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장의 여덟가지 덕목 / 베드로후서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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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성장의 여덟가지 덕목 / 베드로후서 1:3~11
오늘 본문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여덟 가지의 덕목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치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와 같이 신앙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여덟 가지의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 귀중한 말씀인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금방 밥을 먹고 뛰어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단계와 과정을 통해서 점점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유를 먹고, 죽을 먹다가 밥을 먹습니다. 처음에는 기어다니지만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우고, 나중에는 뛰어 다닙니다(눅2:40). 갓난아이에서 어린아이로,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청년으로 장년으로 성장해 갑니다(요일2:12~14).
영적인 법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한번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경건한 삶과 인격을 지니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딤후2:4~6).
이러한 믿음의 성장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절과 10절에 보면 '더욱 힘써' 라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베드로후서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 4:15절에서 디모데전서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성장이 없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날로 날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매우 축복 받은 존재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이러한 보배로운 믿음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고 했습니다.
3절에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고, 4절에서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것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놀라운 축복이다" 그랬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 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죄로 인하여 부패한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받아야 되는 존재요, 마귀의 자녀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딤후3:8. 엡2:3).
그런데, 이러한 우리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덟 가지의 덕목이 바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다른 각도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3:12절에서는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13:14절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에베소서 4:24절에서 "새사람을 입으라!" 고 말씀하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그의 부모를 닮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와 복을 헛되이 받지 아니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된 우리들은 매우 특별한 존재입니다. 전에는 마귀의 자녀요 심판받아 멸망 받을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이요, 축복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눅20:36, 갈4:9, 엡2:13, 5:8, 벧전2:10).
이러한 축복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많거나,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우리가 소유할 수 있습니다(벧전1:18~19). 그러기에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신앙생활이 다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신앙의 성숙함이 있어야 되고, 성화되어 가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7절에 보면,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여덟 가지 덕목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고 했습니다.
이 여덟가지 덕목은 신앙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져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귀한 진리를 깨닫고 우리 모두 아름다운 신앙으로 성장해 나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신앙의 기초 - 믿음(5절)
신앙성장의 여덟 가지 덕목 중에서 그 첫 번째 단계는 믿음입니다(히11:1~2). 성도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살후2:13, 요1:12, 히11:6).
마태복음 13:44절 이하에 보면, 주님은 이 믿음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은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살만한... 매우 보배로운 것이라는 비유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 믿음을 설명하는 놀라운 법칙들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비밀의 법칙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숨기워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성과 교만성 때문에 이 놀라운 구원의 사건이.. 영적인 눈이 가리운 자들에게는 비밀처럼 감추어졌다는 것입니다(고전1:18, 고전1:23~24).
두 번째는 계시의 법칙입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 놀라운 진리인 것입니다(사43:1).
세 번째는 소유의 법칙입니다.
농부는 발견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소유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기독교 진리에 대하여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믿음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마11:12).
네 번째는 댓가의 법칙입니다.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기로 작정하고, 내 생명과 나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마6:24).
다섯 째는 포기의 법칙입니다.
영생을 위하여 순간을 버릴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이기심을 버리고, 더 좋은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마6:33).
여섯 번째는 신속의 법칙입니다.
망설이거나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왕상18:21). 구원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였다면 보배로운 것이 믿음인 줄 알았다면 그것을 즉시 붙잡아야 합니다(수24:15).
일곱 번째는 만족의 법칙입니다.
가진 소유를 다 팔아 샀으니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고 지극히 만족한 것입니다. 너무 너무 귀해서 다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것과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합3:17~18).
그래서 찬송가 94장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명예와, 행복과)
영 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믿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2. 믿음에 덕(德)을(5절)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덕목으로서 믿음에 덕을 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 위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딤전3:9).
여기서 '덕' 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볼 때, 나무랄 데가 없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덕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3:9절 말씀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9절에도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교회는 다니는 것 같은데 믿음은 있는 것 같은데 양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행24:16, 롬13:5). 장사나 사업을 해도 비양심적인 사람... 그런 사람은 결국 믿음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고전8:12).
에베소서 5:8~9절에도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고 했는데, 그리스도인은 어질고 착한 품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믿음과 덕은 마치 기차 레일과 같아서 어느 하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3. 덕에 지식을(5절)
세 번째로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진리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성도가 진리에 대해서 무식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잘 모릅니다.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방향을 잘 잡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보고, 판단하고, 이해하고, 식별할 수 있는 성경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충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 "알아야 면장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 수 있고, 그 말씀을 따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롬12:2). 그래서 모든 공예배에 열심히 참여해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자꾸만 읽고 외우고 암송해서 말씀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행17:11).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라고 했습니다(요1:1~5). 우리의 인생 길을 비취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칠흙과 같이 캄캄한 밤길을 혼자 다니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나 큰 헤트라이트를 밝히 비추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바로 어두움을 밝히는 빛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어두운 우리의 인생길에 분별력을 줍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우리에게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하나님의 지식, 말씀의 지식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지식에 절제를(6절)
네 번째로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고전10:23).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도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탈수가 없습니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운전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이 브레이크를 밟습니까? 빨리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서야할 때 즉시 서야합니다. 안그러면 대형 사고가 나고 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신앙이 좋고, 칭찬을 받는 성도라 할지라도 절제할 능력이 없으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교통사고처럼 자신은 물론이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게 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욕망이나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도 절제되어야 합니다(고전9:25, 갈5:22~23).
잠언 16:32절 말씀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 자기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자 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5. 절제에 인내를(6)
다섯 번째로 성도는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합니다. 여기서 인내는 '굳게 버티는 지구력' 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쉽게 불평하고 원망을 터뜨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참기 힘든 어려운 일 앞에서도 십자가를 지고 침묵과 순종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환난이 인내를 가져다 준다고 했습니다(롬5:3~4).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환난을 겪은 성도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 인내입니다. 그래서 대개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 오래참고 인내할 줄 압니다.
요한계시록 14:12절 말씀에 보면,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고 했습니다. 믿음의 인내는 결국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는 영광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12절에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하는 힘은 바로 인내의 힘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급을 받고 면류관을 받는 사람 영생의 복을 받는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눅21:19). 인내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딤전6:11~12).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어떤 환경이나 여건이 닥쳐도 부단히 인내하므로 마침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며, 승리의 반열에 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인내에 경건을(6)
여섯 번째로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건(godliness)' 이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 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 는 말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누워도 하나님이요, 일어서도 하나님이요, 앉아도, 서도... 무엇을 먹어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걸어도 하나님이요, 뛰어도 하나님이요, 넘어져도 하나님입니다. 올라가도 하나님이요, 내려가도 하나님, 성공해도 하나님, 실패해도 하나님입니다. 그는 목에까지 하나님으로 가득차서 조금만 누르면 하나님이란 말이 입에서 술술술술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붓을 들면 그 첫마디가 "여호와는...." 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요,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라!" 그랬습니다(시18:2). 그저 붓만 들면 여호와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敬虔)' 이요, 이는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거룩한 행실'(벧후3:11)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구별된 행실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0:2절에 보면, 고넬료라는 로마의 백부장을 가르켜 '경건한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고넬료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행10:2).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믿음의 권속들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딤전4:8).
7. 경건에 형제우애를(7)
일곱 번째로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범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무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볼 때, 내 마음속에 미움의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경건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20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서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3:10).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3:34-35절 말씀에서 주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무슨 뜻입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형제를 사랑할 것인지 마음속에 계획하고, 다짐하고,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런 성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옛성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편에 보면, 형제 사랑에 대한 찬양과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곧 영생이로다" 했습니다(시133:1-3).
형제 연합의 아름다움을 대제사장의 수염에 흐르는 향유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이는 지극한 아름다움과 향내를 나타내는 최상의 비유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제의 연합과 동거와 사랑의 아름다움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둘째로 형제 연합의 아름다움을 헐몬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 산에는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때에는 헐몬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서 이스라엘 평원을 적십니다. 그리고 그 헐몬산에는 항상 풍족한 이슬이 내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할 때 헐몬산의 이슬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건기의 막바지 시월 아침에 일찍 성소를 향해 오르면서 시온의 낮은 언덕마다 이슬이 내려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이슬이 헐몬산에 내린 풍족한 이슬의 영향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이슬 때문에 온 대자연이 건기 때에도 생명의 신선함과 왕성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름이 흘러 내리는 것이 보이는 축복이라면, 이슬이 내리는 것은 밤중에 조용히 내리는 보이지 않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조용히 내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내리는 축복은 소란하지 않습니다. 잔잔한 축복입니다. 새벽에 몰래 내린 이슬과 같이 주님의 축복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내려 넉넉하게 적시는 축복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거기서부터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셨는데, 곧 영생의 복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 이는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형제가 연합하여 서로 사랑하므로 천국에 다 들어가고, 영생의 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전4:9~12).
8. 형제우애에 사랑을(7)
마지막 여덟 번째로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계명중에 어떤 것이 제일 큰 계명입니까?" 하고 질문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율법의 강령이요 완성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마22:36~40).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품성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충만하고, 그 사랑이 흐르고 흘러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그런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바로 이 사랑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이런 여덟 가지 신앙의 덕목을 가진 자에게는 풍성한 영적인 열매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여덟 가지 덕목이 없는 사람은 9절에 보니까, 소경이 된다고 했습니다. 원시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즉, 멀리 볼 수 없는 소경이 되어서 하늘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에 것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덕목을 가진 자는 멀리 바라봅니다. 금생은 물론이요 내세의 영광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이 있기 때문에 분명한 소망이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실족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인격자들은 무슨 일을 만나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천국에 들어가는 영생의 복을 말합니다(벧후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은 앞세우면서도 덕도, 지식도, 절제도 없습니다. 믿음은 있는 것 같지만 인내도 없고, 경건도 없고, 형제우애나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샘물교회에 속한 모든 권속들은 신앙 성장의 여덟 가지 덕목들을 다 소유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