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에서 시작된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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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와 그리스 세계에서는 12월 25일은 아주 특별한 날로 여겨왔습니다. 이 날은 저녁보다 낮이 길어지는 시기라고 해서 당시에는 많은 축제가 펼쳐졌었습니다. 그러다 274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는 12월 25일을 공식적으로 "솔 인빅투스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솔 인빅투스”는 태양의 재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로 발전하면서 로마 제국 전역에서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우렐리아누스의 정치적인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왕권의 약화를 강화하기 위함, 두번째는 로마 시만의 통합, 세번째는 자신이 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누스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태양을 숭배하는 날은 계속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4세기인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합니다. 기독교를 로마의 공인된 종교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336년 로마 교회는 12월 25일 예수님 탄생일로 공인하게 됩니다. 로마교회가 이날을 예수님 탄생일로 공인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번째는 "솔 인빅투스" 축제와 같은 이교도 축제를 대체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낮이 길어지는 12월 25일이 상징적으로 예수님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여기에 공의로운 해가 떠 오른다는 표현과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 자신이 빛이라 말씀하셨기에 후대 기독교인들이12월 25을 예수님 탄생으로 공인하고 지키는 것에 큰 반발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을 해보면 12월 25일이 태양신에게 제사드렸던 날이니 성탄절로 규정하고 지키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그래서 지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제가 딱 이런 경우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정말 약하게 태어났답니다. 그래서 집안 어른들이 곧 죽을 것 같다고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1년을 지났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아이가 죽기는 커녕 무럭무럭 자랐던 거지요. 그래서 살것 같아서 1년 뒤에 호적을 올리려고하는데 제가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한 날이 기억이 안나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겨울인 것은 맞으니 12월 한날에 저를 호적에 올리신 거지요.
제 생각에는 예수님의 탄생일이 어느 날인지 모르기 때문에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 땅에 예수님의 오심을 공식으로 인정하는 한날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로 알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성자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기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시지만 인간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셔서 인간의 돌봄이 필요하셨고 인간의 성장 과정을 지나셨고 인간의 마음을 공유하셨다는 것이 이 땅의 우상들과 완전히 다른 분임을 역사가 확증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예수님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온 로마 제국에 호적을 명령한 때였고 이 때는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과 마리아도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호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4-6절은 예수님께서 초라하기 그지 없는 곳에서 태어날 수 밖에 없던 상황을 그려줍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구유안에 있었다는 것으로 오늘 본문이 끝을 맺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쁨의 성탄절을 보내는 것과는 너무도 차원이 다른 초라하기 그지 없는 예수님 탄생의 상황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첫 울음을 터뜨리셨을 때 하늘에서는 빵빠레가 울려 퍼지고, 천사들은 기쁨의 찬양을 부르고, 하늘에서는 푹죽이 터지듯 별들이 춤을 추고, 성부 하나님의 굴직한 웃음소리가 하늘을 뒤덮었어야 맞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는 기쁨의 소리보다는 호적하기 위해 온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들만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들로 인해 아기 예수님의 울음 소리는 또 묻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메시야의 탄생이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이 초라한 예수님의 탄생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첫번째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때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역사적 배경을 통해 예수님의 나심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약 700년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의 한 인물 가이사 아구스도를 사용하셨고 그의 호적 명령을 통해 베들레헴에 나실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왜 지금이 아니고 그 때여야 했을까?
갈라디아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하나님의 때에 따라 만들어지고 이루어 지고 지금까지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완벽한 하나님의 타이닝이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하필 나에게인가?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도, 모든 상황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만들어지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가서 형을 찾아갔을 때 형이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자신에게 왜 이런 병이 있는지 모르겠더랍니다. 자신이 신앙 생활을 잘 못한 것같지도 않은데 아니 오히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 같은 오십대에 왜 자신이 병과 이렇게 사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랍니다. 형도 머리로는 안답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설교 말씀으로는 안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멘으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너가 아니라 나이어서 감사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런 상황이 내게 닥쳤을 때 정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지금의 모든 상황이 때가 찼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아멘을 순종하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 또한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4-6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베들레헴 지역과 마리아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만한 방이 없었다는 것은 그 만큼 베들레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호적 때문에 모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산할 날이 차서 산만큼 배가 부른 임산부에게 조차 방을 주지 않는 사회와 사람들의 야박함이 난무한 세상, 그런 시기와 세상에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서 오히려 더 낮은 자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여관도 아닌 마구간 그곳에서도 가축들의 먹이통인 구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왜요? 가장 천하다고 생각하는 이들까지도 예수님은 품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보잘 것 없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품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메시야인 예수님으로 인해 인류의 모든 것이 구원의 대상임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마구간의 구유는 누구나 찾아와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목자도 동방의 박사도 여자도 남자도 어린이도 어른도 가난해도 부유해도 그 누구도 찾아 올 수 있는 곳 마구간의 구유였습니다.
누가복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렇습니다. 온 백성 모든 인류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기쁨이 가장 낮은 구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요셉과 마리아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기 이전에 천사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 받았습니다. 요셉도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될 것과 그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시야로 태어난 예수님은 너무도 초라한 구유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산달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출발하기 전 태어날 아기 예수를 위해 정성컷 포대기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왜 메시야 예수를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보내셨는지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끌어가시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낮은 구유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며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낳다는 것조차 의심하고 반문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는 낮고 낮은 구유에서 출발하여 모든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관에 머물 곳이 없었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의 부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렇습니다. 우리도 자주 예수님을 우리 마음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 역시 호적하기 위해 인산 인해로 복잡한 베들레헴 만큼이나 세상에 분주함으로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의 모습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세상을 품으시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질병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 받은 자들을 치유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고통 때문에 슬퍼하는 이들을 기쁨으로 회복하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로 죽은 모든 영혼과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일 예수님의 탄생이 어느 왕가의 왕자로의 탄생이었다면, 아니면 어느 부유층의 자제로의 탄생이었다면, 권력자의 후손으로의 탄생이었다면.
이것이 온 인류에 미치는 기쁨의 소식이었을까?
어느 왕이나 권력자나 부자의 생일 조차 모르는 것처럼 예수님의 탄생도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으로 나와 같은 분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더더욱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버릴 그 세상까지도 사랑하셔서 그 세상 안에 오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무도 사랑하신 세상 그 세상안에 내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낮고 천한 구유에 놓이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