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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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Intro)

이번 주는 국내 사정으로 묻혔지만
나라의 큰 경사가 있었습니다.
한 강 작가가 아시아 여성 최초,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 했습니다.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맞서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 강-
그 동안 우리 문학에 대해서 높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데보라 스미스 라는 20대의 젊은 번역가를 이번 노벨상 수상의 숨겨진 조연이라고 평가 합니다.
번역가들 사이에서 한국어는 악마의 언어라고 평가 받는다고 합니다. 그 특유의 중의적인 표현과 영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관념적인 언어들이 사람의 감동시키는 수준까지 번역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의 톤을 살리려고 집중했다고 합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노벨 문학상이라는 큰 업적을 위한 숨겨진 조연 이었습니다.
Transition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역사상 가장 귀한 사역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백성들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주도적인 리더 처럼 쓰시고
어떤 사람은 아주 중요한 동역자로 쓰십니다.
Transition
오늘 본문에서는 요셉의 이야기가 등장 합니다.
아시다시피, 요셉은 복음서에서 주연을 맡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는 요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육신의 놀라운 역사를 대하는 요셉의 신앙을 살펴 보실때 큰 은혜 있으시기 바랍니다.

1.의로운 사람

성경에서는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셉은 너그럽고 어진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진 성품은 아주 특수한 사건을 통해 드러납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반적인 그 시대의 남자 라면
개인적인 분노와 복수심을 드러냈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징벌을 가했을 것입니다.
당시 관습에 의하면 마리아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목숨을 잃든지 말든지 아마도 그 당시의 남성이라면 당연하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조를 지키지 않은 약혼녀를 징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19 NKRV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쉽지 않은 결단 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배신감과 분노이 감정을 느낀다고하여 그를 탓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마리아의 모습에서 어떤 모습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요셉은 마리아의 결격사유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그녀와의 결혼을 취소하기로 합니다.
이 결정은 단지 파혼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의 목숨을 구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20절에 “이 일을 생각 할 때…” 라는 표현은
“…pleanned to dismiss her…”
조용히 끊기로 계획하고 바로 실행하지 않고
“…but just when he had resolved to do this,…”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과거완료)
이제 막 마음을 먹으려 할 때였습니다.
엔쉬메오마이 라는 헬라어 단어는 반성하다 고려하다 생각하다는 뜻과 함께 수동태라는 것은 밀려오는 고민으로 골돌히 생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끊기로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고심했고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요셉이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의 유익이 아닌 일에 이렇게 까지 골돌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의 신중하고 어진 성품을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의로운 성품이었습니다.
겉으로만 선한 위선자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사유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요셉의 사유와 기도는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유와 계산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왜 요셉의 의로운 성품을 배워야 할까요?
왜냐하면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즉각적으로 판단하여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요셉의 의로움과 속깊음과 사유가 필요 하기 때문 입니다.
세상에는 주로 사유하는 사람과 주로 계산만 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유: 思惟, 산스크리트어: cintanā, 영어: thinking of. reflecting upon, considering
어떤 이는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이익인지 손해 인지를 따집니다. 이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 한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 -데카르트-
실존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생각하는 능력 즉 사유라고 했습니다.
또한 데카르트는
"양식(良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배분(配分)되어 있는 것이다.…바르게 판단하고, 참(眞)을 거짓(虛僞)과 구별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양식 또는 이성(理性)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것은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며 사람에게 평등하다."
사유의 능력은 공부를 많이하고 적게 하고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귀한 존재인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유할 수있기 때문 입니다
갈릴리 라는 외곽의 열악한 시골 출신 목수 요셉, 젊은 약관의 청년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평가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일상에 발생하는 수 많은 상황에 대해 겸손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 지식과 경험이 많다 라고 자신 할수록 오판을 하고 신중하고 깊히 있는 사유를 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에 대해 감정적이거나 즉흥적이지 않고 신중하게 또 깊히 있게
“이 일을 생각” 했습니다.

경건과 정죄

요셉은 경건한 삶을 살았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의로움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19절에서 영어버전에서 “expose her to public disgrace” 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데이그마티조 라는 단어 인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다. 공격에 노출 시키다 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일을 하지 않고 신앙적으로도 떳떳하다고 하여서 누군가를 정죄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공개하였다고 하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셉의 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그의 경건한 신앙과 함께 의로움의 특징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정죄하거나 사회적인 해결책을 찾는 대신
이 혼란스러운 사건에 대해 깊히 생각 하기로 합니다.
이 일을 (깊히 있게)생각 할 때, 주의 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20 NKRV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의 신중함과 의로움의 결과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예수님의 육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처럼
요셉도 그의 선하고 의로움을 통해 예수님의 육의 아버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과 불신앙, 의와 불의는 아주 작은 차이에서 나뉩니다.
요셉의 의로움 그 선함의 가장 깊은 근본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8:12 (NKRV)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요셉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역사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데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마리아를 사회통념에 따라 공개적으로 정죄받도록 내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레미제라블의 성직자가 교회의 은촛대와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을 세상의 법대로 경찰에게 넘겼다면 장발장은 회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는 한 순간의 실수로 또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 죄를 짓고 사회적인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 합니다.
요셉의 긍휼함과 의로운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종종 의로운 행실을 하고 선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또한 그에 앞서 선한 사유함으로 나의 이익보다는 한 생명을 살리는 방법을 골몰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한 영혼을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의 마음 입니다.
예수의 마음으로 고민하고 골돌히 사유하고 생명살리는 일에 애쓰고 힘쓸때
우리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사 길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선한 싸움을 절대 포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스트레스, 과도한 지출, 화려한 장식 및 일상 생활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을 가능성이 있는 요즘, 대강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김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로운 요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
Point 1: 요셉은 의로웠습니다.

2. 충성된 요셉

디카이오스
“의로운"이라는 단어는 다른 성경버전에서 "충성된” 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충성된 것과 의롭다는 것은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그야말로 선한 것이고
충성되다는 것은 실천적인 뉘양스 입니다.
마태복음 1:20–23 NKRV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의로운 요셉은 주의 사자의 메세지를 받았습니다.(20-23)
고민하고 골몰하던 문제의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셉이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24 NKRV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요셉의 충성됨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 등장 하는데
잠에서 깨어 일어나/분부대로
“When Joseph awoke어우엌 from sleep,…”
“When S V, 이렇게 나오는 분사구분은 연속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강조의 의미로 뒤에 있던 구문을 앞으로 도치시킨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겼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의 형식 입니다.
그리고 그의 충성됨을 잘 보여주는 또다른 표현은 “분부대로” 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 아니고 분부대로
“he did as the angel of the Lord commanded”
무슨 말입니까? 잠에서 깨자 마자 일어나서 아내될 마리아를 지체 없이 대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결단이고 어떤 손해가 있다하여도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하여 감내하겠다는 결단 입니다.
충성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를 경외하는 사람은 그의 명령을 소중히 여깁니다.
어느 남편이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증 우울증이 1년 이상 진행 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파탄이 난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온 몸의 통증 때문에 항상 짜증이 나고 신경질적 입니다. 이런 아내를 이 남편은 끌어안기로 결단하고 죽을 힘을 다해 정신과 의사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아내를 고치겠다는 의지 하나로 공부하고 간호하여서 결국 7년만에 우울증을 극복시켰다고 합니다.
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여서 가능 한 것이고
이 남편의 충성됨이 왠만한 의사들을 뛰어 넘을 정도로 우울증을 공부하게 한 것입니다.
충성은 이런 것입니다.
Illustration
요즘 세상의 성탄절에는 요셉이 사라졌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충성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연중 가장 큰 매출이 기대되는 쇼핑시즌으로 변모했고 화려한 조명과 트리 장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석이게 합니다.
하지만 요셉의 첫번째 대강절은 고뇌의 시간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감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고뇌와 희생의 각오와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하는 것이 대강절 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짊어지기 힘든 상황은 무엇입니까?
분명 나에게 손해가 되는데,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전쟁터에서 장수가 군사들에게 ‘전진 앞으로 !!”라고 외칠때 병사들이 그 명령에 따라 충성되게 적진으로 돌격할 수 있는 것은 장수의 명령이 지엄하고 개인의 영달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이런 희생과 충성 그리고 의로움이 있는 대강절을 통해
하나님은 성탄절로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나타십니다.
요셉은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처럼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고 명확한 메세지를 들으면 누구나 무엇인가 실천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겠는가? 반문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신앙적으로 체험이 있더라도 매주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도 그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고 순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의 반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루지 않고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말씀 중에 옳다는 확신을 받았다면
모든 것을 짊어질 각오를 하고 더 이상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통해 알아야 할 중요한 한가지는
하나님은 요셉과 같은 충성된 자를 통해 아주 독특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성과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범하지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따르며
하나님을 위해서 라면 어떤 손해라도 감수 하기를 기꺼이 여기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일평생 가장 가까이에서 섬길 수 있는 놀라운 은혜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Point 2: 충선된 요셉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체험 합니다.

결론 (Conclusion)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 누구보다 복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나타나시어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려깊고 계산적이거나 기회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졌고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 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때도
배신감과 분노를 자아낼 상황에서도
그는 쉬이 성내거나 자기의 판단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깊히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의롭고 영적인 사람이라 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에게 나타나 길을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충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1:22 NKRV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모를까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요셉은 깨자 마자 일어났고 곧바로 마리아 데려 오기를 주저 하지 않았고 그의 일생을 가여운 여인을 돌보고 메시아를 섬기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충성된 요셉은 일평생 메시아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요셉처럼
사려 깊고 어질고 배려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경외함과 겸손과 순종함 그리고 충성됨으로 하나님을 섬기시어
여러분의 매순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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