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베푸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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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을 베푸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 본문: 스바냐 3:14-20 찬송: 126장

<말씀의 문을 열며>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게는 특별한 성인식이 있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는 마지막 의식으로, 아버지는 아이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으로 데려갑니다. 아이의 눈을 가린 채 밤을 지새우게 합니다. 한밤중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매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공포와 두려움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눈가리개를 벗었을 때, 아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밤새도록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의 긴 밤을 경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밤은 “여호와의 큰 날”(1:14)이며 “분노의 날”(1:18)이었습니다.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은 사라지게 되었고, 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14절에서 시온의 딸들에게 “노래하라” 한 것은, 그들이 그러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16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은 그들이 모든 희망을 잃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많은 이들이 깊은 밤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 하십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함께 그 소망을 발견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5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스바냐 3:15 NKRV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 때의 개혁 이전이었기에 종교적 혼합주의가 만연했고, 지도자들은 백성을 착취했으며, 선지자들은 거짓을 말했습니다. 방백들은 마치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백성들을 삼켰고, 재판관들은 이리처럼 저녁까지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했으며,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바냐 선지자는 "여호와의 큰 날"(1:14)을 선포했습니다. 그 날은 "분노의 날"(1:18)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방 나라들도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은 폐허가 되고, 모압과 암몬은 소돔과 고모라같이 될 것이며, 구스도 칼에 망할 것이라 했습니다. 특별히 앗수르는 완전히 멸망하여 들짐승의 거처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실제로 이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기원전 612년에 멸망했고,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과 메데의 연합군에 패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후에 반드시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이는 죄의 형벌도 제거하시고, 대적하는 원수도 물리치시며,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눅 3:16).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사탄을 이기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왕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이 약속은 변함없이 유효합니다. 왕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걸을 때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왕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은혜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본문 17a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스바냐 3:17 NKRV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기서 '전능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깁보르'(גִּבּוֹר)입니다. 이는 '강한 용사'라는 뜻으로, 어떤 적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를 뜻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전쟁의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전능한 용사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전쟁터와 같습니다. 질병가난, 관계의 어려움사회적 갈등이 우리를 위협합니다. 죄의 유혹과 양심의 가책,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전능하신 용사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바로의 군대와 싸우셨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출 15:3-4).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은 만군의 총사령관으로 나타나셨습니다(수 5:14).
본문에서 '구원'은 히브리어로 '야샤'(ישע)입니다. 이는 '해방시키다', '자유롭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보통 대리인을 통한 구원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신 것처럼,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십니다.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스바냐 시대의 백성들은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서 살았습니다. 앗수르는 강력한 제국이었고, 바벨론은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들이 있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본문 17b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스바냐 3:17 NKRV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아이가 잘나서도 아니요, 예뻐서도 아닙니다. 그저 내 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는 밤을 새워 간호하고, 위험할 때는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부모의 사랑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이사야 49:15 을 보면 정말 놀라운 비유가 나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갓 태어난 아기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젖먹이 아기를 둔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파도, 밤잠을 설쳐도 아기를 돌봅니다. 배가 고파 우는 아기를 보면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어머니도 극한 상황에서는 자식을 잊을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기근 속에서 자식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스바냐 시대의 이스라엘은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 같았고, 재판관들은 저녁 이리 같았으며, 선지자들은 위험한 자요 간사한 자였습니다(습 3:3-4). 성전에서는 바알을 섬기고, 옥상에서는 별들을 숭배하며, 길거리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압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자녀로 사랑하셨습니다. 징계하실 때도 회복의 약속을 주셨고,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보호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배고프심과 목마르심을 아셨고, 고난과 수치를 당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하나님은 이토록 크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마치 자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부모의 마음보다 더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진 깊이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세 가지 특별한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선택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둘째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도 이 사랑을 막을 수 없고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 위로해주시고, 위험할 때 지켜주시며, 넘어질 때 일으켜 주십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바로 달려가 안아주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십니다.
한 번도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할 때도, 연약하여 쓰러질 때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때로는 무서운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순간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붙드시는 사랑의 손길을 놓지 않으십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화재가 난 건물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다리처럼 만들어 아이를 탈출시켰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그 자녀는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은혜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3가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께서 우리를 지키시며,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왕이 되어 다스리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고난 중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확신 가운데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이것은 상황과 감정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이 절기를 지나며 우리는 다시 한번 확신합니다.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시요, 구원자이시며,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그 은혜 안에서 승리하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대림절 셋째 주일을 지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배드렸사오니, 이 시간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왕이신 하나님, 우리의 삶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인생의 밤을 지나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만이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모든 형벌을 제거하시고, 원수를 물리치시며,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통치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게 하옵소서.
구원의 하나님,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수렁과 같은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능하신 용사이시니,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오니, 주님의 강한 팔로 건져주시고 지켜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주님은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깊이 깨닫고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우리의 힘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하옵시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소망 가운데 힘차게 달려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왕이시요, 구원자이시며, 사랑의 아버지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십일조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실하게 드린 성도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부어주시옵소서. 일터와 가정에 풍성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믿음의 열매가 넘치게 하옵소서.
감사헌금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감사가 더 큰 감사의 조건이 되게 하시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선교헌금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헌금이 복음 전파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시고, 선교의 열정이 더욱 불타오르게 하옵소서.
주정, 구역, 성미, 봉사헌금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과 정성을 받으시고, 교회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꽃꽂이 헌금으로 주님의 전을 아름답게 가꾸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섬김을 통해 예배의 자리가 더욱 거룩하고 아름답게 하옵소서.
생일감사헌금으로 생명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주님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모든 예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의 부흥을 위해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드린 자나 드리지 못한 자나 모두 주님의 은혜 안에서 넘치는 복을 누리게 하옵시고,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예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길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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