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2 주일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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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안디옥교회
바나바와 안디옥교회
조윤구 목사님 (여수교회)
사도행전 11:19–27 (KRV)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사도행전 13:1–3 (KRV)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에 대해서”
“안디옥에 대해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경에 능한 사람이었다. 초대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복음이 전파되다가 스데반을 순교 시키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사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사울이다. 스데반과 바울은 같은 동문 이었다. 바울은 곧 죽어도 유대교였고 유대교에서 회심한 사람이 스데반이다. 바울은 지식이 많았따. 스데반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하고 흩어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1:19–21 (KRV)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파하니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 아니하시는지 전도해 보면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1:22 (KRV)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게 된다. 바나바는 하나의 별명이다. 바르 나바스,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11:23 (KRV)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최초의 선교사가 파송되서 한 말이 주께 붙어 있으라고 말한 것이다. 주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것은 어쩌면 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곤나서 붙어있는 것은 또 힘듦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끝까지 붙어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1:24 (KRV)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처음에 교회가 생겨서 파송된 전도인은 착해야 합니다. 저도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착하게 살자, 다짐합니다. 큰집에 다녀와서 서로 조폭대 조폭이 만나서 앞으로 우리 착하게 살자고, 그런데 우리들은 진짜로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가족이니까 다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말 밖에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냐면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옛 날에는 안 착할 수가 있습니다. 무익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이후에는 변회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입이 할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릅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불 손가락으로 입을 지져버립니다. 구원 받으면 말하는 것부터 바뀌게 됩니다. 속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면 말이 바뀌게 됩니다. 그 다음에 생각도 행동도 바뀌게 됩니다.
사도행전 11:25–26 (KRV)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사울을 믿어줬습니다. 안디옥에서 길리기아 다소는 200km정도 됩니다. 그리고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1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초빙을 해서 둘이 1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이제 안디옥이라는 큰 도시가 있는데 벌써 세상 사람들이 이 그리스도인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알 정로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를 처음 시작한 목사님이 바나바와 바울의 교육과 선교를 통해 교회가 튼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큰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3:1–3 (KRV)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세계선교 그리고 세계선교희 최초의 선교사 바나바와 바울, 이게 장부터 13장까지 어떻게 교회가 발전되고 복음이 확자오디고 세계 선교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방인의 최초의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생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이 스데반 집사를 순교 당하게 하고 그 여파로 핍박이 일어나 불똥이 번지게 됩니다. 사마리아, 안디옥에 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그 안디옥 교회를 처음 담당한 목회자가 바나바입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우리는 항상 회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모델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진행되다가 비본질적인 것으로 나가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건 아닌것 가틍ㄴ데 그러면 빨리 원상태로 돌아와야합니다. 초대 교회와 같은 모습으로 바로 안디옥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1:19–20 (KRV)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전도할 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전도라는 것은 너무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도하기 힘듦니다.
마태복음 9:35–38 (KRV)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것을 누려보고 70세 들어 죽게 된다. 전도서는 솔로몬의 인생론입니다. 솔로몬의 설교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의 마지막 죽기 직전에 쓴 책입니다. 청년때 하나님을 알고 죽을 때는 완전히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죽기 직전에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전도서입니다. 수 십년 동안 일만 죽도록 하고 돈도 많이 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쌍한 것입니다. 목자가 없는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추수꾼 하나님께로 인도할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추수군들이 잠자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으면 그 사람들을 인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심령이 메말라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온 세상의 지식을 다 안다고 할지라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를 하는데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6:34 (KRV)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 영혼을 끄는 줄은 사랑으로 끌든지 약속으로 끌든지 그 두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ㅗ전도해야 합니다. 또 구원 받은 사람도 붙들어 줘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29 (KRV)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이 말씀을 보며 목회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들이 다치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내 가족이 아프고 다치면 어떻습니까? 아주 힘들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 대해 저렇게 간증한다. 형제 자매들중 어떤 사람이 힘들어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아주 건조하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교회를 안나오고 있으면 애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7–8 (KRV)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우리 교회에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온 어머니가 계십니다. 얼굴에 살아이 가득 담긴 얼굴로 이쁘다고 합니다. 젖먹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 엄마는 지금 사랑에충만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유순한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르 즐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사도도 아니라고 비방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우리 주변에 형제 자매들을 정말 이런 마음으로 붙들어 줘야 하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교회 가운데 함꼐 있습니다. 전도할 때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심 중에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들을 유순한 마음으로 붙들어 줘야 합니다.
“바나바에 대해서”
“바나바에 대해서”
사도행전 4:32 (KRV)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36 (KRV)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입니다.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울 떄 사도들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의 재산을 팔아서 통용하게 했습니다. 지금과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소유로 많은 성도들을 섬기며 위로하는 위로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품성입니다.
사도행전 9:36–43 (KRV)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다비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죽었습니다. 베드로가 롯다라는 곳에 있는데 욥바로 베드로를 초청해서 과부들이 베드로가 오니 다락방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다비다가 죽어있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부자는 아니였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성도 섬기는 말을 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과부들, 이 당시에 과부와 고아는 가장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다비다는 어려운 사람들의 속옷을 만들어 입히며 지냈습니다. 아주 작은 일 같은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남 모르게 조용히 선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더 풍성해지고 온전해 집니다.
“오네시모(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2번 째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2번째는 순교를 당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지만 에베소 성도중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은 바울을 여러번 찾아와 위문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아무리 사도이지만 사람입니다. 사람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네 그 에베소라는 아시아에서 로마까지 와서 여러번 와서 사도바울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오네시보로 였습니다.
디모데후서 1:15–18 (KRV)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바나바, 다비다, 오네시보로 모두 위로를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나바, 다비다, 오네시보로가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자신의 것을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바나바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가난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루식에 보면 베들레헴에 아주 부자 두 명이 있습니다. 보아스와 엘비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아스라는 사람은 흉년이 들었을 때에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면서 산자와 죽은 자에게 선을 베푼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비멜렉은 굉장히 돈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모든것을 팔아 저주받은 땅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루디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흑해라는 러시아 땅이 있습니다. 남단에 있는 두아디라 성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전도를 통해 루디아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말할 때 나의 구주라고 합니다. 나의 왕, 주님이 된 것입니다. 나의 주님입니다. 그러면 사실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재산은 말할 필요도 없고 재능, 목숨도 사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루디아는 자기의 집을 개방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전도했고, 그 가정에서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로 이주하는데, 자신의 필요로 이주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에서 가정을 개방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더 많아지니 두란노 서원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2년 동안 매일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가 시작됩니다. 우리 성경에 나온 교회만 일곱 교회가 있습니다. 정말 자기의 재산을 드리고 자기의 가정을 개방함으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지만 물질 생활도 하나님 앞에 할수 있는한 정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믿어주고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믿어주고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9:26–28 (KRV)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바나바는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로 연결시킵니다. 바나바가 아니었으면 사울은 사도로 생활하기 힘들었을 것이빈다. 나중에 길리기아 다소 성에 거하고 있는 사울을 안디옥까지 초빙해서 같이 목회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교회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교회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1:25–26 (KRV)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하나님이 교회에 명하시는 것은 전도와 교육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것은 거의 주일 말씀이 교육입니다. 성경을 계속해서 가르칩니다. 사람을 전도해서 구원 받게 하고 교육을 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 노릇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교육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그냥 고등 동물입니다. 인간은 타고난 품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 다듬어 지는 품성이 필요합니다. 천부적인 품성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품성 훈련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능훈련, 예능훈련, 품성훈련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일단은 분별해야 합니다. 진위, 뭐가 진짜고 잘못 되었는데, 그리고 선악! 무엇이 선이고 악한 것인지, 구원 받고 나서도 신앙생활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잇는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하고 형제 자매님들은 먼저 구원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지도해 줘야 합니다. 교회 중심으로, 주님 중심으로! 그리고 품성도 착하고 아름답게 온유하고 겸손하게 화평하고 거룩하게 진실되고 성숙하게 그리고 지혜롭고 순결하게 공평하고 정직하게, 신중하고 담대하게, 인내하고 덕스럽게, 원만하고 적당하게 이런 좋은 품성도 하나님 말씀을 배우며 길러집니다.
교회는 준비된 일꾼을 토앻서 교회는 서게 되어있스빈다. 지금은 교회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갈 때에 결국은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 선한 양심을 따라 살 것인지 자기 욕심을 따라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자기 욕심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며 살아갑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습니다. 귀는 들어도 차지 않습니다. 이 세상 행적은 다 지나갑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곧 주님 오십니다.
고린도전서 9:27 (KRV)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로마서 8:12 (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스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바나바는 말씀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말씀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우리 교회가 성숙해지면 선교로 포커스가 맞춰지게 됩니다. 우리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처음 전도자 바나바의 품성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입니다. 자기의 것을 드리는 사람이빈다. 순종하는 사람 착한 사람 믿어주고 세워주고 일을 맡겨주는 사람, 헙력하는 사람, 교육할 수 있는 말씀에 익숙한 사람, 그리고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나보다 늦게 구원 받은 다른 사람이 더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런것을 보며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더 감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