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15절 “하나님 나라, 우리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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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예배로 부름 Call to Worship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 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 름을 높이세(시34:1-3)
예배 기원 Invocation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2009년도를 마무리하는 송년 주일에 저희들이 성소로 찾아왔습니 다.
주님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입니다.
우리의 일생이 순식간에 다하여 가는 것을 느끼며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오
늘도 주님의 인자하심을 베풀 어 주셔서 예배하는 저희들 마음을 만족하게 하시고, 우리 일생을 즐겁고 평안한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 나라, 우리의 소망
한 천 설 (본지 편집인)
복음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 송년주일
[이미지]감정카드
[이미지]감정단어
지금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매우 혼돈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의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될 때마다 희망을 가져왔다.
변화를 기대했고, 과거 청산과 개혁도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 마지막은 늘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2024년에는 온 국민을 좌절과 절망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역시나’의 허무감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온갖 부정과 비리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사회는 혼란의 소용돌이 안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 땅의 나라와 이 세상의 권력에서는 우리의 소망을 찾기란 불가능해졌다.
이런 때에 과연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 것인가?
기독교 역사가 교훈하듯이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선포되길 갈망해야 한다.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
마가복음에서는 두 종류의 복음이 선포된다(1:1).
마가복음 1:1 (NKRV)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는 예수님에 관한 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이다.
전자는 예수님의 신분과 관련이 있다면, 후자는 하나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막 1:15),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눅 4:43).
누가복음 4:43 (NKRV)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그리고 부활 후 승천하실 때까지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다(행 1:3).
사도행전 1:3 (NKRV)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한마디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고 확장시키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을 세워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고, 로마에 있는 동안 두 해를 자기 셋집에 머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던 것이다(행 28:30–31).
사도행전 28:31 (NKRV)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은 예수님뿐 아니라 모든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예수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 나라
본문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장면이 나타난다(1:12–13절).
마가복음 1:12–13 (NKRV)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특이한 점은 마태(4:1–11)와 누가(4:1–13)는 광야 시험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반면에 마가는 이를 간략하게 기술하는데, 그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내용보다는 오히려 그 배경에 초점을 맞 춘다.
특히 13절의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의 표현은 낙원 모티브를 나타낸다.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낙원의 모티브(사 11:6–8; 35장; 겔 34:23–28)가 광야 시험에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사야 11:6–8 (NKRV)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는 시험의 장소인 광야가 예수님의 현존(現存)으로 인해 낙원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어렸을 때 불렀던 찬양의 모티브입니다”
[이미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 악보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낙원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찬양가사
낙원이란 첫 사람 아담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을 연상케 한다. 에덴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그곳에서 쫓겨났다.
반면 예수님은 성령께 이끌려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감당하신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대한 예수님의 철저한 순 종은 시험과 환난의 장소인 광야도 하나님 나라로 바뀔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광야는 들짐승의 위협이 있는 죽음의 땅이지만, 예수님은 들짐승들과 함께 계셔도 안전하시다. 무엇보다 사단이 시험하는 장소인 광야는 천사들이 수종을 드는 곳, 즉 요한계시록 4–5장에 예언되어 있는 천상의 예배의 장소를 연상케 한다. 결국 예수님이 계신 곳이 하나님 나라임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서 임한다.
마태복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특히 예수님의 5대 강화(산상수훈, 제자파송 설교, 천국비유, 교회 강화, 종말론 강화)를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모습과 미래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예수님의 치유사역과 귀신축출 사역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마 12:28).
마태복음 12:28 (NKRV)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현재 우리는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온 국민이 광야에서 혼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광야의 예수님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아담의 후손이었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불순종으로 인해 축복과 풍요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의 순종함으로 광야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셨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이 혼돈의 상황 속에서 주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하고, 철저한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목사님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안에 있어요.
그 나라에 대하여 나누고 싶어요.
“24년도 시상식에 오른 사람” /2분
아무것도 아닌 저를 살리신…
이 자리에 있기까지 저를 지켜주신…
아름다운 영혼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게 해주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기도에 응답해 주신하나님께…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누가복음 17:20–21 (NKRV)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 나라’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소망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소망과는 달리, 우리는 오늘도 시험과 좌절의 장소, 즉 환난의 장소인 풍랑의 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마가복음 4장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4:1–20, 26–32)에 이어, 예수님의 항해기사(4:35–41)가 나온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마가복음에서 밤은 종말의 시간으로, 바다는 수난의 장소로 묘사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간에 혼란의 장소로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 구약에서도 바다와 풍랑은 죽음의 모습을 상징하며,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묘사된다(욥 7:12; 시 74:13; 89:8–9; 95:3–4 등).
마가복음 역시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이는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을 통치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항해기사에 나타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은 완전히 상반된다. 제자들은 풍랑을 바라보며 죽음에 직면해 있는 자신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원망이 가득한 소리로 부르짖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풍랑이 이는 바다 가운데서도 고요히 주무시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주무신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의 땅 광야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신 예수님께서 계신 곳은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비록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일지라도 예수님께서 그 배 안에 계시기에 그곳은 더 이상 환난과 수난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믿고 누릴 수 있어야 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배 안의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환경과 상황 가운데 빠져 계속 허둥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못하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 나라, 우리의 소망
항해기사 가운데서, 예수님은 죽음에 직면한 제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4–15)고 선언하셨다.
마가복음 1:15 (NKRV)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선결조건은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풍랑의 한가운데 서 있는 제자들에게 요구되었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제자들에게 마침내 험난했던 풍랑이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오늘도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제자들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보내며 새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환난의 폭풍 한가운데 빠져 구출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역시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도 풍랑이 이는 바다를 항해 중이다. 이 환난 가운데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은 이 땅과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이 세상의 풍랑은 언제든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랑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이 땅 가운데 이루어져갈 것이며 우리는 그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 리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나라는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나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라에 가기 전, 이 세상을 살아가며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이 땅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다.
새로이 맞이할 2025년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더욱 풍성히 임하여서,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바르게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더욱 확장해가는 큰 희망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찬438장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