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염려가 없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4 views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전서 7:32-40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2024. 10. 2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교회의 결혼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와 총각들이 결혼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어요. 결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지금 고린도교회는 육체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성관계를 금지하고, 이혼을 장려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성관계를 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이혼까지 해야 된다. 이러면서 굉장히 잘못된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다보니까, 처녀 총각들이 고민이 되는 겁니다. 결혼을 하는 게 맞나? 안 하는 게 맞나?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결혼을 하는 게 맞습니다. 결혼을 해야죠.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결혼을 해야 돼요.
바울의 동역자 중에 아주 유명한 부부가 있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난 부부예요. 이 두 부부가 바울의 사역에 엄청난 힘이 되어 줍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이 바울을 위해서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생명을 걸고 바울을 도왔어요. 부부가 그야말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주의 일에 충성한 겁니다.
이처럼 부부가 한 마음이 되면, 주의 일에 놀랍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는 거예요. 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이 되어서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2절과 33절을 보면, 장가 가지 않은 자와 장가 간 자를 각각 비교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해요. 반면에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해요. 자, 32절 3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장가 가지 않은 자는 먹여살릴 사람이 없으니까 자유롭죠. 그래서 주의 일에 전념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장가 간 자는 아내를 위해서 인생을 바쳐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 일을 염려해요. 오늘은 뭘 해서 돈을 벌어와서 아내를 갖다줄까. 어떤 이벤트를 해서 아내를 기쁘게 해줄까. 이런저런 세상적인 염려 때문에 주님 일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면, 마음이 갈라져요. 밑에 34절에 “마음이 갈라지며” 이 말은 “마음이 분산된다”는 말이에요.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과 주의 일 사이에서 마음이 분산돼요.
여자도 마찬가지. 밑에 34절은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시집 간 자를 비교해요. 34절도 읽어볼까요? 34절“마음이 갈라지며”를 빼고 “시집 가지 않은 자” 부터 읽겠습니다. 시작,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아멘.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해요. 하지만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죠. 남편을 기쁘게 하려고.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한 마음으로 주의 일에 충성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마음이 갈라져서 주의 일을 등한시해요. 결혼을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거예요. 이럴 거면 차라리 결혼하지 마라.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자기 인생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뒷전이고,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에 빠져서 마음이 갈라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거면 그냥 결혼하지 마라.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주의 일 하면서 살아라. 이것이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죠. 결혼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바울이 어떻게 금지를 시킬 수가 있겠어요. 바울은 그저 자기 의견을 말해줄 뿐이에요. 결혼 안 하면 좋겠는데, 그래도 해야겠다면 해라.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바울은 저들의 유익을 위해서 답을 주고 있어요. 자, 35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줌에 있어서, 두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너희의 유익을 위해서예요. 고린도교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기 위해섭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문제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린들에게 유익이 되면서, 동시에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도록 하는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킬만한 답을 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결혼문제는 그게 어려워요. 너희에게 유익한 쪽으로 답을 주자면, 당연히 결혼을 하라고 해야 되는데, 결혼을 하면 주를 섬기는 데 소홀해진단 말이죠.
반대로 주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은 또 유익이 안 돼요. 두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바울이 아예 저들에게 선택권을 줘 버립니다. 너희가 알아서 해라. 결혼하려거든 결혼하고, 안 하려거든 하지 마라.
그래서 밑에 36절에서는 결혼하라는 말을 하고, 37절에서는 결혼하지 말라고 그래요. 양자택일을 하라는 거죠.
36절을 먼저 같이 읽어볼까요? 36절 시작,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이게 지금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총각이 약혼녀가 있어요. 그런데 정욕이 일어나서 약혼녀와 성관계는 하고 싶어요. 그런데 결혼을 망설이는 겁니다. 결혼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을 하고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결혼을 하라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7장 2절에 바울이 말했잖아요.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결혼해라. 괜히 잘못된 일을 저지르기 전에, 결혼해서 정욕을 해소하라는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결혼을 하라는 거예요.
반면에 밑에 37절에는 정욕을 절제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을 합니다. 37절에 보니까,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아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다면, 다시 말해서 부득이하게 정욕을 해소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겁니다.
그래서 각자 알아서 잘 생각하고, 기도해서 무엇이 유익이 되겠는가, 또 무엇이 주를 섬기는데 더 좋겠는가를 놓고 각자 선택을 하라는 거예요. 38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죠.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결혼하는 것도 좋지만,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아무래도 바울은 개인의 유익보다는 주의 일을 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다 보니까, 결혼 안 하는 것이 더 좋다라고 치중해서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한다고 해서 꼭 주의 일에 소홀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결혼해서 더 주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부부가 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얼마든지 충성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려면 처녀 총각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 신중해야 되겠죠. 이 사람이 나에게 세상 염려를 가져다 줄 사람인가, 아니면 나와 같이 주의 일에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인가.
지금 이 자리에 미혼인 자녀를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시죠? 자녀를 빨리 결혼시키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시키는가가 중요한 거예요. 능력 있는 사람도 좋지만, 그보다도 한 마음이 되어서 예배 잘 드리고, 주의 일에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독신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 제가 이 말을 한다고, 또 시험들지 마시고요. 우리 딸을 시집 안 보내야 되나? 시집 보내야죠. 그 대신, 사윗감을 잘 알아보라는 겁니다. 기도하세요.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윗감을 붙여주셔서, 우리 딸이 행복하게 믿음 지키면서 잘 살도록 주님이 책임져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아들 가지신 분들도 마찬가지. 좋은 며느리 보내주시라고 기도하세요.
그래서 자녀가 염려 없이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자녀로 인하여서 염려하는 일이 없도록, 좋은 배필 만나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세워 가는 은혜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