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으로 마무리하고 시작하기 2024 1229 민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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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1–13 (NKRV)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축복은 우리의 불편함과 불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축복은 우리의 불편함과 불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출애굽->광야->가나안 여정을 계획하셨다.
광야 1세대가 죽어간다.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미리암 역시 죽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겁을 먹은 것 같다. 자신들 중에서도 출애굽한 광야 1세대 형제들이 죽고 있기 때문. 그리고 출애굽의 큰 기적과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한 광야 출신 세대들은 이 광야가 나쁘게만 느껴진다.
5절
민수기 20:5 (NKRV)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파종할 곳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마실 물도 없다. 가는 도중이니까 없지! 아직 가나안 땅에 도착을 못했으니까 그렇지. 아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우리의 환경이 여전히 고통처럼 느껴지는 것.
그런데 따지고 보면 누가 지금 이 행진을 늦추고 있는가? 누가 광야생활이 계속 이어지게 만들고 있는가? 누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고 있는가?
바로 자신들이지 않는가. 자신들의 불신이 이 광야생활을 늘리고 있다. 광야에서 충분히 하나님의 가르침과 애굽백성이 아닌 하나님 백성으로 다시 거듭나는 시간인 광야의 시간을 끝까지 인내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건은 하나님이 갑자기 내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곳까지 나아가는데, 백성들 자신들이 견디지 못해서 행진을 자꾸 더디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광야의 타는듯한 더위와 그 험악한 환경이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 하나님은 그들의 옷이, 신발이 하나도 해어지지 않게 하고 가나안 땅으로 입성시키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데도, 하나님을 믿어드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때로는 진짜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민수기에서 등장하는 반역, 불평의 반복이 주기적으로 일관되게 지속되며 쉬지 않고 일어나는 모습이 실상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의 축복은 우리의 불편함과 불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지금까지 우리가 성경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 불만을 보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들어주고 계심을 보았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아, 하나님께 떼를 쓰면, 어쨌든 하나님이 들어주시는구나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어제끼고 떼를 쓰면,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들어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지금 그 아이에게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이니까 안 들어주는 것이었는데, 떼 쓰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게 된다. 그러면 그것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 부작용은 누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가? 아이가… 내게 좋은 것인 줄 알고 떼를 쓰고 받았는데, 실상은 그것이 나에게 부작용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도 광야를 여전히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백프로 신뢰하지 못하고, 떼를 쓴다. 그래서 자신들의 불편함, 불만을 통해 하나님께 기적을 바라고 축복을 바라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만나와 메추라기. 먹을게 없다. 고기가 먹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기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그 욕심의 결과로 그들에게 재앙이 함께 있었다.
민수기 11:33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혹자는 이 큰 재앙을 갑작스럽게 고기를 많이 섭취함으로 일어난 식중독이나 기타 질병, 혹은 하나님께서 징계로 내리신 역병 등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원함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는 했지만, 그것은 축복이 축복이 아니었다. 만나가 지겹다고 고기 욕심을 내고 배부른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이 유익한 것만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므리바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우리는 또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걱정스러운 눈길로 본문을 읽어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이후 본문인 27절이하에서 아론 역시 호르산에서 죽고 만다. 20장 안에 지도자 두 사람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2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이 세 사람 모두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음을 한 장면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라고 밝히셨다.
민수기 20:12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믿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이 14장의 정탐꾼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민수기 14:11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이 믿는다라는 히브리어 말이 아만(אמן)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아멘이다. 이 믿지 않아서 발생된 결과는 14장, 20장 동일하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스스로 지키고 계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하게 믿지 못하고 못들어갈 것을 걱정했고, 모세와 아론의 행동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자신을 믿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아멘 할 때는 진정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아멘해야 한다. 우리의 아멘이 단순히 공중에 흩어지는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백퍼센트 믿고, 순종하겠음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불편함과 불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되는 축복을 아멘으로 반응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한다.
2024년을 아멘으로 마무리하고, 2025년을 아멘으로 시작하자.
결단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