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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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views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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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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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송년주일 설교로 여러분들 앞에 서는게 참으로 부담되고 떨립니다. 그리고 이게 여러분들께 드리는 제 마지막 설교라서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 방송설교를 들으실 분들 계시다면 저는 부목사 전용수 입니다. 김진동 목사님이 아니니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한해를 마무리하며, 극도로 혼란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남과 여, 노와 소 등등… 그 어디도 연합되지 않고 하나되지 못하며 분열하기만 하는 오늘의 시대속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로 살아가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입니다. 그리고 혼란의 시대속 한알의 밀로 썩어져 없어져야 할 나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문안 인사입니다.
교회는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자들이 피워낸 생명의 향기가 썩은내 나는 이 세상을 정화시킵니다. 자기 몸을 깎아 내기까지 희생하면서 밝은 빛을 내어 어둠뿐인 이 세상을 밝히는 초가 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제대로 기능하면 어둠은 물러가고 밝은 빛이 가득할 것입니다. 부패와 부정으로 인한 썩은내가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빛과 소금이여야 할 교회가, 편지이고 향기여야 할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습니다. 세상의 염려를 듣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지금 걱정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교회는 맛잃은 소금이 되어버려 버려지고 짓밟히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제 교회는 바울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로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에, 이 지역에, 우리나라에, 온 열방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교회가 될 수 있을지를 듣고 알아차리고 행함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 그렇게 결단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행하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행하라
바울은 1-3절에 교회로 살아가야 하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고대의 에베소는 로마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기에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매우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관과 종교를 가지고 에베소로 몰려 왔습니다. 여러 신들이 즐비한 도시였고, 예수님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들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바울의 전도로 에베소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종교에 관심이 많았기에 (사도행전 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많은 이방인들이 교회로 유입되었고, 유대인 디아스포라들도 유입되어 교회를 이루어 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옥에 갇혀서 에베소에 갇혔을 때, 에베소는 인원의 다양성으로 인해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사회와 같이 서로의 신분이 달라서,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연합이 깨어지고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에베소교회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써, 교회로서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성도로 살겠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났기에, 돈을 잘벌기에, 재능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도로 부르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죄인 중 괴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죄인인 우리를 친구 삼아 주신 그 은혜의 부르심은 모두에게 동일하기에 싸울 수가 없는 것이지요.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싸우고 분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2-3절은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한사람의 재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어마어마한 재력이 아니고, 어떠한 사람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르기를, 누구 한사람이 아닌 교회된 우리 모두가 겸손하라 합니다. 온유하라고 합니다. 오래 참으라 합니다. 사랑으로 용납하라 합니다.
그리고 뭐라 말합니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 운동은 하나되는 운동이잖아요. 교회가 가장 성령적이려면 하나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애를 써야 하는게 교회라는 것이지요.
“쟤 마음에 안드니까 쟤는 신경쓰지마, 쟤는 우리 편이니까 잘 챙겨주자”
교회는 이런 집단이 아닙니다.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끌어 안아야죠. 그의 말을 들어야죠. 사랑해야죠.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성령은 오늘도 우리에게 우리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가끔 목사로서 상담을 하다 보면, 목사인 저 조차도 끌어 안을 수 없는 사람들 여럿 만납니다. 몸에 돋아난, 사람에게 상처주는 가시가 너무 무섭게 자라난 사람들 가끔 봅니다. 그런 사람들 우리가 버려둡니까? 아니요, 그럴 수 없죠.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야죠. 내가 그 사람에게 돋아난 가시에 찔리더라도 안아주어야죠. 안아서 피가 나더라도 피투성이가 되어서라도 사랑해야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당부하고 계시잖아요. 너희에게 평안의 매는 줄을 주겠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먼저 받은 너희가 내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기까지 하시면서도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처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라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사랑해야죠. 보듬어야죠. 우리의 공동체를 지켜가야죠.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를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신 부르심인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장성한 분량까지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장성한 분량까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 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은사입니다. 우리는 가끔 은사를 혼동하곤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은사는 능력이 아닙니다. 재능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말하죠.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것은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라고, 우리 삶에 유익이 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4:10 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서로 봉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성도를 가르치고, 예언을 맡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말하여 교회가 올바르게 걸어가게 해야 하고, 병 고치는 은사를 맡은 자는 아픈 자가 있을 때 병을 고쳐야 합니다. 방언하는 자들 역시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방언의 은사를 주신 것도, 그것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신 것도 무슨 이유에서 입니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여러군데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 은사를 주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서로 봉사하기 위함이며 교회의 덕을 세우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이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 것 같습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사용할 때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질 것을 확신합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받은 은사는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처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목사와 장로로, 교사로, 성가대로, 안내위원으로 섬김의 은사를 받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도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묵묵히 주방 봉사를 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일 아침마다 나와서 커피 자판기에 본인의 동전을 채워가며 성도들이 마실 커피를 제공하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의 이익을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셨습니다. 또 한분은 날마다 사랑합니다 말하시며 안아주시던 따스함이 있었습니다.
전부 우리 교회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은사가 올바르게 작동하여 사람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양포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갔으니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은사를 받은 우리가,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 교회는 충만해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입니까? 선물의 분량대로 은사를 받았다면, 반드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내 것이 아니기에, 교회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두 헛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없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주께서 제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은사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목이 아프다고, 사역이 많다고, 말할 일이 많다고 제가 제 은사를 아끼고 소리내지 않는다면 제가 받은 은사는 헛것입니다. 하등 쓸모없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이 받으신 은사, 기도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사랑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이 모든 은사들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대로 우리를 성장시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은사를 통하여 교회가 견고해질 것입니다. 악한 권세가 물러 갈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위로받고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쓰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요새가 되어서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회복시키는 최후의 보루로 거듭날 것을 믿으십시오.
본문 14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서로 하나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선물인 은사를 그의 분량대로, 장성한 분량대로 사용한 교회가 얻는 유익은 무엇은 바로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진 우리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이 몰려와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원히 바르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세워지는 교회
함께 세워지는 교회
이제 우리는 결심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섬기고 봉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진 우리 교회는 어떠한 환란과 시련과 유혹이 몰려와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대장되사 우리를 바르고 선한 길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은사대로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의 재력, 능력, 명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안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함께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각 지체된 자들로서 오늘 16절의 말씀처럼 서로 도움 받고 연결되고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가게 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져야 합니다. 누군가가 힘들 때 묵묵히 안아줄 수 있는 성도, 눈물 흘리며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해줄 수 있는 성도, 사랑 안에서 연합하고 교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유능한 목사님, 장로님, 성도님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가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행할 때 성장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반 전체가 10km 마라톤을 한적이 있는 데요. 반 전체가 완주를 한 반은 저희 반밖에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직접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시는 바람에 반 학생 모두가 포기하지도 못하고 완주해버린 것이죠.
또 한번은 군대에서 1년에 2번 40km 행군을 할 때, 대대장님께서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시는 바람에 부대원 전체가 열외인원 없이 완주해버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10km 마라톤을 하는 동안, 40Km 행군을 하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혼자였다면 벌써 포기해버렸을 저입니다. 반 인원 전체가, 부대원 전체가 저와 같은 마음이었겠죠. 그런데 모두 그 험난한 시간들을 이겨내고 완주해버렸습니다. 혼자였다면 절대 못했을 일을, 누군가가 앞장서서 이끌어주었고 모두가 함께 동참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함께, 연합’이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견고하게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인생’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그 길 위에는 고속주행구간도 있을테고, 카메라 단속 때문에 속도를 늦추어야 할 구간도 있을테고, 깜깜한 터널도 나올테지요.
만약 우리의 인생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홀로 지나고 있다면, 그 긴 여정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울까요. 그런데 그 길 위에 혼자가 아닌 연합된 주의 지체들이 함께 한다면 어떨까요. 용기가 생기고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말씀처럼 말이죠.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가야 할 우리 인생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홀로 부르지 아니하시고 하나의 연합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길에 지치고 힘들 때 각자의 은사대로 성도를 돕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이제 2024년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2025년을 기대합니다. 주님 앞에 은사에 장성한 분량으로 서로 연합하고 섬기며 봉사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지는 양포교회를 소망합시다. 하나의 올바른 교회가 세상을 바꿔갈 것을 기대합시다.
그리하여 맛을 잃은 소금과도 같던 교회가, 빛과 향기를 잃어버렸던 교회가 다시 생명력을 뿜어내며 “세상이여 안심하라 우리가 민족을 위해 기도하노라” 당당히 말할 수 있으며 무너져가는 시대 속에서 최후의 보루로 이 땅을 치유해갈 수 있는 시대의 요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 양포교회를 세워가는 여러분들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