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신비
Notes
Transcript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4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뭐 하는 날인가요?
애인과 함께 있는날, 그냥 쉬는 날,
학교 안 가는 날 정도로 알고 있다면
당장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죠. 예수님의 생일이죠.
Christ(예수 그리스도) + mas(기념일, 축하하는 날)
즉, 크리스마스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사실,
역사적으로 이야기 해보자면,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언제
이 땅에 태어나셨는지는 모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에
기록하는 문화가 굉장히
잘 발달되었으면,
날짜와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전 세계적으로 통일이 되어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언제, 몇월, 몇시에 태어나셨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언제 몇월 몇일 몇시에
이 땅에 태어나셨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예수님의 생일을
어떻게든 알아내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기록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수많은 증인들을
모셔다 놓아도
전부 다 말이 다르고
학자들마다 견해도 다 다른거에요.
그래서 결론은,
특정한 날을 정해서
앞으로 쭉 지키자!
그리고 어떤 날을 지정할까?
고민하다가
태양신을 숭배하는
문화를 깔끔하게 정리해버리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태양신을 숭배하는 축하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덮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자연만물을 하나님보다
높게 여기는 그 천박한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덮어버리고
흡수시켜버린 것이죠.
그래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땅땅땅 지정하게 됩니다.
그게 1,700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에이 예수님은 생일도 없네~
에이 크리스마스 안 지켜도 되네~
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전도사님이 청소년때
태연 빠라고 했었죠?
소녀시대 태연은
청소년기 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태연의 생일을 챙기느라
엄마 생일을 까먹은 적이 있어요.
엄마 생일은 3월 8일
태연 생일은 3월 9일이거든요.
그래서 충격을 받았던 엄마가
엄청 서운해하셨죠.
그래서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태어난 날짜가 언제냐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건
엄마가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다는 사실이고,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거야.
크으 기가 막히죠?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고모부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그 엄마가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너가 있고,
지금 너와 엄마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생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를
지키는거란다. 그래서 생일이 있는거다.
기억하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잔머리 굴리는 청소년 진규 위에
인생의 경험과 신앙의 노련함이 있는
고모부가 계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일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날짜를 정해서
생일을 기념하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모든 인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아니 대체 섬기는게
하나님한테 뭐가 그리 좋다고,
굳이굳이 모든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면
섬김 받으셔야 편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고 섬기되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한 알의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되게 손해보는 말이죠?
내가 누군가를 섬기며 살아간다?
내가 굳이 손해를 보면서라도
사랑하며 살아간다?
바보같은 짓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서로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서로를 섬기는 것이
굉장히 놀라운 인생의 원리입니다.
죽어야 살게되고, 져야만 승리하게 되는
놀랍고 영원한 그 인생의 신비로움을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면서
우리에게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은
동일해요.
사랑은 죽기까지 사랑하는거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기로
우리가 다짐을 하고, 결단을 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놀라운 인생의 원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차가워진 겨울만큼이나
꽁꽁 얼어버린
우리들의 마음이
눈녹듯 녹아내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 이 사회 이 나라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의 가슴판에 새기고
그 사랑을 본받아
죽을 힘을 다해 서로를 섬기고,
죽을 힘을 다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내 삶이 예수님으로 인해
자유함을 얻는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역설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설의 신비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자신의 몸을 희생했습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섬기신
그 사랑이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나만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역설의 신비를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해야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랑이 모든 인류를
자유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사님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 한 가지에요.
너무 좋으니까.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나 또한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결단하고 살아보니
너무 좋으니까.
그 사랑이 전도사님을 자유하게 했으니까.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 역설의 신비에
함께 동참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