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4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00장(내 맘이 낙심되며)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주님 오늘도 저희를 깨워주시고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새벽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주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세상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임재 안에서 쉼과 평안을 누리며,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 새벽의 작은 기도가 우리의 하루를 이끄는 힘이 되게 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시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기도제목과 함께 주님게 예물 드린 손길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드려진 예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22:54–62 (NKRV)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과 3년동안 말 그대로 동고동락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고 그 수는 12명이었습니다. 그 12명중에 예수님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수제자라고 불릴정도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베드로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고, 예수님의 일이라면 그누구보다도 먼저 발 벗고 나섰던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외면합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친후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인들의 손에 의해 잡혀 가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고 멀찍이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베드로의 믿음 없음만을 드려내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믿음은 다른 제자들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태 복음 26장에 의하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베드로의 믿음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의 말씀처럼 닭 울기 전에 3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이처럼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도 예수님처럼 체포당해 모진 고난을 당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두려움이 베드로의 믿음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움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장담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래서 감당 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난다면 우리는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실패한 두번째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감란산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한번으로 나오지만 마태복음에서는 3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베드로는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을때 그것이 어떤 이유였던지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을 과신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2:33 에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쉽게 말해 내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결단과 믿음을 믿었지만, 결국 베드로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믿음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늘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믿음은 늘 언제나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순간 주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말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순간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뜻을 구하며 깨달아 살아갈 때 내시선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실패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했던 그 베드로마저 주님을 부인함으로 그의 신앙이 실패한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3번째 예수님을 부인할 때 그 소리를 들으셨는지 예수님이 먼 발치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있는 베드로를 보십니다.
돌이켜 보셨다 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몸을 돌려 의도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어쩌다 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보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보시며 예수님은 어떤 마음 이셨겠습니까? 베드로를 보는 예수님의 시선은 어떤 시선 이셨겠습니까? 물론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행동과 성품을 통해 어떤 눈으로 어떤 마음으로 베드로를 보셨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시선에는 슬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을 이미 아셨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베드로가 두려움가운데 있어 예수님을 부인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마음을 보시며 슬퍼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원망이나 책망의 눈이 아닌 그 시선에는 베드로를 향한 이해가 담겨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4:15 에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도 이 땅에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지금 베드로가 처해있는 그 상황을 이해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두려움에 쌓여 예수님을 부인 할 수 밖에 없는 그 약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이 무섭고 두려워 하나님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고 싶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베드로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매순간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증오하고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슬퍼하시며, 아무리 결단하고 결심해도 그 결심대로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이해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앞에 나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앞에 나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그것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내가 안다’ 하시며 ‘잘 왔다’ 하시는 주님 이십니다.
그러니 이 새벽 주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한 약한 나의 모습만을 보며 낙심하지 마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이해하시는 그 주님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시선에는 회복과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전에 누가복음 22:32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 하실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가 끝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실패가 끝이 아니라 과정임을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의 실패가 결과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주님의 놀라운 뜻가운데 과정임을 기억하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드로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시듯 오늘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혼자인것 같아 보일지라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이보다 더 든든한 중보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이러한 주님의 시선을 보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 습니다. 이 통곡은 단순히 죄책감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때닫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다싶이 베드로는 이 후에 두려움 없이 예수님을 전하는 놀라운 사도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성도님들 혹시 지금 자신의 실패와 연약함 때문에 낙심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시선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주님의 시선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바라보시며 회복으로 초대하십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시고 어제의 실패를 주님께 맡기며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과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베드로가 실패와 연약함 속에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그를 바라보시던 주님의 시선을 통해 회복의 은혜를 경험했던 것 처럼, 우리도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히 주님 앞에 내려 놓길 원합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사랑과 용서의 시선을 허락하셔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실패가 사명으로 바뀌는 놀아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다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