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적인 믿음과 순종(예수 탄생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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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좋은 소식이 온 땅에 전해졌습니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전해진 예수님 탄생의 소식입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요즘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기 보다 뭐라고 인사를 하나요? “Hppy Holiday”무슨 말인가요? 공휴일 행복한 공휴일 보내.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분명하게 예수님이 나신 날이라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상 좋은 소식은 빨리 알려 주고 싶구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겨 주고 싶어합니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에 올리고 단체 카톡방에도 올리고 유투브 방송도 하면서 알리겠지요.
오늘은 성탄절이니 에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당시로 돌아가 성탄의 이 좋은 소식을 온 세상에 빨리 전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겠어요. 높은 분이 포고령을 내리고 전령들을 지방 곳곳에 보내 방을 붙이면 제일 빠른 방법 아닐까요? 예수님 탄생 당시에는 분명히 이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방식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기초하고 있기에 우리의 생각을 언제나 뛰어넘으십니다.
사실 예수님 탄생하신 그 날밤! 그 날밤은 너무도 초라한 밤이었습니다. 여관 한 귀퉁이 너무도 누추한,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 가축들의 오물 냄새속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마굿간의 구유 주위에는 천사들의 찬양 소리도 없었습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호적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온 사람들, 여관에 묶고 있는 사람들의 의미 없는 소리들 만이 들릴 뿐이었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아기 예수님의 울음 소리가 묻힌 밤이었습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죄로 죽어 있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오히려 죄로 물든 세상 소리가 아기로 태어난 예수님의 울음 소리를 짖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밤 천사들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마구간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천사들의 기쁨의 찬송소리도 없었습니다. 이 기쁜 날 천사들은 뭘하고 있었나? 직무 유기????
천사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이 아닌 들판에서 잠자고 있는 양들을 지키는 목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 탄생의 소식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당시의 권력자, 부유한자들에게 메시야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지 않고 목자에게 먼저 알리셨을까요? 설교를 시작하면서 말씀을 드렸듯이 가장 빠른 방법은 권력자를 통한 전달 방식이었을텐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목자들에게 전해진 성탄의 소식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목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초원을 누비며 양을 치는 그런 낭만적인 목자의 모습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당시의 목자는 사회 신분 중에서 낮은 신분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천대받았습니다. 이들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이동하는 유목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동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밤이지만 목자들에게는 더 없이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밤이었습니다.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찬 들판이었습니다. 오늘이 그랬듯 내일도 소망없고 의미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 밤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누가복음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주의 천사가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비추며 들판의 목자를 찾아왔습니다. 본문에서는 목자들이 무서워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나타남이 무서웠던 것이 아닙니다.
목자들에게 비친 “주의 영광”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죄인인 자신들에게 비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목자들이 경외와 두려움으로 반응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낮은 신분에 있었던 목자들이 예수님 탄생의 첫 증인이 된 것은 하나님 나라는 겸손과 낮아짐을 통해 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입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어느 특정 사람들에게 한정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한자, 부유한자, 낮은자, 높은자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목자들이 양을 지키던 들판의 그 어두운 밤, 주의 영광은 예수 나심의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어둠, 즉 죄에서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삶의 어두운 영역까지도 하나님의 빛을 비추시기 원하십니다. 어두운 삶의 문을 열어 두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소식을 10-12절에서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2:10–12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소식이었습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은 모든 민족과 백성과 열방, 전 인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원수, 나를 비난하는 자, 비난 했던 자, 나를 미워하는 자, 미워했던 자, 나에게 고난을 주는 자, 고난을 주었던 자, 나를 좋아 하는 자, 누구든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을 세가지 단어로 전하고 있습니다. 구주, 그리스도, 주.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구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를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에 좋은 소식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에 좋은 소식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소망의 성취였습니다.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는 그,리고 그 약속을 소망하며 살아온 하나님의 백성을 행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세번째는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고 나의 삶의 주권자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위함이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은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진심으로 나에게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2천년전 예수님의 탄생이 지금 나에게도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어떤 면에서 좋은 소식인가요? 네, 죽으면 천국 갈 수 있도록 구원해 주셔서요? 중요하지요.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도 좋은 소식입니까?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이 지나가면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내 삶에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늘 새로운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삶에 기쁨이 사라져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러면 늘 기쁨이 있지 못합니까?
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실질적인 삶이 이원화 되어 있기 때문아닙니까? 지식적으로만 예수님을 알고 있기 때문아닐까요?
요한복음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알고는 있지만 주님께 가지 않는 내 삶 때문에 우리는 기쁨의 좋은 소식을 늘 경험하지 못하고 늘 어두운 들판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머리로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이 마음가지 내려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2:15–16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16절에서 “빨리 가서”라고 말합니다. 천사로부터 메시지를 듣고 망설임 없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강보에 쌓여 있는 아기를 보자 말을 하며 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이들의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즉각적인 순종과 믿음입니다. 이들은 천사들의 말의 증거를 찾거나 확인하기 위해 빨리 가자 말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의 말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고 그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순종했던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마태복음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 기이한 별을 봅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별을 보고 어떻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 수 있었을까? 과연 무슨 별을 봤을까? 갑자기 나타난 별인가?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이 생각하던 우주관에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이런 별을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하는데요. 이 베들레헴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특이한 현상이어야 한다. 두번째는 순간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세기 천문 기록을 찾아 봤습니다. 태양계의 별들이 있지요. 수 그 지 화 목 토 천 해 명.
여기에서 목성과 토성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목성과 토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는 있지만 궤도가 많이 틀리기 때문에 겹쳐서 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 탄생하시기 전 목성과 토성이 겹쳐진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목성은 제왕을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토성은 이스라엘, 유대인을 상징했습니다. 이 두별이 초근접하는 현상은 당시 동방의 박사들에게는 분명 유대 나라에 왕이 났다는 확신을 준 것이었습니다.
동상의 박사들은 유대나라에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아시아 또는 아라비아에서부터 수백 킬로미터를 여행하며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헌신적인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 메시아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신앙에서 이런 즉각적인 믿음의 순종이 있습니까? 내게 들린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당장 일어나 갈 수 있는 믿음의 용기가 있습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수고가 뒤따릅니다. 위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자들이 그 밤에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 나섰습니다. 들판에서 잠자는 양떼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양떼를 이끌고 그 밤에 마을로 들어간다. 잠자야 하는 시간에 들려 오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자장가로 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듯 목자들에게 쏟아지지 않았겠어요. 들판에 두고 간다면 들짐승들에 의해 많은 양들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위험과 수고를 목자들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용기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믿음의 용기.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의 영광”을 함께 경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각자의 삶에 빛과 소망을 가져다주는 사건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열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구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빛을 비추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