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완성 (요한계시록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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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
유토피아라는 단어 다 한번씩 들어보셨죠?
토마스 모어라고 하는 영국의 카톨릭 인문주의자에 의해서 쓰였던 소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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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는 당시 영국의 사회 문제를 비판하며 이 소설을 씁니다.
당시 영국 사회의 고위급 관리들의 탐욕, 부패 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이에 맞서 공유재산제, 계층 간 평등, 효율적인 노동 분배, 민주적 정치, 종교적 관용이 있는 세계를 꿈꿉니다.
그것을 “유토피아”라고 하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적 국가’로서 당시 영국 사회가 변하길 바라는 마음에 강력한 비판을 가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상향에 유토피아를 많이 사용합니다.
토마스 모어는 어디까지나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 국가를 제시했을 뿐이지, 유토피아가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적 개념이 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이상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통치되는 이상 국가.
저는 이런 현상이 당연히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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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요? 왜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꿀까요?
저는 인간의 어떤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한한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이상적인 국가는 그 국가에 속한 국민들을 가장 안전하게 통치합니다.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고 소망하는 것은 그 어떤 사람도 항상 마음 속에 꿈꾸는 바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상 국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죠.
그래서 여러가지 반응을 보이죠. 포기하거나, 투쟁하거나, 연구하거나 등등
그런데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런 유토피아적 개념이 신학과 교회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2. 유토피아적 하나님 나라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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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바이어하우스라는 신학자는 『하나님 나라와 유토피아 오류』라는 책에서 강력하게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판합니다.
1960년대 소련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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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자들 중 ‘메시아적 마르크스주의’라는 학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 신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들을 자신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우리 이번 표어의 주제성구가 있죠?
그 부분 보면 초대교회에서 자신들의 소유물들을 교회로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는 ‘유무상통’이라고 하는 현상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것이 유토피아적 개념, 소유의 동등한 분배로 여기는 것이죠.
그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그들이 원하는 유토피아적 개념을 다 끌고 와서 자신들의 유토피아와 성경의 가르침을 합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크게 잘못된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 주 설교와 상당히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뭐냐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에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유토피아적 개념을 꿈꾸며, 그들의 사상이 옳다고 주장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이 땅에 적용될지라도 하나님 나라는 절대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인간의 사상과 설계에 의해서 잘 만들어진 나라가 하나님 나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에게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주권에 맡겨져 있으니까 우리는 전혀 알 수도 없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여러분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을 수 있잖아요. 무엇으로요?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래서 성경에 의존하여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은 극도로 박해받고 있던 ad90년경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서 쓴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리는 보통 한 가지 특징만을 강조해서 알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예언적 특징”이 있다는 것이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종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다루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묵시적 형식으로 쓴 편지입니다. 묵시적 형식이란 당시 쓰이던 신화적 상징을 활용하여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예언적이면서도, 현실적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게 되는 독자는 우리이기도 하지만 1차적으로 당시 박해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면서도, 아직 존재하는 죄와 악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받는 성도들에게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에 의해 쓰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곧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아직 아니에요.
그러나 확실하게 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때 그 나라를 완성시키실 것이라 약속하셨기 때문이죠.
오늘 말씀은 그 약속의 한 부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2. 죄와 악이 사라진 곳
요한계시록 21:1 (NKRV)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임합니다.
새 하늘 새 땅은 완성될 하나님 나라죠.
그런데 그 새 하늘 새 땅이 임한 곳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새 하늘, 새 땅이 임하기 이전에 있던 온 우주, 이 세계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바다도 없어집니다.
이 본문을 보고 오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완전히 없어지고 대체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갱신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변모하는 것이죠.
마치 우리가 죄인이었다가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듯이, 이 땅도 예수님이 다시오셔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에덴 동산의 타락 이후로 죄와 악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죄에 대해 승리하셨지만 죄의 잔존 세력이 여전히 영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죠.
바다는 일반적인 바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사고 체계 속에서 악한 영, 괴물이 살고 있는 곳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걸어오실 때 제자들이 떨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당시 바다로 인식되는데, 바다는 귀신이 있는 곳이거든요? 예수님이 귀신이 사는 바다에서부터 그 밤에 걸어오니 제자들이 잔뜩 쫀 거에요.
그런데 이 바다도 없습니다. 죄와 악의 부산물인 악한 영이 사는 바다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이 구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요? 죄에 대하여 승리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공의와 정의가 완전히 승리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죄와 악은 이 세상에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죄와 악이 존재할 공간이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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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죄와 악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재할 수도 없는 곳. 완전한 정의와 공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죄와 악을 징벌하시고 소멸시키는 나라.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죄와 악이 사라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요한계시록 21:4 (NKRV)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에게 더이상 눈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악으로 인한 사망과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흘렸던 그 모든 눈물을 닦으시고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이 위로하셔서 그렇습니까? 아니요. 완전한 공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악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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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악의 문제에 대해서 세상이 기독교에 던지는 질문 중 하나 “신정론”의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의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현대에 ‘신정론’의 문제는 기독교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신정론에 대해 지적인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모든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그 근본적 원인이 제거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1. 예수님이 하신 것 : 십자가의 구속과 새창조의 완성
예수님이 이 죄와 악을 완전히 소멸하시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구속을 성취하시고, 새창조의 모든 조건을 다 성취해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온 구원을 나만의 것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나의 구원을 넘어선 새창조라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나를 위해서 죽으셔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찬양이 나와야죠.
그러나 동시에 나와 이 온 세계의 죄와 악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시키시고, 정의와 공의의 왕이 되셔서 이 세상 모든 죄와 악을 추방시키시고 새 하늘 새 땅을,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신 분이시라는 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새창조가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상속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1:7 (NKRV)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신천지는 이 “이기는 자”를 이만희 총회장이라고 얘기하죠.
그러나 이 이기는 자는 지금 우리가 살펴본 본문의 맥락을 보면 누군지 충분히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오기 이전까지 믿음을 지키고 이겨낸 교회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새창조 사역을 완성하셨을 때 그 나라를 상속으로 받습니다.
새창조의 완성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은혜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가 하나님 나라의 삼요소를 많이 언급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권, 백성, 영토(역)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우리는 그 영역을 온전히 상속받게 됩니다.
구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상속받기 위하여 나아가서 그곳을 점령했을 때 그곳이 하나님에게 상속받는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같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완성된 의미의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상속받습니다.
그 약속의 땅,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기업으로 받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의 회복,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기업으로 상속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에 더 이상 잔존하는 죄의 영역, 악의 영역이 없는 그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 새창조를 완성시킬 조건을 성취하셨고,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남아있는 죄와 악의 영역에 타협하여 이 세상의 만족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이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아직 오지 않은 시대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적용) 우리의 삶에서 존재하는 악의 영역은 어디인가? 개인적 영역에는 어떤 죄의 영역이 있는가? 공적인 영역에는 어떤 죄의 영역이 있는가? 교회의 영역에는 어떤 죄의 영역이 있는가? 그 악의 공간이 다 사라지고 결국에 주님의 선하심이 온전히 임하기를 소망하는가?
바로 그 악의 영역이 다 제거되고 남은 공간에 하나님의 선하심만이 존재하는 그곳이 하나님 나라이다.
지금의 공간에 만족하며, 적절히 죄와 타협하는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지금의 삶에 죄와 악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음 가운데 만족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삶에서 바다를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악한 영과 괴물이 득실대는 곳,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그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남아있는 죄와 악의 영역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 학업, 직장에서 여러분은 어떤 죄에 타협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짓고 있는 죄들에 대하여 아무런 반감없이 그저 넘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삶의 영역에서 교만함의 죄와 타협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여러분의 통제의 영역으로 가로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나태함의 죄와 타협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자신의 편의에 맞추는 영역으로 가로채가실겁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탐욕의 죄와 타협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내 것의 영역으로 가로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바로 여러분의 그 행위를 서두에 말한 “유토피아적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행위로 간주하려고 합니다.
유토피아적 하나님 나라의 오류는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뜻에 맞추어 성경이 말하는 것들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에 합당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것에 성경 말씀조차 맞추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 과정 중에 바로 우리의 남아있는 죄와 악의 영역이 하나님 나라를 혼탁하게 하고, 깨끗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도 아닌 헛된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하는 것입니다.
죄와 악과 타협하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신의 욕심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더럽힙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완성시켜가시는 이 때에 우리를 향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시키시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실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며 죄악의 영역을 남겨둔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시는 주님의 열심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 존재하는 죄와 악의 영역을 제거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영원하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시며,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소망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를 허락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