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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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래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의 자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정말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자녀를 갖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기쁨을 넘어, 가문과 삶의 모든 의미를 담은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자녀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외로움이나 슬픔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자녀는 가문의 명예와 유산, 생존을 보장하는 존재였습니다.
가문의 이름: 자녀가 없다면 가문의 이름이 끊어지며, 이는 사회적으로 큰 수치였습니다.
경제적 보장: 자녀는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고, 재산을 관리하며 가문을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적 의미: 많은 사람들은 자녀를 갖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표징이라고 믿었습니다. 반대로 자녀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나 불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런 사회적 압박 속에서 자녀가 없었습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이 그들의 삶을 무겁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더니, 왜 자녀가 없지?”
“사라는 분명 뭔가 큰 죄를 지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자녀가 없을 수는 없어.”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마음에는 조급함과 의심이 생겼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까? 우리에게 자녀가 생기긴 하는 걸까?”
이런 상황 속에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으니, 내 여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으세요.”
그 당시 문화에서는 여종을 통해 자녀를 얻는 것이 허용된 관습이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은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네 아내 사라를 통해 약속의 아들을 줄 것이다.” 믿기 어려운 약속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백 세의 아브라함과 아흔 살의 사라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늘 하갈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의 뱀과 같습니다.
뱀이란 예측 불가능한 사고이며, 질병, 유혹,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의 불임은 뱀이었고 사라는 그 순간 선악과를 베어 문 하와와 같았습니다.
우라 삶에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위기의 순간들을 잘 분별함으로 넘겨야합니다.
하나남은 말씀으로 그것을 잘 넘길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와 그렇지 못할 경우에 결과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1. 교회의 사역: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 vs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
1. 교회의 사역: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 vs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
바울은 하갈과 사라를 통해 '육체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를 대조합니다
(갈 4:23, 28).
- 하갈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얻은 결과였고,
이스마엘은 육체의 자녀였습니다.
-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결과였고, 이삭은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에서도 하갈과 사라의 방식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1)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 하갈의 방식
1)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 하갈의 방식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은 사람의 계획, 노력, 그리고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전도: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도 방식입니다. 전도한 사람 수나 행사에 참석한 인원을 통해 결과를 평가하고, 숫자로만 성공 여부를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복음의 깊은 내용을 나누기보다 "우리 교회에 와야 한다"는 홍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육체적 방식일 수 있습니다.
부흥: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유명 강사, 감동적인 이벤트를 통해 일시적인 감동은 줄 수 있지만, 성령의 역사가 아닌 인간적인 자극으로 끝나버리는 경우입니다. 부흥이 눈에 보이는 성과와 빠른 성장을 기준으로 측정될 때, 이는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건축: 건축의 목적이 단순히 더 크고 더 웅장한 교회를 짓는 것이라면, 이는 육체를 따른 방식일 수 있습니다. 재정을 모으기 위해 지나치게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하나님보다 인간의 명예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열매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되지 않고 갈등과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결과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2)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 사라의 방식
2)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 사라의 방식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전도: 숫자보다 개인의 영혼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 사람의 삶에 복음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변화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예를 들어, 전도를 통해 교회에 온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돌보고, 복음이 그들의 삶에서 실제적인 열매를 맺도록 돕는 것입니다.
부흥: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겸손히 구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다립니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회개와 성령 충만이 일어나는 부흥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건축: 건축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확장을 위한 것이라면,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기보다는 자발적 헌신과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는 규모나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2. 개인의 삶: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 vs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
'2. 개인의 삶: 육체를 따라 사는 방식 vs 약속을 따라 사는 방식'
하갈과 사라의 비유는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도 적용됩니다.
-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은 자신의 노력과 계획에 의존하는 삶입니다.
- '약속을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는 삶입니다.
'구체적인 예:'
1. '일과 문제 해결'
- 육체를 따라 사는 삶: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실패하면 좌절합니다.
- 약속을 따라 사는 삶: 문제를 만났을 때 기도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립니다.
2. '가정과 관계'
- 육체를 따라 사는 삶: 자녀나 배우자와 갈등이 있을 때 자신의 논리와 감정으로 문제를 풀려 합니다.
- 약속을 따라 사는 삶: 하나님의 뜻을 묻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사랑으로 관계를 회복하려고 합니다.
'교훈'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은 즉각적인 결과를 추구하지만, 내면의 평안과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반면, 약속을 따라 사는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참된 평안과 기쁨을 줍니다(갈 5:22-23).
결론: 자유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의미
결론: 자유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의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삶 속에서 많은 헌신적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신의 고향을 떠났고(창 12:1-4),하나님이 요구하셨을 때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까지 했습니다(창 22:2-3).
그러나 이러한 헌신적인 행동들조차도 그가 100세에 약속의 자녀를 얻는 기적을 이루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삭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으로만 태어난 자녀였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약속으로
육체가 아니라 약속으로
아브라함이 그렇게 고대하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창세기 21:1 (NKRV)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아브라함이 고향과 아버지와 친척들을 떠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고 믿음의 결단인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삭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땅을 양보하고 재산을 양보하여 이삭을 갖게 된것도 아닙니다. 그를 구하려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해서도 아니고 그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물들을 모두 포기해도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으며 예배드려서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많이 드려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생겼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된 것입니다.
이것을 주목하시고 기억해주세요. 자유의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노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살아가고,
그의 자녀가 된 감사와 기쁨으로 인해 도덕적이고 성실하고 질서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유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