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속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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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반복되는 예배가 반복되는 회복을 만든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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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신명기는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신신당부하며 남긴 유언의 책입니다. 죽기 전 가장 강조해야 할 사항은 바로 신명기의 근간이 되는 6장 4-5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반복하자
1.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반복하자
그렇다면 다른 신이 아닌 오직 약속에 신실하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명령하신 것은 준행하고 사는 것이지요. 모세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율법을 남기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지를 남겨주었습니다. 그 사랑의 절정이신 예수님께서도 율법으로 정죄하기 보다 율법으로 살 수 있도록 그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내 몸과 같이 섬기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면 이웃을 많이 사랑할 수 있겠죠. 하나님을 사랑해도 이웃 섬기는게 힘든 것은 아직도 죽지 않는 우리의 죄성 때문입니다. 이 죄성을 죽이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로 나아가고 결단과 실천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린 반복되는 예배의 힘을 경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신 명기 16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매년 정해진 절기를 지키며 예배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 절기를 지키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저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단순한 종교의식으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임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예배에 대해서 레위기에 이 절기를 이미 기록을 했음에도 또 한 번 민수기와 신명기에도 이 절기와 예배를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성도의 삶의 중심 사이클이 세상과 나의 일정표에 맞추기 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맞추어야 하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 예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나의 일정표를 맞추는 자리입니다. 시간입니다. 장소입니다. 하나님께 맞추어 나가는 관계의 시작입니다. 온 힘을 다 해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신 명기 6장 말씀은 마음에 새기고 손목에 메고 이마에 붙였습니다. 집 안 밖을 나갈 때 보라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부지런히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가르치고 지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늘 신년이 시작된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사이클을 하나님께 맞추어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 우리 자녀들과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태어날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힘주어 전해주길 소망합니다.
2. 여호와께 감사를 반복하자
2. 여호와께 감사를 반복하자
이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해야 합니다. 반복된 예배의 회복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복으로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그 반복된 예배의 회복을 경험하는 방법을 초막절을 설명하는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이 초막절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캠핑” 우리 캠핑을 좋아하시는 성도님들이 들으시면, ‘야 나도 그거 할래’라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실제로 유대인들은 초막절 날에 집 앞 마당에 텐트를 치고 일주일 동안 생활을 합니다. 집 앞이나 7개 이상의 별이 보는 곳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 낭만이 있어 보이실지는 모르시겠지만, 이 낭만적인 스페셜한 날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 조금 숙연해집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장 힘들었을 때를 기억하라라는 것입니다. 편안한 생활, 안정된 생활에 대한 감사의 기회를 삼고 일주일 동안 작은 불편함이 있지만 광야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나라와 민족을 여전히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지는 행위로 지키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수장절은 양력으로 7월에 속하게 되는데, 이 때가 지나면 이스라엘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가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이 우기가 오기 전에 여름에 수확한 나무의 열매들, 뭐가 있을까요? 올리브 열매, 포도 열매, 대추야자 열매, 석류 열매, 무화과 열매 등을 수확하고 저장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저장한 음식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분량대로 하나님께 드리고 고아와 과부와 같이 어려운 자들에게 나누고 잔치를 베풀게 됩니다.
오늘 본문 17절에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광야와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몸, 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광야로 보내신 진짜 이유는, 광야를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모든 일은 내 힘으로 한 것도 아니요, 우연으로 발생된 것도 아니며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분량이 많고 적음에 감사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내 형편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기를 할 수 있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의 말씀과 같이 사회적인 약자들과 동네 모든 사람들과 함께 그 거둔 음식들을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14절-15절을 읽어볼까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202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 받은 말씀과 주신 결단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통해 회복을 경험하며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믿음의 마중물들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서, 이러한 초막절의 정신을 가진 감사의 나눔의 장을 마련하고 베풀 수 있는 우리 우정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회개의 은혜를 반복하자
3. 회개의 은혜를 반복하자
저는 성경에 등장한 이 초막절이 너무 궁금해서 대한민국 성경지리 1타 강사인 이문범 교수님을 통해 초막절에 대한 내용을 좀 수학해볼 수 있었습니다.
초막절의 절기는 이스라엘의 대속죄일과 연결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절기와 많이 달라서 감이 잘 안 잡히실 수도 있지만 대속죄일은, 굳이 우리나라의 절기로 따지면 1월 1일 정월대보름 날로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초막절은 대속죄일이 끝난 후부터 시작이 됩니다. ‘대속죄일’ 이름만 들어도 뭔가 죄송해지는 날 같지요?
대속죄일은 짧게 이야기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날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는 날이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날 대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지은 죄를 숫염소에게 전가하고 숫염소들은 광야로 나가서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게 된다고 하지요. 이렇게 한 저의, 곧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 예배의 참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진정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는 자리는 이 죄의식을 깨닫고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는 자리가 됩니다. 또 그 구원 받은 자들이 은혜를 깨닫는 자리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은 아사셀 염소와 같이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내 모든 죄를 전가하시고 그 희생을 통해 구원의 은혜로 치환해 주셨다는 이 복음이 우리를 치유케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합니다.
초막절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제가 학습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초막절 준비과정은 이렇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손에 잡고 흔들 식물과 실과를 준비하고 하나님께 드릴 물을 준비합니다.
초막절 날 이 헌수한 물을 길어 부으면 사람들은 나팔을 불면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 찬양을 하고 밤 열 두시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앞으로 우기 때 적절한 비를 내려주실 것을 기도하면서 이 날 제단 주위를 기쁜 노래를 하며 일곱 바퀴를 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준비한 식물들을 손에 잡고 의자나 바닥에 때립니다. 이 행위에는 자신의 마지막 죄까지 하나님께서 다 깨부셔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는데, 그 말씀 구절은 신명기의 마지막 장인 34장과 창세기의 첫장인 1장을 읽는다고 합니다. 아까 초막절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며 감사하는 날이라고 했죠. 이 말씀을 읽는 까닭도 바로 죄에서부터 떠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나의 남은 마지막 죄까지 으깨어 지기를 바라면서 주님과 새로운 동행을 하고자 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저와 여러분이 죄가 죽어지고 은혜가 살아나는 그런 예배의 회복을 경험하는 한 해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진짜 헌수, 진짜 참회의 기쁨
결론: 진짜 헌수, 진짜 참회의 기쁨
초막절에는 불축제와 물축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축제를 통해 죄를 용서받았음을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를 지키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결국 축제의 의미가 사라지고 축제의 모양만 남아서 예배의 감격을 잃게 됩니다.
요 한복음 7장과 8절에서 예수님은 그 감격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진짜 생수를 만나지 못하고 물을 달라고 기원하고 바라고 의식을 하는 것보다 진짜 생수를 경험해야 합니다. 물축제에서 아무리 바라고 원해도 해갈되지 않는 영적인 문제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또한 8장에서 사람들은 불축제를 통해 참회의 기쁨을 노래 했습니다. 젊은이건 노인들이건 참회의 노래를 부르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뻐하고 나서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 예수님 앞에 심판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함정을 파놓은 그 상황 속에서 땅에 글씨를 쓰십니다. 그리고 그 글씨를 보고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한 사람씩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글이 어떤 글인지 성경에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마 그들이 초막절날 기쁘게 불렀던 참회의 노래와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주님 앞에 진정한 참회의 노래는 죄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변화 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함께 불리게 될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매일이 영적 전쟁입니다. 반복된 예배에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참회의 기쁨을 허락하신 주님께 기도하고 진정한 생수의 강이신 그리스도 바라보며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체험한다면 2025년이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사이클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은혜가 우리를 더욱 성장케 할 것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는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