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화내셨다
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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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ew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지만, 마가복음 11장 12-18절에서 이례적으로 분노하셨다. 이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성전을 더럽힌 유대인을 향한 진노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서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의 열매를 기대하신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겉으로만 경건했을 뿐, 그 삶에 참된 열매가 없었다. 그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더럽혔다. 열매 맺는 삶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마음을 찢는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결코 속일 수 없다. 새해를 맞아 우리의 예배와 삶을 정결하게 하자. 세상 욕심을 버리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사용하시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Notes
Transcript
(막 11:12-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주님의 임재 앞에 서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각기 다른 소망과 결심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한 해를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경과 우리의 믿음 안에서 분명히 제시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과 방향은 그분의 마음,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오늘 본문 마가복음 11장 12절에서 18절은 우리에게 매우 강렬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온유와 겸손의 왕으로 알려진 예수님께서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적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이 말씀처럼,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복음서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시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지만,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사 53:7). 그러나 이렇게 온유하신 예수님께서 왜 오늘 본문에서는 그토록 진노하셨을까요? 이 예외적인 사건은 단순히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이 거룩한 분노는 어떤 본질적 진리를 깨닫게 하며, 우리 삶에 어떤 도전을 주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매가 가득할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막 11:1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의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는 외형적으로는 풍성해 보이지만 실상은 열매 없는 삶, 즉 겉모습만 그럴듯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강렬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 하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는 성전 정화 사건과도 깊이 연결되며, 우리의 삶과 신앙에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겉으로는 신앙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열매 없는 유대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율법에 정통했고, 성전 제사를 철저히 지켰지만,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나아가 이 무화과나무는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으로는 그럴싸한 종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세상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는 단지 개인의 성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단지 구원받은 개인으로서의 삶을 넘어,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즉,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아,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인도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진정한 열매입니다. 전도의 열매, 양육의 열매, 즉 영적 재생산의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왕’이라는 표현, ‘제사장’이 주는 느낌에만 흥분(?)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에 맞는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열매 맺는 삶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열매 맺는 삶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라고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진노하셨을까요?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으로, 이후에는 성전으로 불리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거룩한 처소였습니다. 그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즉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거룩한 교제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에 쓸 짐승을 팔면서 폭리를 취했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환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액의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장소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이름은 있으면서도, 더 속되고 욕심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자리를 세속적인 욕망과 탐욕으로 더럽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 성전이 세상 걱정과 근심, 염려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욕심은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골 3:5). 욕심은 사망을 낳고(약 1:15),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할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없고,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더러운 곳에는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도'는 단순히 입술로만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전인적인 행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마치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듯, 기도는 우리의 깨어진 심령을 회복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세워줍니다. 더러워진 곳을 청소하듯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그분이 거하실 처소로 잘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과 같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시들어 죽습니다. 기도를 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 나라의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형식적인 기도, 습관적인 기도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처럼,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를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세상 풍파에 휩쓸려 표류하게 됩니다.
넷째,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넷째,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했지만, 그들의 속은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성전 제사를 주관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추악한 속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자신의 죄를 숨기고,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까? 겉으로는 거룩한 척, 신앙이 좋은 척하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악이 가득한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악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 이제 새해, 우리의 예배와 삶을 정결하게 합시다.
다섯째, 이제 새해, 우리의 예배와 삶을 정결하게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의 마음과 예배의 자리가 정결하게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겉치레뿐인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는 진실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읍시다.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는 세상 욕심과 정욕, 미움과 시기, 교만과 거짓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오직 기도로써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합시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그분 앞에 정직하게 나아갑시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회개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서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는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은 신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엽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