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삽시다! / 갈라디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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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G 내가 매일 기쁘게
G 나의 죄를 씻기는
G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 회개와 성령충만을 위한 기도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깨어 기도하고, 사랑과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찬송이 되도록
•정결한 마음과 회개의 영을 더하여 주사 깨어짐의 역사로 은혜가 가득 넘치도록
G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G 하늘의 문을 여소서
* 예배를 위한 기도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모든 성도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도록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결단하며, 진실한 예배자로 견고하게 세워지도록
성령을 따라 삽시다! / 갈라디아 5:16~18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받거든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기도하기 시작한 지 10일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이나 믿고 의지하고 따라다녔던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주변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강퍅한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예수를 따라다녔던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면 자기들도 스승 예수님처럼 잡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방문을 꼭 잠가두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도하기 시작한 지 10일 만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불의 혀같이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더 이상 문을 걸어 잠근 채 방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성령을 체험하고 나니까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새 힘을 얻고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꼭꼭 잠가 두었던 다락방 문을 열고 힘차게 뛰어 나갔습니다. 이제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전의 나약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새 힘으로 그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과 성령께서 주시는 새 힘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와 함께 계속되었고,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성령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람들 안에 거하시면서 새창조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 - 성령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마음에 품은 사람을 일컬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赦)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구주’시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걸 믿으시면 여러분 안에는 성령이 거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구주라 시인하며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12:3)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예수는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구세주이며 예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주어지고, 그 선물로 주어진 성령을 받은 사람이 곧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느냐, 아니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힘써야 할 것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먼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삶에도 어떤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을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에 기준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양심에 꺼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덕이나 윤리에 기준을 두고 살아갑니다. 법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정의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법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은 법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정의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의를 행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합니다. 불의를 보면 불의에 항거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의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에만 기준을 두고 살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에게도 그런 기준이 필요합니다. 양심도 필요하고 도덕이나 법도 필요합니다. 정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고 그 성령이 우리 삶에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따라 사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윤리나 도덕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령에 기준을 두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을 우리는 ‘신앙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신앙의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에 기준을 두고 산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곧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분의 뜻대로 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 영과 더불어 기뻐하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발견하여 그 뜻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두번째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는데, 보혜사라는 말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인도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인도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영적인 소경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성령이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빌립은 한참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며 능력을 나타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광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 빌립은 ‘하나님 지금 여기 사람 많은 사마리아에서 복음 전하기도 바쁜데 왜 광야로 가라고 하십니까’ 그러면서 안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광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만드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을 따라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살아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를 위해서 사는 것일 뿐,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은 곧 내 마음대로 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육체의 열매만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말씀합니다. 함께 17절을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육체의 소욕대로 살 것이냐?’ 만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육체의 욕심을 거부할 수 있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을 따라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내게 그런 능력이나 지식이 없어서 못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지위나 환경이 뒷받침 되어주지 못해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의 무능력을 능력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적인 생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불가능했던 것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한 무식쟁이 베드로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고, 그의 말씀을 통해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말주변으로 그런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우리에게 돈이 없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혹 건강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 성령의 힘을 의지해서 가니까 기적이 나타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거대한 제국 애굽에서 구원해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모세는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이미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너무 늙었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볼품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왜소하게 보일지라도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가면 거기에 능력이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봉사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기쁨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귀신이나 술에 지배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살고, 성령의 조종을 받으며 살고, 성령께서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충만한 삶,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니다. 성령충만한 삶 -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 때 우리에게 영적인 기쁨, 참된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신앙의 능력, 영적인 기쁨은 하나님께 완전히 지배받는 삶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길을 가다가 경치 좋은 곳에 참 예쁘게 지어놓은 집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참 아름답게 지어놓은 집을 보면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할까?’
아름답게 지은 집에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집을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놓았느냐 하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집의 아름다움은 건물의 아름다움보다 그 집에 사는 사람 때문에 아름답기도 하고 유명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예쁘게 지어놓은 새집이라 하더라도 그 집에 강도가 살면 ‘강도의 집’이 되고, 범죄자가 살면 그 집은 ‘범죄자의 집’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라한 집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훌륭한 사람이 살면 그 집은 ‘좋은 사람의 집’입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이 없고, 아름답게 치장하지 못하고 좋은 옷은 못 입었다 하더라도,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 우리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생기고 잘 꾸며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은 볼품없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귀한 존재, 그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에 늘 성령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셔서 여러분의 생애가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C 주가 일하시네
교회를 위한 기도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옵시며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구역회(29일) 가운데 성령의 기름부음 있도록
•영아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세워나갈 수 있도록
•어지러운 국내 정세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지혜의 영이 더하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