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헌신의 능력

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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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직전,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의 영광에 눈이 멀어 영적 맹인과 다름없었다. 반면, 앞 못 보는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영적 눈을 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제자들에게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준비시키셨다.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은 미약한 존재에게도 능력을 주시어 당신의 일에 사용하신다. 나귀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는 말에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내어주었고, 이 작은 헌신으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우리도 가진 것은 작더라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과 사회 불의에 맞서는 정의 구현을 모두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소유나 능력이 아닌, 믿음과 순종이다. 2024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하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Notes
Transcript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 11장 1절에서 11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흔히 '종려 주일'로 불리는 그 유명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절기가 아니기에 더욱 묵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될 정도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 바로 전에 어떤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영적 맹인과 눈 뜬 자의 대조
지난 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십자가 고난이라는 심오한 주제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제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섬김, 낮아짐의 영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고, 다른 제자들 역시 그들을 시기하며 권력 다툼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세상의 영광과 권세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가치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영적인 맹인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영적 무지와 대비를 이루는 사건이 바로 지난주 본문인 마가복음 10장 46-52절에 기록된,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 바디매오의 치유 기사입니다.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 외침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던 대적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짐을 보여준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샬롬, 즉 완전한 평화를 가져오실 왕이시자, 자신의 영적, 육체적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영적인 눈은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길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세상은 힘과 권력, 높은 지위를 추구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낮아짐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바디매오는 세상적으로는 보잘것없는 거지에 불과했지만,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영적인 눈을 떠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은 27km 정도로, 걸어서 약 6시간이면 도착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 중 둘에게 맞은 편 마을로 들어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지시를 보면 이상하게 여겨질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도 아시고는, 그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까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준비된 나귀가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발걸음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우연이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놀라운 기적과 순종
이 본문을 누가복음을 보면, 이 사건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눅 19:30-33)
누가복음은 나귀 새끼가 "아무도 타 보지 않은" 것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누군가 길을 걷다 문득 집 앞에 나귀가 묶여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는 그 주인의 허락도 없이 그 나귀를 풀어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절도 사건으로 경찰에 신고될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나귀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순종의 발걸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힘 없는 짐승, 하나님의 도구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그것도 나귀 '새끼'는 사람을 태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나귀가 어떻게 사람을 태울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태우고 말입니다. 이것은 나귀의 힘이 아닌, 주님께서 그 나귀에게 주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나귀는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짐승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새끼 나귀’는 더욱 주목할 만한 선택이었습니다. 힘세고 튼튼한 말이 아니라, 연약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새끼 나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힘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부족한 것을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힘센 말이 아니라, 연약한 새끼 나귀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주저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당신의 강함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헌신, 큰 순종
그리고 나귀를 풀어 끌고 온 제자들의 순종도 놀랍지만, 저는 그 나귀의 주인이 더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선뜻 자신의 귀한 재산을 내어준 것입니다. 나귀 주인 역시 주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지만, "주가 쓰시겠다"는 그 한 마디에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내어드렸습니다. 이 주인의 작은 헌신이 있었기에, 스가랴서 9장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힘센 말이 아닌 초라한 나귀 새끼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귀는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작은 헌신을 통해 주님께 드려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작고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미약해서 드릴 수 있고, 미약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 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나 엄청난 재산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그 마음, 그 작은 헌신을 보십니다. "주가 쓰시겠다"는 그 말씀에 기꺼이 나귀를 내어놓은 이름 없는 주인처럼,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귀 - 거부할 능력은 있음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믿음대로 된 후에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를 향한 헌신
2024년 마지막 주일을 맞아, 다가오는 2025년에는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 주님의 큰 일들을 감당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나귀를 내어준 이름 없는 주인의 작은 헌신, 그리고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은 후, 믿음대로 된 후에 예수님을 따른 바디매오의 간절함을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차별에 맞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에도 우리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아모스 5장 24절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어둠과 불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능, 우리의 물질, 그 무엇이든 주님께 드릴 때, 그 작은 헌신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돕는 것,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작은 헌신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제 소유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는 믿음과 순종, 그것이 핵심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 주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나고,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도리어 주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이 모여 큰 기적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드립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리고 새해를 소망하며,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나의 작은 헌신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깨닫고 거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그 답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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