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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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13)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1-2 성도에게 확인) 네 감사합니다. 저와 마음이 통했군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유독 눈에 띠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권세」입니다. 요즘 우리 현실을 보면 「권세가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정치적으로 ‘누가 잘했다 못했다, 내가 누구의 편이다’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권세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민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지지하는 사람에게 투표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권세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정당하게 국민을 위해 사용돼야 계속 지지합니다.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말합니다. 짧은 두절의 말씀에서 그 권세의 성격과 그 권세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말합니다.
우선, 하나님 자녀의 권세의 성격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고 바로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원자로“영접한 자”(12a)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자”(12b)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12c)고 선언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福) 받아요’ ‘예수 믿으면 돈 많이 벌어요...건강해요... 출세해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福) 주시는 분입니다. 돈도 건강도 출세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본질이 아니고, 보너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받게 되는 본질적인 복(福)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것입니다.
그래서 “영접한 자”(12a)라는 말과 “그의 이름을 믿는 자”(12b)라는 말은 「예수를 주님과 구원자로」 맞아드림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예수와 함께 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치, 결혼할 때 남편은 아내를 맞아들이고 아내는 남편을 맞아들여서 가족이 되는 것처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가족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도 역시 관계입니다. 그런데 육적인 관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됨으로(10) 열리는 영적 관계입니다. 요 1:10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태초부터 계시면서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건만,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여,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의 자녀’라 꾸짖으셨습니다(8:44).
그래서 자신들의 태생적인 신분만 믿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13上)
“혈통”은 ‘유대인과 같은 육체적 혈통’입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육정”은 직역하면 ‘몸의 의지’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생육법 혹은 본능에 따른 자연적 출생으로 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뜻”은 ‘남편(men 남성)의 의지’라는 의미로, 집안의 가장인 남편 혹은 가정의 주체인 부모의 뜻에 따라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을 한층 더 큰소리로 강조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3下)
우리 성경에는 “오직”이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 원문은 「ἀλλά 알라」입니다. 「알라」는 강한 반전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그러나」「도리어」라는 의미입니다.
문맥적으로 의역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혈통적으로 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신하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말합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고 말한 요한은,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강조합니다.
“알다”(10) “믿다”(12) “영접하다”(11, 12)는 관계적인 단어입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관계적인 단어 “낳다γεννάω겐나오”(13)를 사용합니다.
「겐나오」의 뜻은, 단순한 생산의 의미가 아닌 「~의 아버지가 되다」입니다.
부모-자녀의 친밀함 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는,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친밀한 아비자녀관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의 내용이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신 것도, 태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아브람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친밀한 관계를 일으키는 믿음은, 단순히 무엇인가 있다고 보는 「존재적 인식」이나, 그래! 그건 사실이야라고 인정하는 「지적 동의」를 넘어섭니다.
믿음은 「단순히 예수라는 분이 있었어!」하며 그분의 역사적 존재만을 믿거나, 「단순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래 좋은 말이야!」 하며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고, 예수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적 출생을 가져 오고, 이 영적 출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자리에 앉아 계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한 하나님이 가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내 혹은 남편 아니면 자녀가 잘 믿는 나와 상관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 20:28)라는 믿음의 고백이,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일어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제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요한은 「네가 하나님의 자녀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살라!」고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세를 그대로 가지고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요즘과 달리 성경이 기록되던 2천 년 전에는 아주 밀접했습니다. 부모의 지위는 곧 자식의 지위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 년 전에는 그랬습니다. 아비가 양반이면 자녀도 양반으로 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비가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자녀는 왕자 혹은 공주답게, 양반의 자녀는 양반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이 씌여지던 당시의 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곧 권세였습니다.
요한은 믿음으로 얻게 된 성도의 정체성;“하나님의 자녀”를(=) “권세”라고 말합니다.
대통령과 국회위원과 시장의 권세는, 민주주의라는 법에 근거했을 지언정, 그 법의 권위가 사람들에게 있어서,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변덕스런 사람들의 눈치(여론)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법(法)이 준 권세이기 때문에, 영원하고 제한이 없습니다.
권세가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예전에는 대통령의 권세가 어땠습니까?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 뜨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 천안에서 사역할 때, 어느 굴다리 철교 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철교의 건설 비화가 대단했습니다.
故박정희 대통령의 지방 순시 때, 마침 지나가는 기차 때문에, 모든 차량이 멈춰서서 기다리게 되었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습니다. ‘여기 지하차도 있어야 겠다’
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멀쩡한 평지의 철길 아래로 굴을 뚫어서 굴다리를 만들었답니다.
이 「굴다리 철교 에피소드」는 「권세 ἐξουσία엑수시아」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설명합니다.
기본적으로 「권세」의 뜻은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당신의 뜻대로 행하실 수 있는 자유가 있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되어, 하나님의 능력과 자유를 가졌습니다.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죄책감과 죽음의 공포와 삶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 자유가 내 것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믿음과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그 다음 「권세」 보다 높은 사법기관이 허락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그 권세는 「하나님이 승인한 능력」 혹은 「권력 있는 지위」입니다.
직장 생활 하시죠? 남자분들 군대 다녀 오셨죠? 회장님이 싸인 한 걸 누가 막죠? 사단장님이 명령한 걸 누가 거역하죠? 그 권세는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제한적인 주권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는 우주 전체와 모든 역사를 아우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다스림의 일부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종종 이해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당황은 되겠지만 그때마다 선하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바로 알고,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다스림을 오해하거나 오용합니다.
건강하면 무조건 하나님 자녀의 복이라고 말하고, 자녀가 일류 대학에 들어가면 역시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고, 사업이 잘 풀리면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성도 개인은 물론이고 교회 조차도 돈 많으면, 그 돈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라 여기며 돈을 최고 신으로 모시며 삽니다. 돈이면 다 되니까요.
그런데 이것은 반대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혹여 건강 대학 사업이 잘못되고 돈을 잃어 버린다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도 날아가 버리는 꼴이 됩니다.
혹여 아프고 진로가 불투명하고 사업이 망하고 돈이 없어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박탈당한 것일까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특권으로 아플 때, 사업이 어려울 때, 대학 입시 때, 돈이 없을 때 기도 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우리 인생에서 보너스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원인과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파도 절망하지 않고 사업이 어려울 때 좌절하지 않고 대학 떨어져도 실망하지 않고 돈 없다고 불행히 여기지 않고,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으며 일어 서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권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믿음으로,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살아가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황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아버지의 독생자”(14a); 하나님이신 예수의 피 값으로 얻은 가장 “영광스럽고”(14b) 은혜로운(14c)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값진 “진리”(14d)를, 돈 건강 대학 사업 등과 같이 있다가도 없어질 인생의 보너스와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기는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 가족의 권세; 특권을 꼬-옥 붙들고, 현실이 불편하고 힘들어도, 성경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