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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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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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23편
새해 인사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보내고 2025년 첫 주를 감사로 예배드릴 수 있으니 감사드립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편리해지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은 사람들로 더욱 긴장하게 만들기도합니다.
우리 어르신들께서는 키오스크도 힘든데 이제는 A.I 시대까지 왔습니다.
젊은 저도 A.I 시대를 접하면서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과학 뿐만이 아닙니다. 뉴스를 도배하는 수많은 사건들과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뒤쳐지고 인생이 망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상은 정말 녹록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녹록지 않은 인생은 부모에게 영향을 주고 그 결과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초등학생도 아닌데 학원을 다닌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학원의 수가 늘어난다. 중고학교에 가면 직장인들과 똑같이 집에 들어온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도 나아지질 않는다. 계속되는 경쟁에서 경주마 처럼 앞만 보고 달리죠~. 앞만 보고 달리는 법만 배우다 보니 잠시라도 넘어지거나 좌충우돌하면 인생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좌절감을 가지게 됩니다.
선물세트 포장하는 공장에서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계속해서 나오는 물건을 쉬지도 못하고 기계의 속도에 맞추어 일을 한다. 손에 경련이 일어나도 움직여야 한다. 멈춰지는 순간 물건이 쌓여 넘쳐버리게 되어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흡사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네 인생을 더! 더! 빠르게! 끊임없이 몰아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자신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죠.
그런데 시편 23편 말씀 배경을 보면 다윗이 노년의 시기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기던 때에 고백한 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현실은 부족을 넘어서 비참함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현실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도 그 정서적인 감정과 마음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반역을 하고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그저 도망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상상이 되실까요?
지금 다윗은 누구보다 쫓기는 일에는 이골이 나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일 까요?
아니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일까요?
대체 다윗과 우리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하고 우리는 매일 같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다윗은 어떻게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던 것 일까요?
1.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2-3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 받은 나이가 15세 때이니 그 이전부터 다윗은 홀로 양을 치러 먼 길을 나가야만 했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 아들들을 데려 오라 했을 때 다윗은 포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첩의 자녀였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형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다윗은 집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밖에서 홀로 양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은 인생, 무리에서 떨어져버린 어린 시절을 보낸 다윗.
그런 그가 이제는 자신을 양으로,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에서 목자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인도하심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 이스라엘 - 목자를 뽑는 기준이 있는가?????
- 대학, 석사, 박사,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졌는가?
- 근육질 몸매에 키가 크고 잘 생겼고 말을 잘하는가도 아니다.
윗 옷을 벗어 보라고 하고 상처와 흉터가 있는 사람을 뽑는다. 양을 위해 얼마만큼 위하는가? 이것이 기준이 된다.
목자는 여러 개의 목초지를 정하여 한 달에 한번씩 옮겨다니는 수고를 해야 하며 빠르게 흐르는 물을 먹지 않기 때문에 물살이 있는 개울에서 양을 방목할 때는 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 잔잔한 물을 마시게 합니다.
양은 우리가 알기로는 온순하고 얌전한 짐승으로 알고 있지만 거칠고 미련한 짐승입니다.
시력도 좋지 않아서 쉽게 가시덤불 속에 들어가고 바위 밑에 떨어집니다.
그렇기에 목자는 늘 양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안내하고 인도합니다.
다윗의 인생은 목자와 같이 자신의 삶을 인도하던 목자되신 하나님을 경험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그가 나를” 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인생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다윗의 어린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셨습니다.
양을 치는 다윗의 길을 인도하셔서 푸른 풀밭을 찾을 수 있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친히
인도하시며 들짐승들로부터 그리고 외로움으로부터 함께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27편 10절 육신의 부모는 나를 버렷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다윗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목자되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확실하십니까?
다윗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다윗을 인도하신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자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내일도 자신의 양무리인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 인도하시기 때문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그의 삶에 하셨길래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였을까요?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맞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위태로움에서 안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불리워질 때는 언제일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할 때, 사업에서 실패 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건강을 잃었을 때,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등등 여러 상황등이 있을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는 어떠한 일이 자신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출발선이 같더라도 인생의 트랙은 전부가 다릅니다.
커브길이 언제 나타날지, 오르막길이 언제 등장할지 모릅니다.
내리막길이, 웅덩이가 언제 나올지 우리는 알 방도가 없습니다.
이러한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좋은 일이 있을리가 만무합니다.
음침한 골짜기에는 적군이나 도적이 매복하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윗은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해는 우리가 낮에 보는 태양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로 번역된 단어는 악, 나쁜, 무서운, 교활한, 괴로운, 사나운, 슬픈 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데 악하고, 나쁘고 무섭고, 배신당하고, 갈취를 당하고, 억울하고 슬픈 일들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윗의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그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격양되게~)
극한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안위하심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할렐루야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양을 훈육하고 구조하고 보호하는 도구입니다.
양이 위험한 길로 가지 못하도록 하고, 뱀과 사나운 짐승들의 두개골을 부러뜨리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고 안위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사도 바울이 배를 통해 로마로 압송될 때에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들은 14일정도를 굶주리게 되고 더이상 배에서 머물 수도 없어서 뛰어내리게 되고 멜리데 섬에서 구조되게 됩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불을 지피기 위해 나무를 넣다가 독사에게 손을 물립니다.
당연히 모든 원주민은 바울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이 죽지도 않게 하시고 도리어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것을 통해서 도리어 높이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분명히 알았기에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언제 어느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혹시 예측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하지만 우리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다윗을 안위하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사도바울을 안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목자 되신 여호와께서 우리 성도님들도 안위하시는 분이심을 경험하는 인생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지나가는 형통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이유 첫 번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안위하시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10년의 시간을 사울로 인하여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내고자 애를 쓰거나 스스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반역을 꾀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인생의 한 부분에 원수와 같은 상황 혹은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합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자가 되어 안간힘을 씁니다.
자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이리 저리 휘두르며 달려간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이제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다른 것들로 채워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지리 복도 없고 팔자 사나운 내 잘못이여”
성도 여러분 내가 나를 의지하고 방법을 쫓고 주변을 바라본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흡사 시력이 좋지도 않고 짐승들로부터 보호할 것도 없는 양이 스스로 홀로 들짐승과 싸우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상해보십시요.
어리석은 목자의 인도를 받는 양 만큼 불쌍한 양도 없을 것입니다. 좋은 꼴도 쉴 만한 곳도, 짐승들로부터 안전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 길도 모르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내가 스스로를 의지한다는 것은 스스로 어리석은 목자의 인도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들짐승 앞에, 원수 앞에 나를 데려가시오 하고 외치며 달려가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자신에게 상을 차려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는 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밥상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양을 치는 목자였던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원수에게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또 다시 쫓기는 위치가 되었음에도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 앞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식탁을 차려주신다는 것은 승리함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참된 목자를 따라갈 때 우리는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참된 목자는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슴을 버리거니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승리하심으로 주 안에 있는 우리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잔을 넘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부족함을 채우실까요??
잔이 넘치도록 기름부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부족하고 모자라고 아둔한 양과 같은 우리 인생을 인도하셔서 채우시고 넘치게 하시는 이유는 인생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 복음의 승리를 나타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순종을 통한 승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넘치도록 채우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 싶습니다.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고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그 속에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공급하심과 안위하심을 얻고 승리함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선한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다윗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성육신하신 선한 목자 예수님은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을 통해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의 삶을 목양하고 계십니다.
혹시 지금 이 자리에 다윗과 같이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있다 여겨지시는 분이 계십니까?
세상으로부터, 부모와 자녀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어둠의 골짜기를 걸어가거나 원수가 앞에 있는 상황에 놓이신분이 계십니까?
다윗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시고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좋으신 분이심을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고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분이심을 믿으며 구하십시다.
다윗이 여호와를 신뢰하여 여호와와 관계 맺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이
우리가 믿음을 변치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며 걸어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끝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평한함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먼저 주님께서 평안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채우시고 넘치게 하시며 승리하게 하신
이유와 목적을 찾으시길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스스로 인생의 방향키를 잡지 마시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소생교회 성도 여러분,
목자되신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예수님의 음성,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2025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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