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고난들 중에 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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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3:1–3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 힘든 상황들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여러 환난’이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환난은 고난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여러 환난이라는 말에서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가 무슨 어려운 일들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보통 교회 전체가 겪는 어려움이 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 고난들 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유대교와 로마 둘다에게 부정적인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메시아라는 뜻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이 땅을 심판하고 구원하실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그 메시아는 이 세상 전체를 심판할 권한과 권능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왕들보다 더 높은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동시에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황제를 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예수를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예수를 동시에 주로 여겼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통치하는 로마입장에서 보면 황제를 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면 속국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황제가 주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주가 된다면 로마의 통치아래에 들어가지 않게 되는 것이죠. 황제의 통치를 따르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는 황제 외에 다른 누군가가 주가 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신성을 모욕해서 자기들 손으로 죽인 예수를 메시아와 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부정한 예수를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아로 여기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죠. 당시 로마의 속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 아래서 유대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로마의 허가를 받고 있었고, 로마로부터 유대교인으로 살아갈 때 상당히 유리한 베네핏들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라는 종교활동 하는 것을 로마로부터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고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유대교를 인정하고 보호해주었던 것은 사회적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던, 예수를 주와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 상황과,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도 로마로부터 합법적으로 보호를 받게 되면, 유대교 입장에서는 이단이 합법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싹이 피지 않도록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임을 방해하고 헤쳐놔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불량배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과 그 일행을 잡아서 로마의 법정에 기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어서 바울과 일행들은 데살로니가를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이런 내용은 사도행전 17 장에 잘 나와있습니다. 바울과 일행들은 데살로니가에서 피신할 수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대로 남겨졌었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서로 모여서 주인이신 예수를 따르려고 하는데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방해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는 사회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있고, 사회 질서를 않을거라는 불신속에서 겪게 되는 불이익과 사회적 지탄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회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낮은 윤리와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종교라고 한다면 그들이 설파하는 말들은 더이상 세상이 듣고 싶어지 않는 말들이 될 것이고, 그 말들이 설령 그 종교가 믿고 있는 진리라고 한들, 세상 사람들은 진리가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 종교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분명 이런 고난들 속에 있었습니다.
본문 3절에서는 여러 환난 곧 여러 고난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아마도 방금 언급한 고난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고난들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가 겪고 있었던 고난들이 어떤 종류의 것들이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데살로니가는 여러 고난들 가운데 힘들어하고 있었고, 바울은 그런 데살로니가 교회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여러 고난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디모데를 보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2–3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가 어떠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 있는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말미에 바울은 자신과 일행이 이런 고난을 위해서 세움을 받았다고, 자신들이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일행들도 바울처럼 이렇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어떻게 도울까 바울의 팀은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모았기 때문에 바울의 팀은 디모데가 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고, 실제로 데살로니가로 가서 교회를 도우려했던 디모데도 바울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로 자기가 가게 되는 것을 수용했다는 것이죠.
데살로니가 교회가 겪었던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고난은 차치하고서라도 교회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에 대해서 바울과 바울의 일행은 교회 전체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가지고 실제로 교회를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오늘 우리는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과 실제로 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한 몸인 공동체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분명히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속하게 된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한 몸으로써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에베소서에서 말씀합니다. 몸의 일부에 어떤 문제들이 생기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몸이 아프니 고통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몸 전체가 움직이는 것 또한 당연한 이야기겠죠. 바울은 비록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교회가 겪고 있는 여러 고난들에게 대해서 계속 인지를 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과 일행들은 어떻게 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까를 생각하고, 교회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한 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의 종교적 욕구를 소비하기 위해서 출석하고 다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함께 속하게 된 새로운 공동체이고, 성도들은 하나인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적인 생각과 공동체적인 마음을 가지고 공동체적인 사랑을 하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공동체성이 사라지게 된다면 성도들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어려움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됩니다. 더욱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함께 해결하고 함께 도울까를 생각하지도 않게 됩니다.
교회는 한 몸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라가야 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몸의 지체들에 대해 진심어린 걱정과 염려를 할 수 있도록 자라가야 하며, 실질적으로 몸의 일부의 문제를 어떻게 도울까를 몸 전체가 해결하려고 하는 공동체로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공동체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다른 맛을 내고 다른 맛이 있다고 보여주는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고, 진심으로 교회를 걱정을 했기 때문에 여러 고난들 가운데 힘들어하고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해 디모데를 보냄으로 교회를 실질적으로 돕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도 없고, 흉내낼 수도 없고, 같은 맛을 낼 수도 없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성도들이 겪고 있는 어려 고난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여러 고난들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의 일부가 아플 때 그 아픔들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교회되시기를 바랍니다. 몸의 아픔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 몸의 지체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덜어주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도와가시는 교회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몸으로써 한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세상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을 진하게 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이들의 믿음의 고백위에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신 줄 믿습니다. 새로운 한 몸인 공동체에 주의 자녀들이 속하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이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익히게 하시고, 몸의 일부인 주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여러 고난들을 볼 때, 함께 도우며 함께 위로하고 함께 격려하는 사랑의 공동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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