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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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강이 될 것이라
본문: 미가 5:2-5
찬송: 122장 참 반가운 성도
제목: 평강이 될 것이라
본문: 미가 5:2-5
찬송: 122장 참 반가운 성도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은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네 개의 대림절 초 중에서 마지막 초에 불을 밝히는 오늘, 우리는 진정한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어제 21일은 동지였습니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그러나 동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매일 낮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빛은 다시 세상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의 한 해는 어떠셨습니까?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기후 변화로 걱정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여름에는 벼멸구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당했고, 가을과 겨울에는 잦은 비와 기온이 내리지 않아 시금치 농사에 타격이 있었습니다. 가게를 하시는 분들도 경기가 좋지 않아 한숨을 쉬셨을 것입니다. 손님도 줄고, 매출도 줄어들어 마음이 무거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빛을 더욱 기다립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어둡다고 느낄 때, 가장 밝은 빛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 소식, 그리고 이 소식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낮은 곳으로 찾아오시는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낮은 곳으로 찾아오시는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은 우리가 들어서 잘 아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탄절만 되면 자주 듣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베들레헴은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변방 중의 변방이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여기서 '작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단순히 크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것없고 초라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도초중앙교회'. ''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변두리에 있습니다. 이것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마치 베들레헴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변방이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복음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이런 곳을 택하셨을까요? 예루살렘에는 웅장한 성전이 있었고, 권력의 상징인 왕궁이 있었으며, 성경에 박식한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등대를 세우는 원리와 같습니다. 등대는 어디에 세워집니까? 밝은 도시 한복판이 아닙니다. 가장 어둡고 위험한 바다 가운데, 암초가 있는 곳에 세워집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 빛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여전히 어둠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걱정하시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숨 쉬시는 가게 안에도, 외로움을 느끼시는 어르신들의 방 안에도 어둠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어둠을 밝히시는 빛이 계십니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 되었습니다. '에브라다'는 '풍요'를 의미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곳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시작된 곳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빛이 가장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 9:2). 이 예언은 베들레헴에서 성취되었고,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깊이 바라보며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베들레헴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곳은 다윗이 어린 시절 양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사자나 곰이 자기 양을 해치려 할 때면 목숨을 걸고 양들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진정한 목자의 모형에 불과했습니다.
[그림을 보여주며] 여러분, 이 그림 한 번 보시겠습니다. 홀먼 헌트라는 화가가 그린 '죽음의 그림자'라는 작품입니다. 보시면 젊은 예수님이 목수일을 하고 계시죠? 하루 일을 마치시고 잠시 허리를 펴고 계신 모습입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예수님 뒤 벽에 그림자가 보입니다. 이 그림자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옆에 서 계신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아들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고 계시죠.
왜 이런 그림자가 있을까요? 이 그림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를 향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목수일을 하실 때도,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미 십자가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이 말씀 속의 '선한'이란 단순히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완전하고 이상적인 목자라는 뜻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목자들은 양 떼와 완전히 동고동락했습니다. 낮에는 뙤약볕 속에서, 밤에는 추위 속에서 양들과 함께 했습니다. 야곱도 이렇게 고백했죠. "내가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었나이다"(창 31:40).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헌신을 넘어서는 참 목자가 되어 오셨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 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삯꾼과 참 목자입니다. 삯꾼은 위험이 오면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도망갑니다. 하지만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도 내어놓습니다. 그림 속 예수님의 그림자가 보여주듯, 우리 주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실 것을 아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동일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들녘의 일로 힘들어할 때, 일상의 문제들로 걱정 될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마치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이러한 선한 목자의 돌보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도 평강의 사역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도 평강의 사역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본문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본문의 '평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예수의 마음으로 치유하는 교회"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치유하며 한 해를 달려왔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부르셔서 동일한 사역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빛과 평강의 통로가 되고자 힘써왔습니다. 힘들어하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아픔을 겪는 성도를 찾아가 위로하고, 교회의 필요한 곳에서 섬기며 서로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의 마음을 실천하려 애써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갑니다. 내년의 표어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에스겔 37장 14절은 약속합니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이것은 우리가 받은 평강이 더 큰 부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내년의 모습입니다.
평강의 빛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아픔을 겪는 성도를 위한 짧은 기도,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교우를 향한 전화 한 통화... 이런 작은 실천들이 평강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작은 베들레헴에서 시작하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순종이 큰 변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남은 한 달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평강의 빛을 비추며, 새해의 부흥을 함께 준비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림절의 마지막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이 불빛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일깨워줍니다.
첫째, 우리를 찾아오신 빛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어두운 곳,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오고 계십니다.
둘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빛입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은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시고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셋째, 우리를 통해 비추고자 하시는 빛입니다. 우리가 받은 빛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원하십니다.
이제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갑니다. 우리는 올 한 해 "예수의 마음으로 치유하는 교회"가 되고자 힘써왔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도초중앙교회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치유와 회복의 사역을 감당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두운 베들레헴을 찾아오셔서 생명의 빛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캄캄했던 인생에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를 위해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그 크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빛을 나누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어두운 곳을 찾아가게 하옵소서.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평강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우리 도초중앙교회가 예수의 마음으로 치유하는 교회가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부흥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 큰 변화를 일으키시는 하나님, 우리도 베들레헴처럼 주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거룩한 땅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땅 가운데 주님의 빛을 비추는 복된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빛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송: 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