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감사예배

성탄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7 views
Notes
Transcript
오늘은 성탄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신구약의 모든 절기는 주일이라는 거룩한 날로 모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그 많은 절기들이 신약에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순절 성령님이 오신 이후로 신약 교회는 그 모든 절기들이 주님의 날에 성취되었음을 알았기에 주일을 잘 지켰습니다. 주일의 의미가 그 어떤 절기보다 못한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모든 날의 완성이요 목표입니다. 우리가 장차 누릴 영원한 안식을 우리는 주일에 누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일로 지키는 것이 성탄절을 지키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주일에 성탄의 의미를 설교함으로써모든 성도들에게 기쁨이 임하길 바랍니다.
모든 복음서 서두에는 세례 요한이 언급되고 있스니다. 마태는 3장에서 요한의 사역을 소개하고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요한으로 설명합니다. 요한도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언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도 세례 요한으로부터 복음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요한의 탄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누가복음 16:16 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고 말합니다. 즉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세레 요한으로부터 바통을 이어 받아 이제는 신약이라는 구약과는 다른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열어가셨습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을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장은 여러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핵심은 기쁨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글을 쓰면서 근원부터 살피고 있습니다. 즉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복음의 시작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기쁨이 임한 것을 봅니다. 기쁨의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기쁨의 근원에 대해 살펴보고 기쁨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기쁨의 이유입니다. 마리아가 사가랴의 집에 방문합니다. 누가 기뻐합니까? 엘리사벳의 뱃 속의 아이 즉 요한이 기뻐합니다. 요한은 왜 예수님의 방문을 기뻐할까요? 41절에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다고 했습니다. 뛰놀았다는 단어는 기쁨으로 뛰었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44절에 또 나옵니다. 42절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단 한번 사용된 단어인데 기쁨으로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문제는 천사가 나타나 기쁨의 소식을 전했을 때 기뻐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기점으로 실제 기쁨이 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탄생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는 커녕 놀랐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세례 요한이 어머니 배 속에서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왜 기뻐했을까요? 단순히 마리아의 방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방문이기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17절 세례 요한의 사명은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지냈습니다. 사가랴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하고 질문하는데 이 좋은 소식을 가브리엘이 전해주고 그 증거로 그는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사가랴에게 전한 천사의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끼? 세례 요한의 탄생이 아닙니다. 눅1장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잘 상기해보세요.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편지를 쓰면서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글을 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누가가 펜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세례 요한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이루신 일에 한 과정입니다. 그러니 누가복음이 말하는 모든 기쁨의 내용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사가랴에게 천사가 전하여 준 기쁜 소식은 자녀를 낳는 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13절에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면 사가랴는 크게 기뻐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개되는 내용이 다릅니다. 천사가 니 아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거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세운 백성을 준비할거야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전혀 아들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19절에 그래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왜 엘리사벳의 집에 갔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예수님이 나실 것이라는 의심 때문에 확인하러 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의심해서 간 것이 아니라 확인하러 갔습니다. 무엇을 확인하러 갔을까요? 그리스도의 오심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처녀 탄생을 마리아가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지었다고 합니다. 나의 자녀가 구원자가 되기를 바랬던 것이고 그 만큼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신실한 자들이 그렇게 예수를 기다렸습니다. 마리아가 문안했다고 했는데 이 단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 문안은 평안을 바라는 것, 즉 언약으로 인한 평안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너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샬롬이라고 하셨습니다. 샬롬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언약적 기대와 확신을 표현하는 인사입니다. 마리아는 언약을 확인하러 엘리사벳의 집에 갔고 언약의 인사를 건낼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기뻐하고 뛰놀았습니다. 여기 뛰놀았다는 표현은 에서와 야곱이 어머니 뱃속에서 싸웠다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격렬한 기쁨입니다. 격렬한 기쁨의 이유는 그리스도의 오심 때문입니다. 이미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기뻐하며 뛰어 놀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기쁨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신다면 여러분은 기뻐십니까? 진정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며 살고 있습니까?
두 번째로 기쁨의 근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과연 기쁨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하늘로부터 임한 기쁨입니다. 이 말을 받아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기쁨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기쁨의 근원은 하늘인데 과연 본문에서는 어떻게 등장하고 있습니까?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복음입니다.
19절입니다. 이 기쁨은 사가랴가 받은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 바로 유앙겔리온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기쁨이 사가랴의 집안에 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기쁨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세례 요한의 탄생이 기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가랴 때문입니다. 복음이 기쁨인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가랴에 대한 소개입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사가랴입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엘리사벳이라 6절에 보시면 이 두 사람의 행실이 나타나는데 하나님 앞에 의인이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서술합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는 사가랴에 대한 평가 시점입니다. 이 때는 어떤 시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말라기 이후 400년간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거둬들였습니다. 잠언 29:18 에“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희미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을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메시아를 찾을 힘 조차 없는 삶입니다. 이래나 저래나 죄로 인해 비참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도 여전히 순서를 따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들어가서 사가랴는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이 없는데 누가 하나님을 찾을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우리가 로마의 포로로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고 부르짖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이 400년이 지났는데 하나님을 찾아야 할까요? 네 그래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삶이 변하지 않고 시대가 여전히 암울해도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한 사람이 바로 사가랴입니다. 사가랴는 약속이 없는 것 같은 시대에도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며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한 사람입니다. 그 결과 가브리엘이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진정으로 기뻐하며 예언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그의 예언때문입니다.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는 장면이 67-80에 등장합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보세요. 요한이 태어나서 그것도 엄청 늦은 나이에 자식을 얻었다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그의 기쁨은 자식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구원의 뿔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쁨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기뻐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시작하시는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 역사가 시작됨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쁨이 나오는 이유는 동일합니다. 같은 1장 안에서 다른 기쁨의 이유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남이 기쁨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도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구원자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마리아도 세례 요한도 엘리사벳도 사가랴도 기뻐합니다. 다윗의 후손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온 우주의 왕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동일한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복음이 지속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고 있습니다. 큰사랑교회에서 전해지는 복음이 가브리엘이 전한 복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의 탄생과 같은 기쁨이 임하고 있습니까?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기뻐십니까? 과연 성탄절이라 할 만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복음 외에 다른 무엇으로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 어떤 것이 과연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기쁨에 비길 수 있을까요? 맛있는 음식도 휴대폰도, 그 어떤 반간운 사람과의 만남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을 듣는 것보다 기뻐지 않습니다. 이 기쁨이 오늘 여러분에게 임했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이룰 수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가랴도 마리아도 세례 요한도 기뻐한 이유는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왜 기쁜 것일까요? 400년간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멈추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찬송을 보십시오. 나에게 아기를 주셨다고 기뻐하지 54-5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셔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시기에 기뻐합니다. 사가랴는 어떻습니까? 6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성을 속량하시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다윗의 집을 일으키셔서 기뻐합니다. 즉 마리아와 사가랴는 자신들이 임신해서 자녀를 낳아서 기뻐하는 것이 그 아이들 세례 요한과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이 시작되기 때문이 기뻐합니다. 변함없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받고 있는 자기 백성을 하나님이 돌아보셔서 이제 구원하시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하나니이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되새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 일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하신 약속의 영원한 성취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기쁨을 이루는 방법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고 듣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다. 그 뿐만이 나도 하나님의 약속의 수여자가 되어서 나같은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원수에서 구속함을 받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원수에게 죄악에 지는 것 같고 죄에 질질 끌려 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지 못할 영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요구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성탄 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기다리지 않고 성취된 성탄을 누립니다. 그리고 다시 재림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아브라함으로터 시작된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이 이루시는지 확인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자고 하나님께 요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신실하심에 기대어 우리 삶을 구원해 달라고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우리 인생을 지켜달라고 요구하십시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 기쁨이 오늘 우리에게 충만하길 바랍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