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더 좋을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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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이 집에 왔다가 갈 때면 항상 아쉽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차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뒤모습을 바라봅니다. 제가 부모님을 뵙고 돌아올 때 부모님이 그러셨습니다. 제가 가는 그 길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셨습니다. 그 때는 솔직히 부모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리 들어가세요” 네 아쉬움 때문에,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게 가는 길을 끝까지 바라 보셨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빨리 들어가시라고…. 이제 제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지요. 그러나 언제까지 나의 품안에만 둘수 없습니다. 시간이 되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어야 보기가 좋은 것이지요. 나이가 먹으면 독립을 해야지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넓은 세상, 자신에게 펼쳐진 멋진 세상을 살아야지요. 우리는 그 세상이 있음을 자녀들에게 알려 주고 그 넓은 세상에서 힘차게 날개를 펼쳐 날아 오를 수있도록 보내 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모 기업가가 자서전에서 한 말 처럼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습니다.”
2024년을 보내며 어떤 분들은 지나가는 이 한 해가 아쉬워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는 분도 있으실 것같습니다. 반면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한 해인 분도 있으실 거예요. 여러분! 어떠세요? 2024년이 하루 남았다는 것이 아쉬운가요? 아니면 빨리 보내고 싶으신가요? 사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묶어 둘 수 있다면 올 한해 다하지 못한 것을 할텐데 생각하시겠지만 아마도 못다한 일보다 다른 일을 하지 않을까요?
네. 지나간 것과 지나가고 있는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 다가올 것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세월을 더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앞에까지 왔습니다. 광야 40년의 세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였지만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도 생각하지 못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40년의 세월이 하나님의 무관심 속에 지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 계셨습니다. 백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채우시고 해결하셨습니다. 40년의 광야 생활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신발이 닳았다고 불평하거나 옷이 헤어져서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미리 해결하셨습니다.
신명기 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느헤미야에서는 너희들의 발조차도 부르트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9:21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함께 하신 광야 40년을 마치는 바로 그 직전의 시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시점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백성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고 새롭게 펼쳐질 곳에 설명을 합니다.
분문을 보면서 펼쳐질 새해의 모습을 믿음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있는 2025년 새해는 미지의 시간이 아닙니다. 비록 나는 가보지 못한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시간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신명기 31: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가보지 못한 그 땅을 하나님께서 이미 들어가셨다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셨다”
다가오는 새해를 우리가 마냥 들뜬 마음으로 맞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지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내 주변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는 좋은 날들이 행복한 날들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요. 그 소망처럼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은 단지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새해를 기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걸었던 광야 40년의 세월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과 돌보심이 없었다면 결코 지나올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갈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광야 생활이 마무리 되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신앙적으로나 교회 생활에서나 부족한 면도 있고 후회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있습니다. 이렇게 2024년이 마무리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멈추지 않습니다.
신명기 31: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야하는 가나안 땅, 그것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정착해서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전쟁을 일삼으며 침략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보다 월등히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의 보고가 과장되거나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13:31–33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요단강을 넘어 있는 미지의 가나안 땅, 그 땅에는 이스라엘을 삼킬만한 장대한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모리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것과 같이 가나안에 있는 족속들도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말합니다.
여러분! 2025년도 정말 우리는 어떤 한해가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들 낙담케하고 쓰러지게 하는 것들을 앞서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가거나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첫번째로 봉착한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요단강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봉착한 문제였습니다. 여호수아 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요단이 범람하는 시기. 하지만 요단강에 제사장이 발을 내딛는 순간 요단강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는 것을 가나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2025년 새해라는 시간앞에 믿음으로 발을 내딛으십시요.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요.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기적을 체험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요단강이 갈라지듯 여리고성이 무너지듯 2025년도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고 우리에게 매일 기적을 체험케 하실 것입니다. 2025년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이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신명기 31: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리고 그 땅을 차지하라” 모세가 말하는 강함 담대함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6절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쁨 열개가 두려움 하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 열개가 묻혀 보리고 힘든 일만 생각납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요 몇달간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은 잠깐이고 이내 힘든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네 이것이 여호수아와 제가 다른 모양인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도 10명의 정탐군과 같이 가나안에 있는 족속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장대함, 가지고 있는 무기, 그리고 체계적으로 훈련된 모습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본 것은 그런 힘적인 것만 본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움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10명의 정탐꾼들과 다르게 “우리가 올라가서 차지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가나안을 차지하라고 명령합니다. “차지하라”는 것은 소유권을 내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를 맞는 우리가 강했으면 합니다. 담대했으면 합니다. 세상과 시대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담대하게 교회가 이런 곳이라는 것, 그리스도인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담대하게 보여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쉽지만 후련하게 2024년을 보내십시요. 지난 과거는 벌써 앞날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 디딤돌을 딛고 2025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서 하나님께서 가고 계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행복과 기븜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게 하실 것이고 기쁨은 두배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그러니 강하고 담대하게 서셔서 2025년을 내것으로 만드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