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에 많은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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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12-20
“한 몸에 많은 지체”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2024. 12. 26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한 몸에 많은 지체”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의 몸이에요. 그런데 지체는 많아요. 지체가 뭡니까? 팔, 다리, 눈, 코, 잎, 손가락, 발가락…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관들이죠. 이것들이 하나로 모여서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교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동제일교회 한 교회로 모였어요. 그런데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각각 달라요. 이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모두가 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모든 요소가 다 달라요. 지금 여러분을 보면 얼굴이 잘생긴 사람도 있고, 얼굴이 좀 덜 생긴 사람도 있고, 다 다르단 말이에요.
특히나 고린도교회는 인종도 다양했어요.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도 있었고요. 또 항구도시다보니까 여러 많은 민족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종들도 있었어요. 노예들이죠. 노예들도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토록 다른 사람들이 한 교회로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룬 겁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13절에 이렇게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아멘.
우리가 인종도 다르고, 출신성분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달라요. 그러나 우리는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13절 마지막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은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에요.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을 마치 물처럼 사람에게 부어 주신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 부어주시는 성령을 물을 마시듯이 마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마신다는 말은 곧 성령을 받는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셔서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셔요. 혹시 아직 성령이 거하지 않는 분 있습니까? 없죠. 우리가 예수를 믿은 그 순간에, 우리는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어, 나는 안 받은 것 같은데요?’ 아니오. 다 받았어요. 깨닫지 못할 뿐이지, 다 받았습니다. 여러분 다 예수님 믿으시죠? 그러면 다 성령을 받은 겁니다.
우리는 다 똑같은 성령을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분 예수님만을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는 하나의 신앙을 가졌고, 하나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공동쳅니다. 우리는 하나예요.
그런데 하나의 공동체 안에, 지체는 여럿이라는 거예요. 오늘 본문 14절에 보니까,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몸은 하난데, 그 몸을 구성하는 지체가 여럿이에요. 그런데 그 지체가 서로 너무나 다르다보니까 교회에 문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각자 생각할 때, 보다 중요한 지체가 있고, 덜 중요한 지체가 있고. 존귀한 지체가 있고, 비천한 지체가 있고. 이렇게 자기들끼리 급수를 매기고, 차별을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이것을 바울이 각 지체를 의인화해서 생동감 있게 설명을 하는데요. 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5절 시작,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바울이 발의 입장을 말하고 있죠. 발이 뭐라고 합니까?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이 말을 발이 하는 겁니다. 이것을 보다 본래 뜻에 맞게 번역을 하면 이런 말이에요. “나는 손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몸에 속하지 않았다”
여러분, 발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발이 사실은 손이 되고 싶었던 거죠. 발은 항상 가장 밑에서 신체를 떠받치는 힘든 일을 하고, 또 머리에서 가장 멀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할 때 가장 힘들면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역할인 거예요. 그래서 몸에 소속되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내가 만약에 손이었다면 기꺼이 몸에 속하겠는데, 발이다보니까 소속되고 싶지가 않아요. 발의 역할을 감당하기가 싫은 겁니다.
또 16절에 보면, 이번에는 귀가 나와요. 16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16절 시작,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귀가 하는 말도 똑같죠.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내가 눈이었으면 몸에 붙겠는데, 하기 싫은 귀의 역할이다보니까 몸에 붙기가 싫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바울이 끝에 뭐라고 합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네가 아무리 몸에 붙기 싫다고 할지라도, 몸에 붙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네가 아무리 싫다고 해봤자, 몸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각자 다 다릅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사가 달라요. 그런데 각각 다른 것을 받을 때,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뭘 받을지 내가 정할 수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오늘 본문 18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아멘.
누가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각 지체를 정하신다는 겁니다. 누구는 손, 누구는 발, 누구는 귀, 누구는 눈. 또 누군가는 손톱이나 발톱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에 불만이 있을 수 있고, 남의 역할이 부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어떤 역할도 불필요한 역할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더 중요해 보이거나 덜 중요해 보일 수 있겠지만, 불필요한 역할은 없어요. 모든 역할이 다 필요합니다.
몸에 손만 있고 손톱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눈만 있고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콩팥이나 간이나 십이지장이 없으면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대로, 각각 은사를 주시고, 교회의 요소요소에 배치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받은 은사와 직분이 성에 안 차더라도,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해야 돼요. 내가 갑자기 빠져버리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오늘 제가 새벽에 설교를 하는데, 나 오늘 설교 안 하고 방송실 해야겠다, 이러고 방송실 가버리면 누가 오늘 설교하겠습니까? 장로님? 권사님 설교 한번 하시겠습니까?
제가 어제 사무실에 남아서 세 시간 동안 오늘 설교를 준비했어요. 오래 걸릴 때는 다섯 시간 이상 준비를 할 때도 있습니다. 남들 다 쉬는 휴일에 가족과 있지 못하고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설교원고를 준비해요. 그리고 아까 찬송가를 불렀는데, 찬송가 하나 선곡하는데도 어쩔 때는 한 시간이나 걸릴 때도 있어요. 무슨 찬송이 말씀에 어울릴까, 뭘 불러야 성도들의 마음이 열리고, 말씀을 잘 받을 수 있게 할까. 그만큼 설교 한번 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게 싫다고 그만둘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사이고, 직분인데, 어떻게 이것을 내버릴 수 있겠어요? 하기 싫어도 해야 되고, 힘들어도 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맡은 일이 부담이 되십니까? 여러분들 목사 안 된 것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왜 목사가 됐을까? 한때는 후회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목사가 되게 하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지체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주님이 주신 은사대로, 직분대로 쓰임받음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불러주시고, 크든 작든 나에게 역할을 맡겨주심에 감사하며, 그 역할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어느날엔가 주님을 만나는 그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