을 주사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큰일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행2:11) 하나님의 큰일이 무엇입니까! 예수 십자가의 대속 사건과 예수 부활 승천의 사건입니다. 성령은 베드로의 입을 열어 구원을 설교하였습니다. 그 결과 3000명이 일시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마음 상하고 답답하신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이 시간 임마누엘 하시는 예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기사와 표적으로 임마누엘 하십니다. 성령 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성전 문 앞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걷는 일이 벌어 졌습니다.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 기도하고 찬송하였더니 옥문이 터지고 착고가 열리는 기사가 있었습니다.(행12:-16:)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연보하려고 땅을 팔았으나 탐욕을 부리고 성령을 속이다가 그 자리에서 천벌 받아 즉사한 표적과 기사가 일어 났습니다.(행5:1-10) 실로 임마누엘 하시는 주님의 무서운 표적입니다.
지금도 우리 새군포 교회를 통해서 임마누엘 하심을 믿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로, 유다 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끝까지 복음이 확산됐습니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박해자 사울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갑자기 예수 선교사로 변했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임마누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4절 25절을 보면, 보통으로는 남들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부부 사이의 은밀한 이야기고, 남들에게는 잘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요셉이 예수를 낳을 때까지는 마리아와 부부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4–25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은 참으로 신실하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마리아의 임신을 의심하였지만 천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의심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셨습니다. 누가복음 1:31–32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말씀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는데 아들은 또 누구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알아야 성탄의 참의미를 알게 되겠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려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쓰이고 있는 아들은 세상에서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생식적 의미가 아닙니다. 흔히 아버지는 생산자요, 아들은 피조자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의 아들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부정모혈로 인해서 출산된 자식, 아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계신 삼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복 받을 자격 없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입고 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 위에 따로 계신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과 동행하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도우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함께 하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나신 것은 인간의 비천함과 가난함과 처참함에 동참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셨기에 슬퍼하시고 배고파하시고 또 괴로워하시고 또 죽을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알아 가지고 사치스러운 하나님으로만 믿으려고 할 때에 나와는 거리가 먼, 높은 보좌에 앉아있는 하나님으로만 끝나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도 여기 강단에서 설교 합니다. 이전에 저는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의 신앙 정신과도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다만 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았을 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의로운 행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뿐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 지구는 여관방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오는 사람들은 다 나그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 나그네들이 드나드는 이 여관방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오심은 자기 백성에게 한없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민족과 나라와 개인이 수많은 역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방에서 우격다짐을 받으면서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 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성도는 돈으로 사는 자도 아니요! 명예로 사는 자도 아니요! 세상의 기쁨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로 사는 사람이요, 은혜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은혜 중에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성탄의 절기에 은혜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생활 하시는 분들은 더욱 은혜가 넘치시고! 육신적이신 분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새군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나심을 바로 알아 주님께 유익한 자들이 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탄에 우리 교회 온 가정과 기업 위에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예수님으로 충만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임마누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 올려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에 단단한 마음이 녹아져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모두 새 생명을 얻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와서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고, 그 은혜에 힘입어 사명감당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뜻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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