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7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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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30차 하임캠프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아마 지금 여기에는 하늘고 학생들이 주로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하늘고 친구들이 방학을 일찍하다보니 오랫동안 보지를 못했었는데, 이자리에서 또 만나니까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자. 이제 오늘로서 30차 하임캠프가 시작을 하게 될텐데요, 우리 캠프가 벌써 30번째가 되었다니, 참 여러모로 뜻깊고 또 감사한 캠프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번 30차 캠프의 주제가 뭐죠? 그렇습니다. 보라 새 일을 행하시리니. 이사야서 말씀이죠.
여러분들 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보러 오신거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 우리가 어떤 것을 보려고 해도 알아야 본다는겁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있죠. 그런 것처럼 우리가 주님이 행하실 새 일을 바라볼 때, 그냥 무작정 아무데나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하냐, 말씀을 통해서 알아 볼 수가 있겠죠.
특별히 이번 본문 말씀이 어디라고 했었죠? 이사야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이사야서에 대한 간단한 내용들을 알아보고 가면 좋겠죠? 그래서 이번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이사야서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고,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리키고 계신지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1절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이사야서는 장르로 따지자면, 선지서, 예언서에 속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무언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일들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그런데 그 대상이 1절에 나오죠? 바로 유다와 이스라엘입니다. 이사야가 사역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나라는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었죠. 그런데, 그 두 나라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예언이니까 어떤거겠어요? 나라가 끝에 어떻게 될거다 라는 말씀이겠죠.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에 어떤 말씀을 주실까요?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니까 복이 내린다는 말씀인걸까요?
그 말씀은 바로 앞장을 펼치면 나타납니다. 바로 1장의 말씀인데요, 성경책 가져오신 분들은 한번 주욱 눈으로 보시면 어떤 내용의 예언이 나타나는지를 알 수가 있을 거에요. 어떤거죠?
맞습니다.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죄를 행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심판하겠다라는 그러한 내용이에요.
그렇습니다. 이사야서의 전반적인 내용이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이 두 나라 모두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죄를 범했다. 그러니 내가 너희를 심판하여 나의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보이겠다. 라는 말씀인거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이 너무나도 놀랍게 느껴졌을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이 무엇이냐, 바로 다윗의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나라의 왕위를 영원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었죠.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왜냐면 자신들의 왕이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서 하는 얘기가 어떤거에요? 나라 망한다! 라는 이야기니까,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그러실 분이 아냐! 분명 우리나라 지켜주실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이사야를 핍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죠. 그들은 다윗의 언약에서 전제조건이 있었음을 잊어버린거에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잘 따르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 전제조건은 잊어버리고 그냥 형식적인 다윗의 왕위만 지켜지면 모든 게 괜찮을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어떻게 됐겠어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예언의 말씀대로 멸망하고 말았죠.
그렇게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남유다도 망하면서 예루살렘이 황폐화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음을, 자신들이 언약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게 되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면서 이제 하나님과 자신들이 이전과 같이 온전한 관계로 있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슬퍼합니다. 그 마음이 시편 백삼십칠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언약은 온전하게 지켜지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언약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언약을 준비하신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 언약을 통해 그의 백성들을 회복시키고자 계획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계획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타난 내용인 것이죠.
2절 말씀부터 볼까요?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일은 무엇이냐, 말은 한자로 하면 끝 말 이겠죠? 다시 말하면 마지막 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선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산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장소도 산이었고,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에도 산에 임하셨고,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하셨던 것도 산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거하시는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선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겠어요? 하나님의 임재가 어느 한 지점의 산 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국토에 임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민족들 가운데 나타나시며 그 주변 나라들 가운데 임하셨다면, 이제는 모든 나라와 민족 가운데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산으로 만방이 그리고 모여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백성들과 민족들이 주님이 임재하는 그곳으로 모이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임하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보기 위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날이 임하시는 그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계획을 펼치시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아옴도 누가 억지로 잡아 끌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가르쳐주신다는 것이고, 그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그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과 시온으로부터 나온 말씀과 율법을 듣고 하나님은 모든 열방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무리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나라가 다시는 서로 칼을 들고 치지 않으며, 다시는 전쟁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나오는 보습과 낫은 농사에 쓰이는 기구들이죠. 군사무기를 쳐서 농사기구를 만든다는 것은 이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새롭게 계획하시는 새로운 언약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이며, 하나님은 그 말씀을 가르치시며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하여 판단하실 것이고, 끝내는 모든 나라와 민족이 전쟁하거나 분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에게 이 말씀은 아주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회복은 자신들의 나라와 민족의 회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 즉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라는 것을 들어보았을거에요. 그들은 성경시대로부터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라고 여기며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들만을 향한 것이라고 여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회복은 결국 자신들의 나라 회복이며, 그 나라는 이전의 다윗의 나라와 같은 강력한 제국을 형성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은 어떤 것이에요?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함께 하나님의 전에 간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들도 구약성경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산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앞서 언급했던 모세의 경우도, 하나님을 가까이 마주하는 것이었기에 아무나 올라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오로지 모세만이 시내산으로 올라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 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거룩한 모습으로 모세, 엘리야와 대화하실 때, 그 거룩함으로 인해 다가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산이라는 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곳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들어가지 못하고, 오로지 택함받은 거룩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만방이, 많은 백성이 다함께 여호와의 산에, 여호와의 전에 이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말씀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을거에요.
그런데다가 4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죠? 칼과 창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고, 앞으로 전쟁이 없을거래요. 이또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았을겁니다.
여러분, 구약의 말씀에서 이방인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무찔러야 할 존재입니다. 여호수아와 사사기만 보아도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진멸되어야 할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진멸해야 할 이방인을 받아들이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무찔러야 할 무기는 사라지고 전쟁또한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복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러한 말씀을 주시고, 왜 이렇게 멸망하라고 하셨던 이방 민족들까지 껴안으시고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나님의 전까지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 이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을까요? 그들을 택하시고 어디에 쓰시려고 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것은 그저 유대인들만 데리고 그들과만 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뭘로 삼으시냐, 제사장 나라로 삼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뭔가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고 있죠. 그런데 그 예배가 제사장 혼자만을 위한 예배인가요? 아니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대표해서 제사장이 행하게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인도하시며 모든 일들을 이루신 것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하나님이 위대하시고 선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신 것을 이 세상 속에 드러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또 다른 믿는 자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 성경 곳곳을 찾아보면 하나님은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도 택하여 일하십니다. 여리고성에 있던 라합은 이방여인이었지만, 택함받아 여리고성 점령에 큰 역할을 하였죠. 룻은 아예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으로 쓰여졌습니다. 또 우리가 주일예배때 보았던 나아만도 이방인이지만 택함받아 주님의 일을 행했습니다.
이런 것처럼 주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 만들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모든 백성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결국에는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갈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인들이 말씀을 지키지 못했음에도, 아직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유대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를 찾고 있습니다. 그 강한 구원자가 나타나면 내나라 내민족을 중심으로 모든 세계를 재편할 계획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생각이 결국 어떤 결과를 이끌어낸거에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악의 길로 인도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 보통 어떤 생각을 가지죠? 에휴 저 유대인들.. 참 별로다 참 죄인들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겁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과연 우리가 그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있을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인거에요. 어쩌면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새 길을 알려주실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으로 여호와의 산을 오르는 백성들의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나아온 것이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캠프를 통해 어떤 것을 기대하고 계신가요? 혹여나 우리 가운데 이런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함께 보았던 유대인들의 모습처럼. 하나님은 나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셔야 해! 라는 생각.
그러한 생각으로 이번 캠프도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이런 모습으로 나를 이끌어주세요. 내가 앞으로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세요. 내가 저렇게 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다스려주세요. 이런 목표를 혹시나 가지고 오지는 않았나요?
만약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았잖아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유대인의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정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전쟁을 내려놓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하나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세상의 방식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칼을 더 날카롭게 갈아서 사용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 주님이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 가지도록 잘 갈아주세요. 그래야 제가 주님의 이름을 세상에 휘날릴 수 있죠.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의 방식대로 그것을 이루어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방법을 비웃고 그것을 뛰어넘어 더욱 놀랍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십니다.
오늘부터 시작될 우리의 30차 캠프의 자리가 바로 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셨다면요,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아니라 나 자신, 혹은 세상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다면, 나도 모르게 주님의 놀라우신 새일을 놓치게될지도 모릅니다.
오늘부터 시작될 2박3일의 캠프 자리에서 온전히 주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떻게 놀랍게 그 새 일을 보이실지, 그래서 어떻게 모든 이들을 그 자리에 인도하실지 함께 바라보면서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귀한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오직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