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elief VS 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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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belief of Jesus’ Brothers

요한복음 7:1–9 DKV
이 일 후에 예수께서는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유대 지방에서 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예수의 동생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이곳을 떠나 유대로 가십시오. 그래서 형님이 하는 일을 형님의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행동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예수의 동생들조차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 때는 항상 준비돼 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고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이 하는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거라. 나는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으니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남아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7:5 DKV
예수의 동생들조차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복음사역은, 증인으로서의 역할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한다.
교회는, 지도자는, 예수님의 증인은 무리들을 모으기 위해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의 사역의 차이점은 후반부에서 갈라진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큰 무리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모여들 수만 있다면, 그들이 구하는 것이 이익이든, 힐링이든, 관계든, 사람을 흥겹게하는 볼거리와 먹거리를 원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따라 모이기를 내버려둔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적을 따라, 피상적인, 초자연적인 이적을 따라 모이는 무리들 중에서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별하여 내신다. 말씀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명확히 선포하시고 믿는 사람들을 제자로 분류해내신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구하는 사람들로 부터 영원히 지속할 양식을 먹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뽑아내시는 사역을 하신다. 주님은 이렇게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신다. 이것이 기독교 사역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주님은 표적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믿는 제자들을 구별하여 내셨고, 형제들 조차도 믿지 못하는 사실을 드러내시어 방향을 제시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는 주를 본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팔로워들이다. 큰 무리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가 아니다. 무리들을 모으는 것은 쉽다. 하지만 주를 닮은 제자들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무리를 모으는 것은 큰물의 화려함과 놀이 시설과 유명한 인사들을 심고 필요한 비지니스를 홍보하는 장으로 만들어주면 늘어난다.
그러므로 교회는 막연한 목적을 따라 모이는 사람들로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구분해내야 하는 곳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아오는 사람들로부터 영원한 양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제자로 만들어져 가는 곳이다. 다른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기적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 곳이다. 그들은 유치하기 위해 받아주고 그들의 가치와 욕망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꼐 나아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주님은 그런 사명을 교회에게 주지 않으셨다.
데살로니가전서 1:6 DKV
또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는 주를 본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팔로워들이다. 큰 무리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가 아니다. 무리들을 모으는 것은 쉽다. 하지만 주를 닮은 제자들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무리를 모으는 것은 큰물의 화려함과 놀이 시설과 유명한 인사들을 심고 필요한 비지니스를 홍보하는 장으로 만들어주면 늘어난다.

God’s Timing

요한복음 7:6 DKV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 때는 항상 준비돼 있다.
예수님의 출생과 십자가에 오르시는 것과 부활과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시간에따라 진행된다.
갈라디아서 4:4 DKV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도 정확한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움직일 것이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고치실 것이다. 주님의 태어나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것이라면 반드시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날이 그 분의 시간표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
디모데전서 6:14–15 DKV
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켜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보이실 것이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하나이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우리 인생의 시간들도 하나님의 시간쵸 안에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허랑방탕한 둘째아들처럼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시간이 있을테고, 죄와 처랴한 삶을 깨닫고 하나님을 탖는 때가 있고, 칭의로 구원을 받는 때가 있다.
디모데전서 2:6 DKV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는데 이것은 적절한 때 주어진 증거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

갈라디아서 5:22–23 DKV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지할 율법은 없습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사도행전 11:24 DKV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오게 됐습니다.
바나바의 뜻은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4:36-37, 9:27)
돈에 있어서, 성령이 충만한 이후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였다.
교회 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적대시하는 제자들에게 중재자 역할을 한다. 바울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며 변화 되었는지,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얼마나 헌신될 수 있는 사람인지..
마가가 함께 일하지 않고 힘든 선교지를 떠났을 때 다시 동역하는 것을 거부하는 바울과 갈라지면서 까지 마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우는 역할을 한다.
권위에 있어서, 몇 사람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교회의 목회자로서 바울을 데려온 후 공동목회자로 목회를 하였다. 바울을 빛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나 권력욕을 내세우지 아니하였다.
성령님의 명령을 받아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을 때, 구브로 섬에서 바울의 역량을 보았고, 바울을 세우고 복음의 확장을 위해 스스로 이인자의 자리로 내려갔다.
“섬 반대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 항구도시 바보(Paphos)에서,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인 바예수를 성령의 능력으로 제압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로 믿게 하는 과정이, 사울에게는 뭔가 큰 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사울은 히브리어 이름 대신 헬라어 이름 바울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과거의 사울이 가르치기를 주로 하는 교사라고 볼 수 있었던 반면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름 순서로 보자면, 안디옥 교회에서의 사울은 다섯명 사역자중 제일 마지막이었던 반면, 이 후로는 늘 첫번째로 거명되어 선교팀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음을 암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이름의 뜻은 작은자를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4:1 DKV
이와 같이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들로 봐야 합니다.
바울은 여러군데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묘사한다. 고린도전서 4에서 일꾼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휘페레타스’라는 단어인데 노를 가리키는 휘포와 노를 젖는다는 ‘에레테스’ 두 단어를 합성해서 사용되어진 단어이다. 고대사회에 노를 젖는 노예들은 배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창문이 없이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북을 울리는 지휘관의 장단에 맞추어 노를 젖는 사람들이었다. 선장의 신호에 맞추어 빨리 저어라고 하면 스피드를 올리고, 천천히 저어라 싸인을 주면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며,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상관없이 주인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 사람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일꾼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노 젖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예가 바로 복음을 맡은 사명자의 열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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