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오심을 깨어 준비하는 믿음
Notes
Transcript
대강절
대강절
12월은 대림절이라고도 하고 강림절이라고 합니다. 이 대강절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인 동시에, 둘째로는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러 오셨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러 오십니다.
그런데 대강절에 사실상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대강절의 기다림은 사실상 아기 예수의 탄생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이미 2천 년 전에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재림, 즉 두 번째로 오시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강절을 기다림은 아기 예수의 탄생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대강절은 주님의 백성이 되는 교회 공동체가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는 예배의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깨어있기를 다짐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이 대강절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종말에 관하여 잘못된 두 가지 태도
1) 예수님의 재림 날짜가 언제인지 안다고 주장하는 태도
미래에 대해, 종말에 대해, 잘못된 견해들이 너무 많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종말론 이단들과 같이 주님의 재림 날짜를 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종말의 문제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처음부터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웅장하게 잘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 그러자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따로 주님께 질문합니다(3).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미래에 관한 말씀을 해주시면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6절)
그러므로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그 날짜가 언제인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100% 잘못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혹시 몇 년, 몇 월, 며칠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는 주장을 어딘가에서 들으실 경우, ‘아, 저거 가짜네.’라고 생각하시면 틀림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두려워하며 벌벌 떨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미래를 붙들고 계신 주님을 붙들면 되는 것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붙들고 계신 분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아시고 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 과거 현재 미래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을 붙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
두 번째로, 아예 종말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이단들 때문에, 종말이나 재림이란 말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종말이나 재림에 대해 이야기하면 ‘저거 이단 아니야?’ 하면서 멀리하고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전략이 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이 종말에 대하 관심을 가지지 않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마치 이 세상의 종말이 없는 것처럼 그냥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활동을 하고 운동하고 여행하면서 ‘이제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금방 오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분명히 이 세상은 끝이 있습니다. 영원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이 다니고 어떤 활동을 재미있게 하더라도,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든지 아니면 주님이 오시든지, 그것은 확실합니다. 끝이 있습니다. 세상에 시작이 있었고 또한 끝이 있을 것을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렇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37-39절)
여기서 예수님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 나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가족 8명도 안 먹었고 안 마신 게 아니라 먹고 마셨고 또 결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0-41절)
여기를 봐도, 두 사람이 똑같이 밭에서 일하는데 한 명만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또 두 여자가 똑같이 맷돌을 가는데 한 명만 데려감을 받고 다른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밭에서 일하거나 맷돌을 가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뭔가 다른 원인이 있어서, 똑같은 일을 해도 데려가시는 사람이 있고 그냥 두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뭡니까? 다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이단들의 특징 중 하나가 세상에서 하는 것을 다 관두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가지고 와서 바치고 함께 공동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이단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진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건전한 공동체들도 있지만, 이단들은 대부분 일을 포기하고 가진 것을 다 팔고서 자기들에게 갖다 바치고 그다음에 자기들끼리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하던 것을 다 관두고, 세상에서의 삶을 다 관두고, 가진 것을 다 팔아 자기들에게 갖다 바친 다음에 같이 사는 그런 게 아닙니다. 보십시오. 데려감을 받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열심히 일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가는 것이지, 다 팔고 모여서 우리끼리만 지내는 게 아닙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은 다 일상생활입니다. 우리가 그냥 평소에 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하는 일에만 푹 빠져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는데도 알지 못했다는 것,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즉, 그들의 문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고 재밌게 살 수 있는지, 어디가 좋고 어느 맛집이 맛있고 하는 것에는 다 정통한데, 영적으로는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는 전혀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의 문제입니다.
지금 열심히 매일매일 살아가고 일상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푹 빠져서 지금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세계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다가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참된 진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이 그냥 세상적인 삶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름은 그쪽에서 나를 향해서 ‘유(you) 튜브’라고 하는 것이지, 내 입장에서는 ‘아이(I) 튜브’입니다. 이제는 모든 게 ‘나’ 중심입니다. 내가 보다가 재미 없으면 다른 것을 보고, 또 재미없으면 또 바꿉니다. 이제는 티브이 방송이 잘되지 않는 시대가 아닙니까? 방송 프로그램들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골라 보는 시대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모든 것이 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부 자기중심입니다. 모든 관심은 자기입니다. ‘내가 이게 맛있나? 내가 이게 재미있나?’ 세상의 종말 때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이,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전혀 관심이 없이, 매일 그저 자기 나름대로 바쁘게 살다가 결국 깨닫지 못할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을 한 번 쭉 보십시오. 솔직히 우리 중에 무슨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나가서 막 범죄를 저질러 범죄자가 되고, 나쁜 짓을 하고, 다른 사람들 해코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그냥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그게 문제라고 합니다. 자기 일만 하면서 사는 것,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 오직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사는 것,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살면 지금 종말이 왔는지 안 왔는지,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는지 안 임했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그대로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그게 나쁘니까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정말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사람들,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고, 우리 믿는 사람들도 사실 그렇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주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지, 한 번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내가 지금 하는 일, 내가 하는 취미 활동,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 비해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냥 그러고 살다가 갑자기 끝이 오면 완전히 낭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전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2-44절)
여기 보십시오. 계속 반복되는 말이 뭡니까? “깨어 있으라”(42). “깨어 있어”(43). “준비하고 있으라”(44). 주님의 제자인 우리가 할 일은, 깨어서 준비하는 것이라는 점이 오늘 말씀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습니다.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해도 좋습니다. 맷돌을 열심히 갈아도 괜찮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가고, 내가 재미있는 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또 좋은 데로 여행 가는 것 다 좋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금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구름 타고 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표정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오, 주님, 어서 오십시오.’가 아니라, 아마 어딘가에 숨을 겁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것인지 그 시간을 모릅니다. 모른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쪽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십니다(32).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나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그 당시 사람들은 다 알았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겨울이지만, 봄이 되면 풀이 나오고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여름이 되면 더욱 싱그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계절이 변했음을 압니다. 그것처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징조들을 보면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몇 시인지는 몰라도, 가깝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아니 오래전부터 많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자연재해가 굉장히 심각해졌습니다. 또 지금 이단 종파들도 많고,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구원자라고 하는 이단들이 굉장히 많은데, 특히 한국에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아, 그날이 가까이 왔구나’ 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33).
노아 때 사람들의 문제는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고 재미있게 살며 할 것을 다 했는데 깨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재미있는 일만 하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살다가, 영적으로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노아는 어떻습니까? 노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다 먹고 마시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그를 의인이라고 하고, ‘그 세대에 완전한 자’라고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합니다(창 6:9). 이게 중요합니다. 왜 의인이고 왜 완전한 자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알 듯이, 노아도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홍수가 다 끝난 다음에 제일 처음으로 뭘 했습니까? 왜 하필 포도나무를 심어 가지고, 그것을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 취했다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는 사람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봐주셨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세상의 재미와 일상생활에 푹 빠져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있었지만, 늘 깨어 있어서 언제 하나님이 홍수를 내리실지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로부터 그는 구원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다 멸망 당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가족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깨어 준비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심판이 언제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세상의 종말이 올까 봐, 예수님이 갑자기 오실까 봐 두려우십니까? 두려운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준비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해 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도 왜 이렇게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하시는데, 왜 이렇게 준비가 없이 살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 삶 속에서 진행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특히 시대가 발전하면서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거기에만 정신을 빼앗김으로 인해, 영적으로 깨어 준비하는데 소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복잡하게 만드는 많은 원인이 있는데, 그중 크게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혼란스러워서 깨어 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니까 우리가 제대로 초점을 못 맞춥니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빠른 변화 속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거나, 그 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우리는 오히려 마지막 때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과 관심을 빼앗김으로써 깨어 준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다 본질적인 게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본질적인 것들에 우리 정신을 빼앗김으로써 우리가 깨어 준비하는 것에 방해받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 변화의 시대, 선택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존 에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21세기의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5절)
지금 시대가 빨리 변해서 올해는 또 바뀌었습니다. 지금 좋은 것들이 너무 계속 나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무리 좋은 것, 최신 것을 사더라도 1년만 지나면 구식이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모든 게 다 바뀝니다. 다 있었다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주님의 말씀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며 말씀을 듣고, 또 혼자 개인적으로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말씀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야말로, 깨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지금 과학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몇 년만 지나면 또 새로운 게 나오고 이전 것은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이렇게 세계를 다스리는 과학 법칙들이 있는 것처럼, 영적인 세계를 다스리는 법칙도 있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법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법칙들을 무시하고 산다면, 우리가 그것들을 깨는 게 아니고 그것들이 우리를 깹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문명과 나라들이 멸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들을 지키지 않고 위반했기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법칙들을 잘 지키며 살라고 우리에게 바로 이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고 속삭입니다. 가장 큰 사탄의 공격이 뭡니까?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냐?”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렇지, 그렇게 안 살아도 되지.’라는 식으로 나가게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대강절은 소중한 여행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때와 시간은 아무도 모르는 여행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버리든지 다시 얻게 된다는 보장이 없이 버리며 나아가는 길입니다. 여행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떠남이 대강절 기간입니다. 바로 이것이 대강절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기다리며 깨어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되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위협하시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밤의 도적과 같이 그렇게 갑자기 오시기는 하지만, 축복으로 또 사랑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그것을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나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걱정거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민거리가 있으십니까?
자녀가 있으신 분은 ‘내 아이가 어떻게 해야 좋은 학교에 가겠나? 혹시 못 가면 어떡하나?’ 또 청년들은 ‘결혼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미래 진로는 어떡하나?’ 학생은 ‘지금 성적이 안 좋아서 어떡하나?’ 또 ‘직장을 어디로 가나? ‘사업이 안 되니 어떡하나?’ ‘당장 낼 돈도 없는데 어떡하나?’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걱정되는데, 내가 이러다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여러 가지 염려가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성령 충만했던 예수님께도 사탄이 찾아와서 시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대로 산다고 시험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시험이 오고 고난이 와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이 있는 곳을 자꾸 사모하고 찾아야 합니다.
샤워하는 목적은 추위를 녹이기 위한 게 아니라, 몸에 있는 더러운 때를 닦아내기 위함이고, 추위를 이기려면 운동을 해서 자기가 스스로 몸에서 열이 나게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이 세상은 추위와 괴로움으로 가득 찬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러한 이 세상의 추위를 이기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으로 훈련하여 안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이렇게 와서 남이 하는 설교를 듣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인데, 금방 식어 버립니다. 세상의 어려움이 밀려올 때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마치 운동으로 열이 펄펄 나는 사람 같아서, 세상의 추위가 와도 우리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사랑의 음성으로 매일 대화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중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의 목표가 1년이라면 밀을 심으십시오. 당신의 목표가 10년이라면 나무를 심으십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의 목표가 평생이라면 사람을 심으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더하여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너의 목표가 영원이라면 나의 말을 심어라.” 이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