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 속의 돋보이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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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8
평범한 가정 속의 돋보이는 신앙
사무엘상하서는 원래는 한권의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세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데 사무엘, 사울, 그리고 다윗입니다. 인물이 이어지는 것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사무엘상은 마지막 사사로 선택된 사무엘로 사사시대의 막을 내리고 사울의 선택으로 왕정시대가 열리는 연결다리와 같은 책입니다.
사무엘서 처음 시작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그렇게 자랑할 만한 가정도 아니고 특별하지 않은 당시 사회로 봐서는 평범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엘가나라는 사람이 어느 후손이고 그가 어디 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에게는 두 아내 브닌나와 한나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다는 이야기로 사무엘서는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가정의 가장인 엘가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지금 사무엘서의 배경이 어느 시대입니까? 사사시대입니다.
사사기에서 삼손이 죽은 것으로 사사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시대의 배경을 사무엘상이 이어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사기 21:25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던 시대였습니다. 왜요?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사시대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왕이 있었지만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사시대는 자기 멋대로 사는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맞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회.
그런데 예배 생활에도 이러한 멋대로의 신앙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3절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엘가나의 예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매년 자기 성읍 라마다임소빔에서 나와 하나님의 중앙성소가 있는 실로까지 와서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사시대에 사람들은 실로까지 와서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생각해서 좋은 곳, 편한 곳을 정해 그곳에서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는 자기 만족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엘가나는 달랐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의 삶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삶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당시 사회에서는 그냥 평범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의 신앙은 다른 어떤 가정 보다 돋보이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으로 왜곡하지 않고 말씀을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비범한 신앙을 가진 엘가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세상이라는 장소와 지금이라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돈도 벌 수 있구요. 편하게 이 시대를 살수 있습니다. 물론 돈을 벌었다는 것이 편법을 동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할 때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이겨내고 거들떠 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삶의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이 주위의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내가 올라갈 때 짓밟히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비범한 신앙이란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따르는 순종입니다. 자기 소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혹시 나의 신앙 생활에 왜곡되거나 변형된 것은 없는지 말입니다.
본문은 엘가나의 또 한가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엘가나와 그 가정이 매년 중앙성소가 있는 실로에 와서 예배하고 제사를 드릴 때 그 성전에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3절 중반부에 보면 그 제사장들은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실에 대해 사무엘상 2:12-17절에는 세가지 정도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12절에 그들의 행실이 나빴고 여호와를 알지 못한 제사장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제사장인데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제사장. 즉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관심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이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사람들이 제사를 위해 제물을 가져오면 세 갈고리로 냄비나 솥에 있는 고기를 찔러 갈고리에 걸리는 것은 모두 자신의 것으로 빼놓았습니다.
세번째는 제물을 태우기 전에 먼저 바치는 사람에게 생고기를 달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사실 엘리의 두아들의 모습은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엘가나 이사람은 레위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엘가나의 눈에 비치는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실은 다른 어떤 사람들이 보는 것 보다도 더 많은 비리를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가나는 이 두 제사장이 있는 실로에서 매년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단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매년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요즘 뉴저지에 대형교회 몇개가 시끌시끌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예배 분위기도 예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정말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교회가 시끄러우니 조용한 교회 찾아 떠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교회를 다니면 적극적으로 문제에 관여 하여야 하는가?
떠나시는 분은 나름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대해 비판할 수는 없을거예요.
그러나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떠나기 보다는 그럴 수록 더 자리를 지켜 주는 것이 교회가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엘가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문제를 확대해서 키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청소년과 청년시절을 지낼 때 다녔던 모교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셨는데요. 목사님 성함이 김찬호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분이 얼마나 인품이 좋으신지 제가 청년 회장 하면서 이분을 따라다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분이 다른 교회 설교를 가셔서 봉투를 받아 오시는 것을 본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함께 갔을 때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노회에서 별명이 있으셨습니다.
해결사
노회에서 분란이 있거나 싸움이 있으면 이분이 언제든지 해결사로 등장하시고 문제를 풀어내셨습니다.
정말 본받고 싶은 분이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났다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와 한나였습니다.
본문을 보니 한나는 브닌나로 인해 힘든 삶을 살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6-7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엘가나가 조금 지혜롭지 못했던 같습니다.
브닌나와 한나를 띠나게 차별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제물을 한나에게는 곱절로 주었고 그것을 브닌나가 알았거든요.
솔직히 저 같아도 많이 서운할 것 같습니다.
나는 자식도 낳았는데 잘해주려면 나한테 잘해야지.
그러나 엘가나의 눈에는 자식이 없는 한나가 더 애처롭고 가엽게 보였나봅니다.
브닌나의 이름의 뜻은 대적자, 격동케 하는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처럼 한나는 늘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전환해 보면 어떨까요?
만일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히거나 격동케 하지 않았다면
늘 한나에게 친절하게 다정하게 그저 지금의 삶이 편안하도록 브닌나가 옆에서 도와 주었다면 어땠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한나가 절실하게 아들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 5-6절을 보겠습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지금 한나가 자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한나에게 어떤 생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한나의 임신을 막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막고 계셨을까요?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고생시키고 힘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고자 하시는 연단입니다. 한나를 기도의 여종, 믿음의 여종으로 빚으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한나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통곡하면 기도했습니다. 인생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로인해 개인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이스라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한나는 자식 자체를 얻기 보다도, 하나님을 얻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한나가 이렇게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었던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는 분명 한나의 입장에서 보면 원수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좋을 사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데 그로 말미암아 더욱 하나님께 부브짖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난이 없는 삶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현재 내게 있는 고난이 속히 떠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늘 행복했으면 좋겠고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아무리 기도해도 고난은 늘 나와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왜 그런지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고난과 아픔을 통해 하나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현재 나의 고난도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 평안하다.
여러분 이것이 정말 복일까요? 성경은 평안한 것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이라 말을 합니다.
시편 73:28절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신앙 생활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돋보이는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지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성경의 말씀이 가리키는 대로 걸어갈 수 있는 신앙을 나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뭐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현재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아니면 남모를 고난이나 슬픔이 있나요?
그것은 내가 잘못했다기 보다는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 아픔을 나에게 허락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자리에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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