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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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views이스라엘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앞에서 떠는 백성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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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은 시편 114편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4편은 할렐루야 시편으로 알려진 111편부터 118편의 8편의 시 중 네 번째 시편이며, 유월절 여덟째 날 유월절 식사에서 낭송되는 시편으로 ‘애굽 할렐’이라고 불리는 시편 모음인 113편부터 118편까지 중 두 번째 시편입니다.
특히 애굽 할렐 시편 중 시편 113편과 114편은 식사 전에 읽은 시편입니다.
그런데 114편은 조금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할렐루야 시편이며, 애굽 할렐에 속해 있지만, 114편에는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공동체 찬양으로 분류되지만 예배하는 자들에게 찬양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일반적인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의 113편 1절에서는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시작하고 있어 ‘할렐루야’라는 단어와 권유하는 말을 모두 쓰고 있는 반면, 114편 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114편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할렐루야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고, 또한 권유하는 말도 없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라는 내러티브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럼 시편 114편은 무엇에 대해 찬양하고 있을까요?
시편 114편은 하나님의 애굽에 대한 승리, 광야에서의 공급,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114편은 두 절씩 네 개의 연으로 구분됩니다.
먼저 첫 번째 연인 1절과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1절과 2절에서는 병렬적인 표현을 계속 나열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이스라엘과 야곱의 집안, 애굽과 언어가 다른 민족, 2절에서는 유다와 이스라엘, 여호와의 성소와 그의 영토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 중 애굽에 대한 표현을 보면 ‘언어가 다른 민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으로 마치 말을 더듬는 언어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애굽 사람은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이며, 그들과 섞일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과 같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의 사람들과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굽 사람들과는 다른 이스라엘 곧 야곱의 집안을 애굽에서부터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여호와의 성소와 그의 영토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성소란 거룩한 곳이라는 말로서 헌신하다, 구별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합니다.
또한 영토란 지배를 뜻하는 것으로 다스리다, 통치하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백성 가운데 계신 거룩하신 분과 백성을 다스리는 분으로서 임재하심을 의미합니다.
이제 두 번째 연인 3절과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3절과 4절에서는 시편 114편의 주요 주제를 소개합니다.
1절에서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고,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다는 것입니다.
3절의 바다가 도망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갈라놓으신 홍해를 뜻하며 요단이 물러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멈추게 하신 일을 뜻합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출애굽과 광야 방황의 시작과 끝을 한 구절에 담아내어 전체 역사적인 내러티브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과 작은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경외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산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언약의 약속을 확인하신 장소인 시내산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처음 정착지를 마련한 지형인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중앙 언덕 지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연인 5절과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5절과 6절은 3절과 4절의 내용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다와 요단, 그리고 산과 작은 산들에게 그 행동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절부터 4절에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고 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다와 요단, 그리고 산과 작은 산들에게 그들이 도망하고 물러가며, 뛰노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물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네 번째 연에 나타납니다.
7절과 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앞서 7절과 8절이 5절과 6절에서 한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씀드렸지만, 바다와 요단, 산과 작은 산들이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바다와 요단, 산과 작은 산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땅을 떨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떨다’로 번역된 ‘훌’은 ‘몸부림치다, 빙빙 돌다, 춤추다, 임산부처럼 진통을 하다, 떨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다는 갈라지고, 요단은 멈추었으며, 시내산은 흔들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앞에서 땅이 떨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떤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시편 지가는 자기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과 공급을 또 한 번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바위가 물웅덩이로 변하고 부싯돌이 샘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마름에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실 물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땅을 다스리시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공급해 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설교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시편 113편과 114편은 유월절 여덟째 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직전에 낭독했습니다.
시편 113편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 높은 곳에 앉으신 이,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는 이가 누구이신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시편 114편은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유월절 축제의 중요한 전통입니다.
전통적으로 유월절 식탁에 앉은 어린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왜 이 밤은 다른 모든 밤과 다른가요?
다른 모든 밤에는 누룩이 들어간 빵이나 마차를 먹는데 왜 이 밤에는 마차만 먹나요?
다른 모든 밤에는 허브를 전혀 찍지 않지만 이 밤에는 두 번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다른 모든 밤에는 평범한 방식으로 식사를 하는데 왜 오늘 밤에는 특별한 의식으로 식사를 하는 것인가요?
이 질문들에 대한 밤으로 출애굽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유월절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강력하신 인도로 인해 노예에서 자유로 나아가게 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에서부터 구출해 내신 그리고 그들을 놀라우신 능력으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 되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떨다’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춤추는 백성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능력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적용질문: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떨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