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하게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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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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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기도문
(갈라디아서 4장 21~31절을 바탕으로)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자유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종의 멍에 아래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자유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때로는 종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자유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굳게 서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를 배우며, 우리는 율법의 종이 아닌 약속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율법에 얽매인 삶이 아닌,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믿음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주님, 이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과 억압이 가득하며,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할 도전이 많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령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세상의 조롱과 유혹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예배를 통해 우리가 더욱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자유를 붙들며,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서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의 세상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약한 동물들은 서열 싸움에서 밀려나 생존을 위협받습니다. 서열에서 승리한 동물들은 세로토닌이 풍부하게 분비되어 몸이 유연하고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며 생존의 유리한 조건을 누립니다. 그러나 패배한 동물들은 긴장 상태에 빠지고 면역력이 약화되어 점점 더 생존에 불리해집니다.
인간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작은 문제를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빈곤한 사람들은 같은 문제로 인해 생명까지 위협받습니다. (ex. 감기와 폐렴)
전염병, 경제 위기, 질병과 같은 상황에서 약자는 더욱 큰 고통을 받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며, 오히려 불평등과 억압 속에서 종의 멍에를 씌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지만, 우리가 이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가 세상의 방식과 기준에 얽매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도 이 덫에 걸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종의 멍에를 벗고 참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어떻게 굳게 설 수 있을까요?
1. 세상의 불공평함을 직시하라
1. 세상의 불공평함을 직시하라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전 세계 상위 85명의 부자가 하위 50%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는 국제구호개발단체 옥스팜(Oxfam)의 2014년 보고서에서 나온 내용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프라이스의 법칙에 따르면, 100명 중 10명이 전체 생산의 50%를 담당합니다. 이는 Derek J. de Solla Price(데릭 J. 드 솔라 프라이스)가 연구 논문 저술 및 생산성 분포를 통해 제안한 이론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 10명이 일하면 그 중에 특출한 한명이 50%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이런 한명이 있다면 그것으로 너무 과민하지 마세요.
또한, 파레토의 법칙에 따르면,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소유하며, 이 법칙은 Vilfredo Pareto가 부의 분포를 연구하며 발견한 경제학적 원칙입니다.
심지어 성경은 마태복음 25장 29절에서 “있는 자는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가진 것까지 빼앗긴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 하신 말씀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 충성되이 행동한 자는 더 큰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대부분 더 풍족한 쪽에 나를 대입하지만, 실상을 빼앗기는 쪽이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공평함은 단지 사회적 문제를 넘어서 생물학적으로도 드러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서열 싸움에서 패배한 동물들은 옥토파민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긴장 상태가 지속됩니다. 이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며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고, 면역력이 약화됩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들의 악순환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은 ‘양성 순환고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치 마이크를 사용할 때 마이크가 스피커에 가까이 있으면 증폭과 확산이 가속화되어 엄청나게 큰 소리의 소음이 나는 것과 같이 우리 몸에서 이러한 방어기재가 작동하는 것과 상황이 맞물려 심각한 가속화를 가져올 경우에 우울증, 공황장애, 폭력성, 자포자기 등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씌우는 '종의 멍에'와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 인간 역시 불공평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될 때 우리는 끊임없이 긴장하며 힘을 잃게 됩니다.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소진되며,
결국 건강과 관계마저 악화됩니다. 이는 우리를 에너지를 소모하며 무기력하게 만드는 '종의 멍에'와 같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불공평한 현실과 맞서 싸우다가 지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현실에 순응하고,
어떤 사람은 불평 불만을 꺼내며 취하거나 폭력성을 나타내기도 하며, 누군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은둔해버리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자유와는 거리가 멀고,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히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어떻게요?
굳건하게 서서!!
2. 굳게 선다는 것의 의미
2. 굳게 선다는 것의 의미
‘굳게 서라’는 말씀은 단순히 흔들리지 말라는 뜻을 넘어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굳게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존재의 부담을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 삶이 주는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감당하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책임감 있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행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행복만 추구하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현재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행복만 추구하는 것은 현재만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하거나 저축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일 등은 모두 행복하지 못한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그러한 일들을 하는 이유는 ‘책임감’때문이며, 이 책임감이란 미래의 언어입니다. 미래의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부담을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모두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나 잘못도 현재의 행복도 미래의 책임감도 모두 자신의 몫입니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세우는 것: 세상이 혼란스럽더라도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방부터 정리하라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일화가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서 부산을 떨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위치와 능력 안에서 혼란을 바꾸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태초에 세상이 온통 어둠에 가려 물로 가득 차서 혼란스러울 때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하늘과 바다를 나누시고 바다의 경계를 만들어 땅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 공간에 필요한 것들로 채우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삶에 혼란스러운 것들을 제자리에 놓고,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배치하는 능력은 신이 주신 능력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어지러진 방을 치우고 집을 치우고 내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 무의미하게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선행을 실천하거나, 직장에서 정직과 성실함으로 일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 방을 정리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만 드리는 예배로 예배에 대한 생각을 가두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팀켈러의 일과 영성을 통하여 우리의 직장과 가정 그리고 일상이 얼마나 훌륭한 예배의 장소들이 될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일상이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옳은 것과 편한 것이 충돌할 때 십자가를 지는 것: 자신이 편안한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굳게 선다의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종에 멍에란 말도 안되는 누명으로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등돌린 제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 순응하며 불의를 보고도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소신과 정의감 그리고 모험심 따위는 가슴 속 깊은 곳에 가둬버린채 그렇게 육체에 길들여져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굳게 선다는 것은 불의를 보고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예수님의 발걸음과 같습니다.
무모하거나 무지하게 머리로 들이 받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따라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밀려오는 흐름들과 물결을 당당하게 마주하며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처럼 그 끝이 비록 죽음이라도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고 내가 손해를 보고,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불의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팽개쳐버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만을 쫓는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결론
결론
우리는 불평등과 억압 속에서도 허리를 곧게 펴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당당히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속 믿음의 선조들 역시 불공평한 현실과 억압 속에서 굳게 섰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이 조롱하는 가운데에서도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익숙한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지의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억압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용기를 냈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온 인류에게 참된 자유를 선물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믿음의 선조들을 본받아 굳게 서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불의와 시험과 유혹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거나 굴복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값비싼 자유를 값없이 여기며 살아가지 마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 명령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자유를 누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