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0 금요기도회: 베드로전서 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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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1:13-16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4년 금요기도회도 어느덧 오늘과 다음 주 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얼마 남지 않은 2024년도 우리에게 기도라는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금요기도회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같이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으로 신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왜 신자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에게는 이 본문이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살펴본 다음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드로가 쓴 이 편지의 수신자와 왜 베드로가 편지를 쓰게 됐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의 이 편지를 받는 1차 수신자는 1장 1절에 나와있는 것처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이 지역들은 소아시아에 있는 지역들로서 소아시아에 있는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흩어진 나그네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소외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명령대로 살자 세상으로부터 박해와 소외를 받게되었는데요. 이런 교회들을 격려하고 이들이 받는 고난 때문에 이탈되지 않도록 돕기 위해 베드로가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을 베드로가 편지에 썼을까요?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먼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는데요. “그러므로”라는 말처럼 오늘 본문 앞의 본문이 오늘 본문의 원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신자들,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신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믿는 자의 산 소망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밑바탕 가운데서 베드로는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13절에서 베드로는 먼저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문법적 세밀함이 있는데요. 하나의 명령법에 다른 동사들이 걸려있습니다. 그 하나의 명령형 동사는 무엇이냐면 한글 성경에는 “바랄지어다”라는 동사입니다. 여기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한다는 동사가 걸려있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행동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입는 옷은 치마와 같은 기다란 옷이었는데요.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달리거나 중요한 일을 할 때 길어서 흘러내리는 곳을 집어넣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할 때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준비를 할 때 “허리에 띠를 띠고”라고 말합니다. 이것처럼 어떤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근신한다는 것은 졸지 않고 깨어있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살려서 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모든 교회의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혜에 소망을 두고, 행할 마음을 준비하며 영적인 졸음을 피한다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소망을 두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소망을 둘 때 우리는 허리를 동일 수 있고, 근신하여 깨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베드로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즉 복음을 먼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를 위해 먼저 일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위해 행할 마음을 준비하고 영적인 졸음을 기꺼이 피하게 됩니다. 복음의 원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먼저 하셨기 때문에 그 감사에 힘입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방종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르트를 통해서 배우고 있듯이 예정론은 결코 방종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마음대로 살라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그의 삶도 하나님께 맞추는 삶을 삽니다. 베드로도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신자의 삶이 있습니다.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베드로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주실 은혜에 소망을 두며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인데, 그 삶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전의 삶, 바로 그들을 지배했던 욕망에 더이상 지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뒤에서 나오듯이 거룩한 삶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온전히 소망을 두는 것은 바로 지금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자, 성도는 이전에 따라갔던 욕망을 본받지 않으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자의 능동적인 삶을 뜻합니다. 신자는 단순히 악을 피하고 죄를 짓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적극적인 자세도 취해야 합니다. 십계명에서 가르치듯이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금지 명령 이상으로 이웃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결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성도들, 신자들, 즉 교회는 살아가면서 매번 이전에 자신을 지배했던 욕망으로부터 유혹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의 수신자인 소아시아의 교회들의 특징은 회심하기 전에 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4장을 보시면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하던 자들이 바로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교회들의 이전 모습이었습니다. “알지 못하던 때”는 죄가 죄인 줄 알지 못하던 회심하기 이전을 떠올리기 만듭니다. 이것은 이런 악한 욕망들이 죄라는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주 심각한 죄라는 것을 마음을 다하여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실패할 수도 있고 때론 악한 욕망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거룩함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큰 차이는 죄라는 것을 깨닫고 거룩한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은혜에 기대어 마음에 찔려 회개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이 이러한 삶을 산다고 말하였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였습니다. 신자의 삶은 거룩을 향해 항상 노력하며 허리를 동이고 깨어있는 삶입니다. 1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회는 "순종하는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자는 악한 욕망에 굴복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왜 신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베드로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15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면 거룩한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하는데,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나면 바로 신자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베드로는 악한 욕망을 본받지 말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신자가 본받아야 할 거룩한 삶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한없이 선한 분이시고 죄를 모르시고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삶의 거룩함은 신자들을 자신에게 “부르신” 하나님의 거룩함과 일치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부르셨는데요. 부르심이라는 것은 그저 “얘들아 여기로 모여라”라는 뜻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2장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빛으로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은 단순한 “초청”으로서의 의미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바로 악에서 우리를 끌어내어 거룩한 곳으로 놔두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의 거룩함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을 거룩한 곳으로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세상의 악한 욕망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절대로 세상에 때묻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이것을 더 강력하게 논증하기 위해 구약을 인용합니다. 16절입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레위기에 있는 구절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거룩”을 가르치고 있는 이 레위기를 들고와서 교회가 왜 거룩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더욱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해야 했던 것처럼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해야 했습니다.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분의 거룩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잠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편지를 받는 교회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편지를 받은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보니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상 숭배와 완갖 종류의 죄에 참여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사회로부터 소외 받고 핍박을 받아 고통을 이미 당하고 있는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니 좀 너무한거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거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악한 욕망을 본받지 말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베드로는 회초리를 들어 교회를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거룩한 삶을 살아내어 사회로부터 핍박받는 교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통과 박해 속에 있는 이 편지를 받는 교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탈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다독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베드로가 무엇을 이야기하였습니까? 바로 복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교회들에게 복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면서 이러한 악한 사회와 시대 속에서 비록 고난과 환난을 겪고 있지만 1장 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땅에 오실 때 받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소망하면서 더욱더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사회로부터 소외 받고 핍박을 받을지언정 교회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위로가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음을 거룩한 삶을 통해 보여줄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한 삶을 살아내도록 인내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실 약속들에 있습니다. 신자의 모든 삶은 대신 죄를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삽자가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3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고난당하시고 낮아지셨지만,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높아지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교회도 언젠가는 높아지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낮아진 교회를 높이실 겁니다. 이것이 교회가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고난받고 소외받습니다.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또한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따르면 그러한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유해무 교수님께서 설교하신 것처럼 신자의 삶을 박해를 받는 삶이며 박해를 받는 것이 복된 삶, 즉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낮아진 모습으로 살지라도 언젠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높이실 겁니다. 교회는 이러한 소망 가운데서 든든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힘들고 지치고, 때론 낙망하여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 내 마음대로 살며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우리에게 매순간 회심하기 전에 따랐던 악한 욕망이 우리를 유혹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미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 힘들어 죽겠는데도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교회는, 신자는 반드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거룩함,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의 동기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를 위해 미리 모든 좋은 것들을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1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에 소망을 두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에 소망을 둘 때에 우리는 거룩한 삶을 거뜬히 살아내고 절대로 악한 욕망을 본받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거룩한 삶을 살아냅시다. 절대로 우리의 악한 욕망에 따른 삶을 살지 말고 거룩한 삶을 반드시 살아냅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빛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나타냅시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이며 격려입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이 말씀대로 살아내어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놀라운 복된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언젠가 높이신 그리스도를 기대함으로 거룩한 삶을 거뜬히 살아내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교회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삶의 원동력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 있지만 거룩한 삶을 살아내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복된 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악한 욕망을 따르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