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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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은 대강절 4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3주 동안 나누었던 설교의 주제는 소망, 평안, 기쁨이었습니다. 12월 한 달간 성탄을 기다리며 이러한 가치들을 누리시고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은 대강절 마지막 4번째 주일로서 중심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금방 마음이 와닿는 것 같다가도 또 금방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한다고 머리로 이해가 되어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저는 그 어려운 일을 온전히 해내신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대강절에 나눈 4가지 주제 중에서 사랑은 좀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소망이나 평안, 기쁨은 혼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은 혼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반드시 사랑하는 존재와 사랑을 받는 존재가 있어야만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관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단순히 하나님의 취미생활로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기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를 심심풀이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고, 인간이 그 사랑을 받는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사랑의 방식은 나를 사랑해주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그렇게 서로 인격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그 사이를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우리들이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사랑은 이 후에 세상의 다른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 인간들의 배신은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심판 아래에 있습니다. 그 심판이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지 육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채 두렵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멸망의 의미입니다.
차라리 육신의 죽음이 끝이라면 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육신의 죽음 뒤에 있을 영원한 멸망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향한 사랑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영원한 멸망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계획을 세우셨고, 그 일을 친히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복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요한복음 삼장 십육 에서 그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멸망에 이르는 것이 당연함에도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 한다,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자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우리를 향한 사랑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 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신했었어도, 그 분은 받아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자주 변합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변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 사랑이 변치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 번은 참아주기도 하고 기다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랑을 버리곤 합니다.

두 번째로, 그 분의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수되었고 벌 받아 마땅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사실 그러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희생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그 분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슨 특별한 일을 해야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받을만 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은 바로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사랑받을 만 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 바로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네가지 사랑이라는 책에서 내가 사랑받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표현합니다. 특히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가지면서도 내가 그렇게 겸손한 태도를 가졌으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 안에 본래의 자유와 능력과 가치가 있다는 최후의 주장을 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능력과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갖게 되는 것만이 진정 우리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 어려운 표현이지요. 간단히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가 복음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이 작사한 찬양곡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못몬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은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은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예수님의 은혜로서 이러한 사랑을 입은 자는, 그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그 분의 도움을 입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할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그 사람을 먼저 사랑함으로써 그 사람을 가치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의 빛을 비추신 것입니다. 이제 그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자는 그 빛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보여주신 그 사랑을 믿고 추구하지 않는 자는 그 분께 나아오지 아니할 것이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그 사랑을 아는 자들은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 분께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도 그 분의 사랑을 누리고, 그러한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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