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베데스다는 예수님이 계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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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베데스다는 예수님이 계신 곳
본문: 요한복음 5:1-9
찬송: 542장
제목: 진정한 베데스다는 예수님이 계신 곳
본문: 요한복음 5:1-9
찬송: 542장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의 한 특별한 장소로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그곳은 **'베데스다'**라고 불리는 연못입니다. '베데스다'란 이름의 뜻은 '자비의 집'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자비가 가득한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이름이 얼마나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북동쪽, 양문 근처에 있던 이 연못은 특별한 소문으로 가득했습니다. 때때로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그때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라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소경, 절름발이, 중풍병자들... 그들은 모두 치유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 혹시 이 베데스다와 비슷하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아픔과 문제를 안고 교회로 찾아옵니다. 누군가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누군가는 관계의 상처 때문에, 또 누군가는 질병의 고통 때문에 옵니다. 그들은 모두 치유와 회복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을 통해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38년이나 병을 앓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그 연못가에서 기다렸지만, 진정한 치유는 물이 움직이는 순간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진정한 '자비의 집'이란 무엇인지, 참된 치유는 어디에서 오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5장 1-9절의 말씀을 함께 봄으로써, 우리 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베데스다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명이 없는 베데스다>
<생명이 없는 베데스다>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베데스다 연못은 사실 가장 자비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치유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평소에는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함께 울며 함께 웃던 사람들이 물이 동하는 순간이 되면 서로의 경쟁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제까지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순식간에 내가 이겨야 할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자비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아닙니까?
38년 된 병자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7절). 이 말씀 속에는 깊은 절망과 한탄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 낫지 않는 이유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왜곡된 소망입니까? 그는 병이 낫기를 소망했지만, 어느새 그 소망은 남보다 먼저 물에 들어가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치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이웃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의 논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면, 때로는 우리도 모르게 세상의 논리에 영향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은연중에 신앙생활을 수치화하거나 비교하려 하지는 않았는지요?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이만큼 응답하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나, "저 사람보다는 내가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이런 마음들이 바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모습들일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특별한 은사나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며, 그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믿음이 부족한 사람처럼 취급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물질의 축복을 강조하며, 그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교회 안에 숨어있는 베데스다의 잔인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왜곡된 신앙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가 먼저라는 논리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 후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진정한 치유가 무엇인지 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방금 우리는 베데스다 연못이 얼마나 잔인한 경쟁의 장소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의 치유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다는 점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 중에서 예수님은 특별히 이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베데스다에서는 병자들이 치유를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해야 했지만, 예수님은 친히 찾아오셔서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첫 마디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얼핏 보면 이상한 질문처럼 보입니다. 38년이나 병을 앓은 사람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질문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지 물으신 것입니다. 그동안 이 사람의 소원은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시선을 물에서 자신에게로 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이 말씀에는 어떤 조건도 없었습니다. 누구를 이겨야 한다는 말씀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9절). 즉각적이고 완전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38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치유입니다. 물에 먼저 들어가야 했던 베데스다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해서, 무엇을 이뤄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물으시며, 말씀으로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전히 베데스다의 물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나의 노력으로, 나의 경쟁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립시다. 진정한 치유는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생명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교회>
<생명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교회>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 방식이 베데스다의 방식과 얼마나 달랐는지 보았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프로그램이나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베데스다 연못처럼 사람들의 절박한 필요를 이용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곳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성장과 번영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하면 축복받는다", "저렇게 하면 응답받는다"는 식의 말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베데스다의 "먼저 물에 들어가면 낫는다"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진정한 교회는 예수님처럼 연약한 자를 찾아가고, 은혜를 나누며, 생명을 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치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치유는 단순히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단순히 육체적 치유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전인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찾아야 할 것은 일시적인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그분을 통한 생명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치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베데스다, 즉 참된 자비의 집이 되는 길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일어난 놀라운 치유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곳은 경쟁과 절망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으로써 진정한 자비의 집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은혜는 결코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가 먼저라는 논리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이 머무는 진정한 베데스다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프로그램이나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진정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세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을 통해 참된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신 예수님의 그 **따뜻한 사랑**을 기억합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하신 주님, 우리 교회도 **진정한 자비의 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교와 경쟁의 논리**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프로그램이나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머리**가 되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가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영혼들이 찾아와
**참된 생명**을 경험하는 곳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픈 영혼들**이 찾아와 **위로**받고,
**지친 영혼들**이 찾아와 **쉼**을 얻으며,
**상처 입은 영혼들**이 찾아와 **치유**받는
진정한 **생명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높여지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섬김**과 **모든 봉사** 가운데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오늘 말씀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참된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