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다(미가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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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다
드디어 만나다
1 군대의 도성아, 군대를 모아라! 우리가 포위되었다! 침략군들이 몽둥이로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뺨을 칠 것이다.
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4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5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 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앗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자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
6 그들은 칼로 앗시리아 땅을 정복하고, 뺀 칼로 니므롯 땅을 황무지로 만들 것이다. 앗시리아의 군대가 우리의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국경선 너머로 들어올 때에 그가 우리를 앗시리아 군대의 손에서 구원하여 낼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을겁니다.
보수적인고 전통적인 명문학교에 존 키팅이라는 영어 선생님이 부임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파격적인 선생님에게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에게 책을 찢어버리게 하고,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세상을 보라고 독려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 이라는 라틴어 문구를 소개합니다.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붙잡아라, 지금을 즐겨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오늘을 붙잡고 내일을 적게 믿어라 입니다.
지금을 내일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키팅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이 변화를 겪기 시작합니다.
키팅선생님이 죽은시인으ㅢ 사회라는 비밀 문학 모임에 참여했었다는 것을 알고 친구들끼리 죽은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부활시켜서 모임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모의 반대로 닫혀진 자신들의 꿈을 다시 이루기고 결심합니다.
닐 페리라는 학생이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보수적인 부모의 반대에 불구하고 도전을 합니다. 너무도 극심한 부모의 반대로 닐은 그만 목숨을 끊고 맙니다.
이 일로 키팅선생은 학교에서 해고가 됩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얼마나 감동인지.
학생들이 교실에서 인사하던 중 책상위로 올라가 외치기 시작합니다.
오 캡틴, 오나의 캡이라고 외치며 자신들의 삶에 자유와 용기를 준 선생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이 키팅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이들에게 상당한 충격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생을 변화하게 했습니다.
저마다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하게 했습니다.
카르페 디엠! 막연한 내일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일을 기대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 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일이 결정되어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람에게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도록 찾아와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오늘 미가서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이 예언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최악의 상황이 다가왔을때, 메시아가 올 것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이 닥칠 상황을 1절한절로 설명을 합니다.
미가 5:1 “1 군대의 도성아, 군대를 모아라! 우리가 포위되었다! 침략군들이 몽둥이로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뺨을 칠 것이다.”
침략군들이 왕의 빰을 칠 정도면 굉장히 모욕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1절에서 군대의 도성을 다른 번역에서는 딸군대여 라고 말을 합니다. 딸 군대라는 말은 유다사람으로만 이뤄진 군대인데 이 의미는 작은 소규모의 군대를 말한다.
딸 군대를 포위하고 있는 아시리아 군대는 대규모 군대입니다.
막강한 적군의 포위속에서 딸 군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왕을 붙잡아서 몽둥이로 뺨을 치는 모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눈이 뽑히고 모욕을 당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메시야를 예언합니다.
그 메시야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이 동네를 소개할 때 족속가운데서 작은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이 의미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의 비중이 아주 작은 곳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지난번 김동일목사님이 설명해 준것처럼 정말 작은 촌락입니다. 룻이 살던 곳이고, 다윗이 태어나서 양을 치던 작은 도시입니다.
이사야 7:14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에서도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날 것을 예언합니다.
또한 이 베들레헴은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서 묻힌 동네이기도합니다.
베들레헴의 레헴은 떡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자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가운데서 오실 메시아의 대한 출생지의 대한 것을 각인시켜 줍니다.
이 메시아의 대한 예언은 이사야와 미가 몇몇 선지자만 예언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유대근동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메이사의 예언은 존재해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미가 5:2 “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시아의 예언은 아득한 엤날, 심지어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매우 오래전부터 예고 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미가 5:3 “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메시야가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신다고 말한다. 메시아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방의 손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모두 흩어지고 포로로 잡혀가고 주변 열방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남은 자들,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던 사람들,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고 살아던 남은 자들 속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미가 5:4–5 “4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5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 를 가져다 줄 것이다.
오시게 될 그 메시야는 어떤 분인가
세상의 통치자, 왕은 자신의 정치력과 군사, 힘을 의지했습니다. 때로는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를 보십시오. 자신에게 주어진 통치자의 힘을 자신과 자신 주변사람과 무속, 주술에 의지하고 정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일보다 통치자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을 어려움 가운데 끌고 가는것도 서슴치않게 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실 메시아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해서 백성들을 돌본다는 것입니다.
시편 20:5 “5 우리는 임금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워 승리를 기뻐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임금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메시아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영광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승리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뿐 아니라 백성들의 안전을 책임집니다. 그리고 참 평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신 예수님의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현실 통치자와 너무도 상반되는 통치자입니다.
이런 통치자가 오늘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는 만난 것입니다.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키팅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이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주어진 삶을 지금 당장 새롭게 살기로 결심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결심들이 생겨야 합니다.
막연한 기대로 기도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왕이 다스리는 오늘,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시간인 오늘을
헛되게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카르페 디엠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월드비전 경기남부지부에서 모임을 왔습니다.
수십명의 아이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꿈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한명한명 그들의 꿈의 대한 계획을 발표하고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모임이었습니다. 어떤친구는 그림, 음악 등 다양한 꿈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에 몇명의 대학교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왔습니다.
정리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회복지 전공을 하고 있고 월드비전에서 하는 일에 계속 참여하면서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 일이 직업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다른 직장에 비해 물질적으로 비전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일을 통해 약자를 도와야 되지 않겠는가.
자신이 꿈꾸는 이 일이 사명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카르페디엠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평화의 왕이신 주님이 오늘 우리를 만나 주심으로 인해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을 사명을 회복해서 살아라는 의미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고 없어질 존재입니다. 100년이라는 시간, 벌써 절반 이상을 살아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죽고 없어질 존재인 우리를 주님이 만나 주시고 없어질 시간으로 살지 않게 하십니다.
잃어버린 사명, 아무런 보장없는 내일을 그저 막막한 기대로 열심히 사는 우리에게
오늘 분명이 우리에 맡겨진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가지고 오늘을 기쁘고 보람되이 살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물론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을 위해서도 주님은 오신 것입니다.
이 대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거룩한 카르페디엠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