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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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뛰어난 영광
본문: 고후 3:11
(고후3:11) 없어진 것에도 영광이 있었을진대 남아 있는 것에는 더욱 영광이 있느니라.
For if that which is done away was glorious, much more that which remaineth is glorious.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구약과 신약이 있다는 것과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는 것과
한 성경이 다른 성서보다 낫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약이 없이 신약만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이 있어야 신약이 구약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균형있는 진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하지만 신약 성도에게는 신약의 통치가 기준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고후3:1)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 시작하겠느냐?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에게 추천하는 서신을 보내거나 너희로부터 추천하는 편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Do we begin again to commend ourselves? or need we, as some others, epistles of commendation to you, or letters of commendation from you?
추천서가 필요했던 초대교회 상황
바울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추천서신이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도시를 다시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지역교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각 교회는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뭔가 정탐하려고 온 정탐꾼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를 옮겨서 다른 교회의 성도들과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교회 목사가 서명한 추천서를 가지고 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서신서에는 이 사람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자가 맞으며
당신 교회에서 교제 할 수 있게 천거하는 말과
보살 핌을 부탁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 서신서는 그 사람의 자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지역교회를 옮기는 일
오늘날에도 새로운 성도가 다른 교회에서 우리교회로 옮겨올때에는
이전 교회에서 어떤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아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이 사람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다른 교회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쫓겨난 것은 아닌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그냥 한 명이라도 더 와준 것이 고마워서
모든 것을 덮고 떠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성경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낮은마음침례교회가 다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옮기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교회를 옮긴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확고한 명분과 이유를 가지고 옮겨야 할 것입니다.
직장을 옮기는 경우, 집을 너무 멀리 이사하는 경우
목회자가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등
확고한 이유를 가지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감독을 바꾸는 것,
자신이 헌금을 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교회를 바꾼다는 것,
자신이 함께 서로 교제하고 형편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들을 쉽게 결정해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가 성도들의 자유를 너무 침해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누려야 할 자유가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거나
모든 간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여러분은 지나치게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저의 신앙생활에 대한 평판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저는 기꺼이 그것에 응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입증하는 일을 꺼려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입증할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2절과 3절에서 일게 될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나를 입증할 편지를 가져와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거짓 신들과 우상들을 숭배하며,
온갖 종류의 광기 어린 부도덕함에 얽혀 있던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서, 주님께서 너희 혼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너희 삶을 정결케 하시고 건전한 마음을 주시도록 한 사람이
바로 나 바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대해 내가 권위를 가졌음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고후3:2) 너희는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는 우리의 서신으로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Ye are our epistle written in our hearts, known and read of all men:
(고후3:3)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인데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Forasmuch as ye are manifestly declared to be the epistle of Christ ministered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in tables of stone, but in fleshy tables of the heart.
추천서가 필요없는 삶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서 하신 일들,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하신 일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추천서를 가지고 다른 교회를 가는 것이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추천서가 필요없을 정도로 삶에서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굳이 목사의 서신서가 있어야 그가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는 모든 곳에서 그가 누구의 설명도 필요없이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인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당신의 마음에 기록되었고,
그것이 당신의 삶에서 그 복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모습은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후3:4)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으나
And such trust have we through Christ to God-ward:
(고후3:5)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Not that we are sufficient of ourselves to think any thing as of ourselves; but our sufficiency is of God;
(고후3:6)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
Who also hath made us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ent; …
성령의 능력없이 거듭나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타고난 능력을 사용하시지만
영적인 일을 이루려면 타고난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본주의와 철학, 자기개발과 같은 것으로 교회 모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의 방법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거듭나거나, 새롭게 태어나거나,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했지만,
그 일에 성령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노력은 아무의미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최선을 다했어도 그들이 한 일 만은로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는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지만
사실 그 일이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모든 것은 주님이 다 하신 일입니다.
(고후3:6) … 글자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 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eth, but the spirit giveth life.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설교를 듣는데 믿음으로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그것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을 암기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수년 동안 이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도 성경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듣는 것이 믿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읽는 것이 믿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어야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전2:13)
그들의 삶에서 성경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람을 본다면.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후3:7)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But if the ministration of death, written and engraven i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behold the face of Moses for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to be done away:
유대인을 위한 율법을 주심
출애굽기 34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산위에 올라가서 20장에서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게될 법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이 율법은 한국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약 성도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모세가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더니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주위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그 돌판을 던져서 깨뜨립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산으로 부르십니다.
(출34:27)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이 뜻하는 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느니라, 하시니라.
And the LORD said unto Moses, Write thou these words: for after the tenor of these words I have made a covenant with thee and with Israel.
(출34:28) 모세는 주와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 동안 거기 있으면서 빵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그분께서는 언약의 말씀들 곧 열 가지 명령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And he was there with the LORD forty days and forty nights; he did neither eat bread, nor drink water. And he wrote upon the tables the words of the covenant, the ten commandments.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가 십계명을 쓰겠다고 하시고
모세의 손을 통해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 원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출34:29) ¶ 모세가 그 두 증언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그분과 말하는 동안에 자기 얼굴의 피부가 빛나던 것을 알지 못하였더라.
¶ And it came to pass, when Moses came down from mount Sinai with the two tables of testimony in Moses' hand, when he came down from the mount, that Moses wist not that the skin of his face shone while he talked with him.
여러분이 정말로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라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면
곧바로 주변 사람들이 당신이 영적으로 충만해져 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출34: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보라, 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므로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였더라.
And when Aaron and all the children of Israel saw Moses, behold, the skin of his face shone; and they were afraid to come nigh him.
(출34: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치리자들이 그에게 돌아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And Moses called unto them; and Aaron and all the rulers of the congregation returned unto him: and Moses talked with them.
(출34:32) 그 뒤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가까이 오므로 그가 주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으로 주니라.
And afterward all the children of Israel came nigh: and he gave them in commandment all that the LORD had spoken with him in mount Sinai.
(출34: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칠 때까지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And till Moses had done speaking with them, he put a vail on his face.
한 사람이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눈이 부셔서 볼 수없는 상황을 보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 3장으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고후3:7)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
But if the ministration of death, written and engraven in stones, was glorious, …
돌에 써서 새긴것이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망의 직무”라고 합니다.
영광 가운데 있었던 율법의 직무는 사망의 직무였습니다.
(고후3:7) …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behold the face of Moses for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to be done away:
(고후3:8) 하물며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How shall not the ministration of the spirit be rather glorious?
구약의 율법에 영광이 있고,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진리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 다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같은 영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후3:9) 정죄의 직무도 영광이 될진대 의의 직무는 영광이 더욱 뛰어나니라.
For if the ministration of condemnation be glory, much more doth the ministration of righteousness exceed in glory.
“정죄의 직무”. : 구약의 율법은 정죄를 하는 일을 합니다.
누군가 구약의 율법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정죄를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식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도덕법만 지키면 된다고 말한다면,
그런 기준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고 그 중에 하나라도 어기면 유죄라고 하신 것입니다.
“더욱 뛰어나니라.”
구약의 율법은 불의한 것이 아닙니다. (롬6, 7, 8장)
디모데전서에서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딤전1:8)
율법에는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여러분과 제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의롭게 되고 싶다면,
내 아들을 소유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온전히 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니,
내 모든 명령에 순종한 내 아들을 믿음으로
그분의 순종과 의로움을 너희들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십니다.
(고후3:10) 영광스럽게 된 것조차도 이 점에서 영광을 갖지 못한 것은 뛰어난 그 영광으로 인함이라.
For even that which was made glorious had no glory in this respect, by reason of the glory that excelleth.
(고후3:11) 없어진 것에도 영광이 있었을진대 남아 있는 것에는 더욱 영광이 있느니라.
For if that which is done away was glorious, much more that which remaineth is glorious.
아직도 이런 저런 교회들에서
제사장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구약의 흔적들을 쫓아가며 예배를 드립니다.
향을 흔들기도 하고 손가락에 물을 묻혀 튕기기도 하고
부활절이를 지키기도 하고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키는 일을 만들어 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율법아래 사는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제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라고 하십니다.
이 율법은 내가 유대인들에게 준 것이다.
돌에 새겨진 이 율법은 의롭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 율법은 너를 죽게 만들것고 정죄할 것이다.
이제 여기 내 아들이 있다.
그의 죽음과 그의 묻힘과 그의 부활로 인해서
그의 귀중하고 거룩한 피를 통해서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이 있다.
이것은 너무도 영광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새벽에 켜 놓은 촛불과 정오의 태양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촛불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태양의 영광이 떠 있는 상태에서 촛불을 드는 것은 우수운 일이다.
우리가 구약성경 39권을 사랑하지만
구약 성경은 신약성경만큼 빛을 발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없어진 것”
즉 교회에서 없어진 것입니다.
과거에도 “영광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남아있는 것”은 더욱 영광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구약의 관습을 가져다 신약 교회에 적용하고 있는 교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만큼의 조명이 없었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의 내용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시편 22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그 내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들고 있는 촛불로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빛을 비추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고후3:12) 그런즉 우리에게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우리는 매우 분명한 말을 사용하고
Seeing then that we have such hope, we use great plainness of speech:
사람들이 이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으면 불편해하고 불안해 합니다.
너무 비판적이고 죄를 지적하는 설교가 독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설교하는 내용을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설교하는 설교자를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글쎄요..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건 어떨까요?”
어떤 목사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떤 사본에서는 이렇게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반석이 아니라 진흙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이후 4천년 만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뒤에 회당에서 성경을 집어 들고 읽을때 마다
한 번도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기록되었으되? 기록된 것을 모르느냐? 라고 말씀하셨지,
한 번도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고후3:13)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미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 같이 하지 아니하노라.
And not as Moses, which put a vail over his face,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look to the end of that which is abolished:
(고후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가려졌으니 이는 이 날까지도 옛 상속 언약의 말씀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아니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라. 그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으나
But their minds were blinded: for until this day remaineth the same vail untaken away in the reading of the old testament; which vail is done away in Christ.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만 받아들인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구약의 내용 조차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약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
구약만 펼쳐놓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대신 죽어가는 어린 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장대 위의 뱀을 통해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 행위 없이 오직 어린양의 피로 구속 받은 사건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약조차 믿지 않는다면 주님은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고후3:15)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But even unto this day, when Moses is read, the vail is upon their heart.
여러분이 레위기를 읽으면서 그곳에 적힌 명령을 읽게 되면,
평생 살면서 한 번도 행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평생 율법을 모두 지키고 살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의 눈 앞에는 아직도 베일이 덮여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자신이 읽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 말씀의 효능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의 눈을 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고후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Nevertheless when it shall turn to the Lord, the vail shall be taken away.
이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복음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당신이 유대인이든 가톨릭 신자이든 침례교 신자이든
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죽음을 선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로 돌아오면 여러분에게 일꾼을 보내주실 겁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교회와 설교자를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주님께로 향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필요한 빛을 줄 것입니다
(고후3:17)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at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이 말씀은 복음과 관련된 것이지 정치와는 무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율법과, 율법으로인한 정죄와, 죽음과, 눈이 먼것과,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고후3:18)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But we all, with open face beholding as in a glass the glory of the Lord, are chang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even as by the Spirit of the Lord.
성경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성령님은 오직 읽는 자나 듣는 자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동의하고 믿어야만 합니다.
(롬10:17)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So then faith [cometh] by hearing, and hearing by the word of God.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That if thou shalt confess with thy mouth the Lord Jesus, and shalt believe in thine heart that God hath raised him from the dead, thou shalt be saved.
여러분이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게 되었다면 믿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제 성경은 모세처럼 베일을 쓴 것이 아니라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성경은 마치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성경을 반복해서 읽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지 않은 여러분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약에 비추어 드러난 모든 죄들로 인해 죽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의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방법을
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인정해주신 모습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40일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려왔을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돌판을 들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얼마나 멀리까지 비춰지고 있었을까요?
그 빛은 그의 얼굴 밖으로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40일간 하나님과 함께 한 것으로 인해서 그의 겉모습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순간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당신 안에 들어와 당신의 마음과 정신과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 모습은 결코 율법의 영광에 못지 않은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그저 겉모습만 다르게 보였을 뿐입니다.
구약은 사람들의 내면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왜 신약이 구약보다 더 나은 것일까요?
신약은 율법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마음속까지 파고들어 내면부터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결코 그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이 땅에서 더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끝-