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다스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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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다스리는 삶

골로새서 3:15 NKSV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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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삶의 평화를 한순간에 깨어지게 하는 일들은 참 많습니다.
모임을 하러 오는 젊은 엄마 아빠들을 보고 있으면 서로 눈치작전을 펼칩니다.
지금 이 모임을 하고 있는데 누가 아이와 놀아주면서 돌볼것인가?
바베큐를 열심히 하고 대화를 하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저기 멀리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라고 했을때 더욱 눈치전쟁이 벌어진다.
누가 갈 것인가? 또 아이들끼리 놀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 울면 난리가 난다. 어쩌다가 그랬어, 누가 그랬어부터 시작한다.
작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우리 엄마 아빠들이 밥을 먹은건지 안먹은건지…그런마음이 들때가 있다.
일상속에서 느닷없이 평화가 깨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엄마 아빠와의 단독적인 관계에 있다가 동생이 생기거나 다른 사람들이 사이에 들어오면 이 아이의 평화가 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일상 속에서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때로는 화가나게 하고 무슨 일이 생겨서 마음이 어지럽고 하는 순간이 평화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인가.
골로새서 3:15 NKSV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떻게보면 우리의 삶은 평화라고는 아주 드물게 있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를 평화를 누리도록 부름받은 존재라고 한다.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는 평화를 누려야 되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평화는 외적인 조건때문에 생기는 평화가 아니다. 또는 나 스스로 평화를 강제적으로 인정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아무일이 없고 어려움, 문제들이 없을 때 삶이 평화롭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살면서 아무일 없이 살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려운 일들을 통과하면서도 그 속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는 사소한 갈등이나 순간순간 변해가는 조건,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내적 평화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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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잘 안다
마지막 배가 침몰하는 장면에서 배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살기위해 배위를 뛰어다닐 때 유람선에서 연주하던 사람들이 당황을 하고 어떻게해야 하나 갈등하다가
한 연주자가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내 주를 가까이
https://youtu.be/ur9JHXirUBs?si=iA_-JYYYKmOyQoCh
그 연주가 이어지면서 그 상황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외부에 닥친 고난, 재앙과 같은 상황에서 당황스럽고 두렵지만
두려움 염려가 이 순간을 지배하도록 마음을 맡기지 않는다. 마지막 어찌할 수 없는 이 순간을 하나님의 평화가 마지막 순간을 지배하시도록 맡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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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골로새서의 말씀은 한동안 우리의 마음과 외적 생활을 정말 혼란스럽게하고 걱정과 염려로 살던 우리에게 다시 부탁하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4:27 (NKSV)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6:33 (NKSV)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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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 내 안에서 평안 누리게 하겠다.
대림절 세번째 주를 보내면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다.
평화가 우리 삶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영혼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시편 23:1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이 고백은 그냥 유유자적하는 목원적인 삶에서 뱉은 고백이 아니다.
목동으로 살던 다윗이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길을 떠났지만 광야의 고된 시간들, 관계속에서의 어려운 시간들을 쉴새 없이 경험한다.
그런 오랜 시간속에서 여전히 자신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 여전히 자신의 목자가 되어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순간 돌아보다가 “아~~~” 주님이 나의 목자시지, 주님이 내게 계시는데, 내가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하고 긴 호흡을 내 뱉게 되는 것이다.
잠시 멈추고 긴 호흡을 해야 한다. 짧은 호흡은 분주하고 뭔가를 위해서 급하게 달려갈 때 마음이 요동칠때 하는 호흡이다. 길게 호흡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내 영혼 깊숙하게 스며들도록 잠잠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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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한 몸일때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완벽한 공동체, 완벽한 모임은 없다. 완벽한 교회도 없다. 교회도 얼마나 불안전한 곳인지 여차하면 다툼이 생길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서로의 부족함 때문에 마음이 깨어질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습관, 사람의 문제 단점만 보고 말하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보다 더 무엇인가 나은 상황이 되길 바라는 것, 내가 먼저 살고 싶어하는 것들이
공동체안에서 평화를 깨뜨리게 할 수 있다.
교회도 함께 계속 소통하고 나누고, 마음을 쓰고, 이해하려고 하고, 살펴보려고 하고, 함께 극복하고 고쳐나가려고 하고… 애쓰면 애 쓸수록 어려워도 괜찮아진다.
그런데 문제거리들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면 싸움이 벌어진다.
한 교회의 성도가 전화가 와서 큰일났어요. 교회에서 싸움이 벌어졌어요. 인근에 있는 교회가 돈 문제로, 건축을하면서 100억 가까운 돈을 빚을 내고 하면서
다툼이 일어나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생겼다.
그곳에서 드려지는 예배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겠는가? 앉아 있는 시간동안 평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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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교회를 향한 이 편지의 시작에
골로새서 1:2 (NKSV)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자매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신실한 성도들,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시작한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새운 교회이다. 참 좋은 교회이긴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외부에서 계속 이상한 영향력이 들어오는 것이다. 골로새는 지금의 터키에 있는 곳인데 헬레니즘 철학이 성행했다.
골로새서 2:8 “8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상, 이단적인 것들이 많았다.
거기에 교회에는 유대교전통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골로새서 2:16–17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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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을 이루고 있는 이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는 주변 요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럼에도 바울은 무엇을 강조하는가.
당신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지 시대정신, 시대의 흐름, 시대 사상, 시대의 정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당신들은 “신실한 형제 자매"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8절에서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하는 것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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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세상의 흐름에 참 잘 맟춰서 간다고 한다. 저는 그런 말을 하면 단박에 반발을 한다.
시대가 필요해서 우리가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고
원래그래야 되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유행을 쫓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카페 노동하느라 세상의 목회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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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의 평화가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가 시대에 요구에 우리의 몸을 맞추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나 흐름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앞서 간다는 것이다.
우리 몸이 때로는 뭐가 먹고 싶어 지거나 필요하다고 요구할 때가 있다. 그것은 몸이 필요한 영양분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라고 광고하고 저거 사야 되나 해도 몸이 스스로 요구할 때가 있다
그것이 가장 좋고 빨리 몸을 챙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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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참 평화를 주시고자 함이다. 참 평화말이다.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 땅에서는 진정한 평화를 찾기가 참 힘들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늘 우리 마음깊은 곳에 평화가 임할 것이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여전히 참혹한 전쟁속에 있다. 전쟁의 흙더미 속에서 고등학생때부터 반전 군인으로 참여했던 알 샤미라는 사람이 전투가 없는 날에는
무너진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무너진 곳곳에 그를 통해 곳곳에 희망과 평화를 기다리는 벽화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더 완전한 평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며, 이땅에서 지금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15절의 말미의 고백처럼 “감사합닏” 고백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 평화를 향해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때 불평뒤켠에 있던 평화가 다시 솓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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